일본의 이야기보따리는 어릴 적 할머니 무릎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무궁무진하다. 일본 스토리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이를 위해 몇 개 작품을 엄선했다. 일본 문학의 대명사 격으로 여기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외했다. 많은 일본인이 말하듯 그는 일본 작가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작가의 위치에 오른 만큼, 작가 본인은 물론 작품까지 ‘일본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영화에서도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 같은 이의 작품은 제외했다. 문학,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통틀어 엄선한 아래 작품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거나 최근 국내에서 출간, 또는 상영된 작품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다나베 세이코(田邊聖子), 작가정신
연애를 취미의 하나로 여기는 여성들. 그들은 연애를 생활의 중심에 두거나 인생의 한가운데 두지 않고 그저 즐기듯 삶과 연애를 함께 향유해나간다. 국내에 영화로 소개돼 큰 인기를 모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모두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집이다. 계산적이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인간 본능을 그려내는 작가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밤의 피크닉 (夜のピクニック) 온다 리쿠(熊谷奈苗), 북폴리오
누구에게나 10대 때의 가슴 시린 설렘, 그리고 비밀스런 고민이 있다. 이런 추억을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중독적인 이야기로 담아낸 청춘소설이 ‘밤의 피크닉’이다. 고교생활 마지막 이벤트인 24시간 행군, 야간보행제를 배경으로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작가 온다 리쿠는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SF는 물론 청춘소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작가로,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고 불릴 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상실감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데 능하다.
공중그네 (空中ブランコ)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 은행나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우울함.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책을 읽으며 그 내용에 킬킬대다 결국 박장대소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해야겠다는 ‘교훈’까지 얻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마 같은 덩치의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 아라부와 간호사 마유미 황금 콤비가 그들만의 치료법으로 환자뿐 아니라 독자들까지 치료해주는 못 말리는 행복 바이러스가 책에 가득하다. 엽기적인 인간군상은 곧 다양한 현대인의 진솔한 모습이고, 이들의 독특한 치유법을 읽는 동안 독자들의 우울한 현대병도 말끔히 사라진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선 일본 사회에 담긴 모순을 작가만의 유머와 비아냥거림으로 끄집어내 마음껏 조롱하는 능력이 느껴진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가게 (まほろ驛前多田便軒)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들녘
상처받고 버림받은 세상살이. 대충대충 얼렁뚱땅 손쉬운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한숨만 쉬며 지낼 건가. 가정이 해체되고 혼자가 된 주인공이 정반대 성격의 고교동창생과 심부름가게를 운영하며 빚어내는 일상을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펼쳐 보인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울고, 웃고, 찡그리고, 미소 짓고, 한숨 쉬고, 안도하게 된다.
[만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雨柳堂夢)하츠 아키코(波津 彬子), 시공사
일상 속 모든 물건에는 숨결, 손결 등 사람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이런 흔적은 희로애락을 자아내는 여러 사정과 함께 사람의 이야기, 물건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우유당이라는 골동품점을 배경으로 하는 이 만화는 고미술품에 담긴 슬프거나 무섭고, 때론 기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천일야화처럼 들려준다. 회화, 도자기를 비롯한 전통미술, 노(能)를 비롯한 전통예능, 전통다도 등 일본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깊지만 쉽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탁월하다. ‘우유당 꿈 이야기(雨柳堂夢)’라는 원제로 11년 동안 모두 12권이 발행된 수작.
[애니메이션]
썸머워즈 (サマㅡウォㅡズ)호소다 마모루(細田守) 감독
인터넷 속 가상 생활과 실제 생활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시대. 인간에 대항해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컴퓨터 바이러스를 일본의 전통놀이, 화투로 해치운다는 내용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가족과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가시 돋친 경고를 섞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재치 넘치는 위트와 정겨운 시골 풍광, 맹랑하지만 순박한 고등학생들의 여름방학 추억을 맛볼 수 있는 ‘강추’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隱し)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
일본에는 각종 요괴를 다룬 이야기가 넘쳐난다. 일본 요괴들은 한국의 민화 속 호랑이처럼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있다.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의 곁,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다. 한국인에게 일본 문화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문화의 하나가 ‘가미카쿠시’(神隱し·신의 장난 때문에 다른 세계로 흘러가는 현상)일 것이다. 이 가미카쿠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간처럼 슬퍼하고, 기뻐하고, 질투하고, 가여워하는 감정을 가진 요괴의 세상으로 떠나보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과 일본의 전통사상, 정령문화가 가장 깊숙이 응축된 작품이다.
[영화]
굿‘ 바이 (おくりびと)다키타 요지로(瀧田洋二郞) 감독
회자정리(會者定離).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섭리다. 하지만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참으로 슬프고 극복하기 힘들다. 음습하기만 했던 죽음이란 소재를 아름답고 경건하게,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다룬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한국과 사뭇 다른 죽음에 대한 생각과 장례문화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상영되던 초기에 배우 히로스에 료코의 이혼 후 첫 주연작 또는 멜로라는 장르에 초점이 맞춰져 잘못 소개된 영화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 안에 담겨진 아름다운 장례문화에 매료될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말 것. 죽은 이를 대하는 손사위 하나하나가 놓쳐선 안 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구구는 고양이다 (グ-グ-だって猫である)이누도 잇신(犬童一心 ) 감독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얘기할 때 ‘고양이와 개’로 비유할 만큼 일본인과 고양이는 잘 어울리는 짝이다. 일본 문화에서도 고양이를 떼어놓고 말하기 힘들다. 13년간 함께 지내온 고양이 사바가 죽은 뒤, 순정만화가 아사코는 의욕을 상실하고 병까지 얻는다. 하지만 새로 키우게 된 3개월 된 아메리칸 쇼트 헤어종의 고양이, 구구를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 고양이를 통해 현대 일본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순정만화가 오시마 유미코의 에세이를 이누도 잇신 감독이 영화화한 것이다.
비밀의 화원 (ひみつの花園) 야구치 시노부(矢口史靖) 감독
만일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됐다면 그 후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돈이 세상의 전부인 평범한 여은행원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종잡을 수 없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와 끊임없이 샘솟는 상상력은 일본 문화에 깊숙이 자리잡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영화 ‘산전수전’의 어설픔에 실망했던 당신이라면, 원작이 주는 감칠맛 나는 재미와 니시다 나오미의 열혈연기,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연출력에 심청이 만난 심봉사처럼 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다나베 세이코(田邊聖子), 작가정신
연애를 취미의 하나로 여기는 여성들. 그들은 연애를 생활의 중심에 두거나 인생의 한가운데 두지 않고 그저 즐기듯 삶과 연애를 함께 향유해나간다. 국내에 영화로 소개돼 큰 인기를 모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모두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집이다. 계산적이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인간 본능을 그려내는 작가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밤의 피크닉 (夜のピクニック) 온다 리쿠(熊谷奈苗), 북폴리오
누구에게나 10대 때의 가슴 시린 설렘, 그리고 비밀스런 고민이 있다. 이런 추억을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중독적인 이야기로 담아낸 청춘소설이 ‘밤의 피크닉’이다. 고교생활 마지막 이벤트인 24시간 행군, 야간보행제를 배경으로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작가 온다 리쿠는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 SF는 물론 청춘소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작가로,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고 불릴 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상실감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데 능하다.
공중그네 (空中ブランコ)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 은행나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우울함.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책을 읽으며 그 내용에 킬킬대다 결국 박장대소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해야겠다는 ‘교훈’까지 얻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마 같은 덩치의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 아라부와 간호사 마유미 황금 콤비가 그들만의 치료법으로 환자뿐 아니라 독자들까지 치료해주는 못 말리는 행복 바이러스가 책에 가득하다. 엽기적인 인간군상은 곧 다양한 현대인의 진솔한 모습이고, 이들의 독특한 치유법을 읽는 동안 독자들의 우울한 현대병도 말끔히 사라진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선 일본 사회에 담긴 모순을 작가만의 유머와 비아냥거림으로 끄집어내 마음껏 조롱하는 능력이 느껴진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가게 (まほろ驛前多田便軒)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들녘
상처받고 버림받은 세상살이. 대충대충 얼렁뚱땅 손쉬운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가. 아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한숨만 쉬며 지낼 건가. 가정이 해체되고 혼자가 된 주인공이 정반대 성격의 고교동창생과 심부름가게를 운영하며 빚어내는 일상을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펼쳐 보인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울고, 웃고, 찡그리고, 미소 짓고, 한숨 쉬고, 안도하게 된다.
[만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雨柳堂夢)하츠 아키코(波津 彬子), 시공사
일상 속 모든 물건에는 숨결, 손결 등 사람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이런 흔적은 희로애락을 자아내는 여러 사정과 함께 사람의 이야기, 물건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우유당이라는 골동품점을 배경으로 하는 이 만화는 고미술품에 담긴 슬프거나 무섭고, 때론 기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천일야화처럼 들려준다. 회화, 도자기를 비롯한 전통미술, 노(能)를 비롯한 전통예능, 전통다도 등 일본의 다양한 전통문화를 깊지만 쉽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탁월하다. ‘우유당 꿈 이야기(雨柳堂夢)’라는 원제로 11년 동안 모두 12권이 발행된 수작.
[애니메이션]
썸머워즈 (サマㅡウォㅡズ)호소다 마모루(細田守) 감독
인터넷 속 가상 생활과 실제 생활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시대. 인간에 대항해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컴퓨터 바이러스를 일본의 전통놀이, 화투로 해치운다는 내용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가족과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가시 돋친 경고를 섞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재치 넘치는 위트와 정겨운 시골 풍광, 맹랑하지만 순박한 고등학생들의 여름방학 추억을 맛볼 수 있는 ‘강추’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隱し)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
일본에는 각종 요괴를 다룬 이야기가 넘쳐난다. 일본 요괴들은 한국의 민화 속 호랑이처럼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있다.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의 곁,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다. 한국인에게 일본 문화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문화의 하나가 ‘가미카쿠시’(神隱し·신의 장난 때문에 다른 세계로 흘러가는 현상)일 것이다. 이 가미카쿠시를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간처럼 슬퍼하고, 기뻐하고, 질투하고, 가여워하는 감정을 가진 요괴의 세상으로 떠나보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과 일본의 전통사상, 정령문화가 가장 깊숙이 응축된 작품이다.
[영화]
굿‘ 바이 (おくりびと)다키타 요지로(瀧田洋二郞) 감독
회자정리(會者定離).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섭리다. 하지만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참으로 슬프고 극복하기 힘들다. 음습하기만 했던 죽음이란 소재를 아름답고 경건하게,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다룬 영화는 일찍이 없었다. 한국과 사뭇 다른 죽음에 대한 생각과 장례문화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상영되던 초기에 배우 히로스에 료코의 이혼 후 첫 주연작 또는 멜로라는 장르에 초점이 맞춰져 잘못 소개된 영화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 안에 담겨진 아름다운 장례문화에 매료될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말 것. 죽은 이를 대하는 손사위 하나하나가 놓쳐선 안 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구구는 고양이다 (グ-グ-だって猫である)이누도 잇신(犬童一心 ) 감독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얘기할 때 ‘고양이와 개’로 비유할 만큼 일본인과 고양이는 잘 어울리는 짝이다. 일본 문화에서도 고양이를 떼어놓고 말하기 힘들다. 13년간 함께 지내온 고양이 사바가 죽은 뒤, 순정만화가 아사코는 의욕을 상실하고 병까지 얻는다. 하지만 새로 키우게 된 3개월 된 아메리칸 쇼트 헤어종의 고양이, 구구를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 고양이를 통해 현대 일본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순정만화가 오시마 유미코의 에세이를 이누도 잇신 감독이 영화화한 것이다.
비밀의 화원 (ひみつの花園) 야구치 시노부(矢口史靖) 감독
만일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됐다면 그 후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돈이 세상의 전부인 평범한 여은행원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종잡을 수 없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와 끊임없이 샘솟는 상상력은 일본 문화에 깊숙이 자리잡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영화 ‘산전수전’의 어설픔에 실망했던 당신이라면, 원작이 주는 감칠맛 나는 재미와 니시다 나오미의 열혈연기,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연출력에 심청이 만난 심봉사처럼 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