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인슐린에 의해 혈액 속의 포도당이 우리 몸 세포 속으로 흡수돼 혈당 농도가 정상 범위로 유지된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분비가 안 되거나 제대로 분비되더라도 혈당을 낮추는 기능을 하지 못해(인슐린 저항성) 혈액 속의 포도당이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혈당이 올라가게 된다. 이때 필요 이상으로 남아도는 혈당은 소변으로 나오는데 이런 상태가 바로 당뇨병이다.
당뇨병의 세 가지 분류
당뇨병 환자는 포도당 외에 아미노산을 포함한 많은 영양소가 세포 속으로 잘못 들어가 ‘풍요 속의 빈곤’ 상태(2차성 영양결핍증)에 빠지기 쉽다. 인슐린 분비의 결함이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인 당뇨병 환자는 흔히 고혈당 이외에 복부비만, 고혈압, 혈청 중성지방의 증가, 양성 콜레스테롤의 감소(이상지질혈증)를 보이는데, 이러한 복합적인 대사장애를 가리켜 ‘대사증후군’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을 관리하려면 먼저 체내 인슐린 분비 정도에 따른 당뇨병의 병형 분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당뇨병은 크게 제1형 당뇨병과 제2형 당뇨병으로 나눌 수 있으나,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중에는 일부 제1.5형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2형 당뇨병이다. 당뇨병은 초기 치료 기회를 놓치고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근본적인 치료는 물론 합병증 예방도 어려운 병이다(유물효과).
당뇨병 치료는 대부분 완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혈당을 포함한 정상 대사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하므로 환자들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 최근 미국 의학회지(JAMA)에 실린 당뇨병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을 보면 한국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사람들은 뇌졸중과 만성신부전이 가장 큰 원인인 반면, 서양인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보고됐다.
당뇨병은 일단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며, 사망률을 줄이려면 특히 심혈관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당뇨병 치료의 주요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선 발병 초기부터 정상 혈당을 유지하고 고혈압을 포함한 여러 심혈관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당뇨병을 조절하는 구체적 방법에는 식사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이 있다. 그러나 이들 치료법은 각각 혈당을 낮추는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고혈당 원인을 파악해 알맞게 적용할 때 만족할 만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제2형 당뇨병 환자는 비만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같이 가진 경우가 많아 이를 함께 치료하는 것이 혈당조절 못지않게 심혈관 합병증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당뇨병의 치료 원칙은 우선 병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인슐린 분비가 거의 안 되는 1형 당뇨병 치료에서는 인슐린 투여가 필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인슐린만으로 혈당조절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요법이 필요하다. 2형 당뇨병 환자는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므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요법과 더불어 운동요법이 필요하다. 이를 1~2개월 동안 철저히 시행해도 혈당조절이 잘 안 될 때는 경구혈당 강하제나 인슐린 치료를 써야 한다.
1.5형 당뇨병 환자는 체중이 적게 나가고 영양상태가 불량하며 혈당치도 중등도(공복혈당 200mg/㎗ 이상)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대부분 인슐린 투여가 필요하며, 단백질을 포함한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해 체중을 정상체중 범위로 늘려야 한다. 국내 당뇨병 임상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인 2형 당뇨병은 전신성 비만보다는 복부비만(대사성 비만)을 가진 환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당뇨병 발병 후에 심한 체중감소를 보이는 등 임상 양상이 서구인과 크게 달라 당뇨병 발생기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인 2형 당뇨병 환자의 60~70%는 인슐린 분비가 비만의 정도에 의해 영향을 적게 받는 대신, 나머지 30~40%는 인슐린 저항성 없이 인슐린의 분비 감소가 혈당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병뿐 아니라 고혈압, 이상지혈증 및 혈액응고 항진(혈전증)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포괄적인 혈관·대사질환의 개념(대사증후군)이 최근에 밝혀졌기 때문에 단순한 혈당관리보다는 고혈당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해 그에 맞는 치료(맞춤치료)를 하는 것이 옳다.
다음의 두 경우는 맞춤형 치료에 관한 실제 사례로, 국내에선 매우 흔한 환자 유형 가운데 하나다.
비만한 2형 당뇨병
5년 전 혈당이 높아(공복혈당 240mg/㎗) 당뇨병을 진단받은 기업인 김모(55) 씨. 지난 5년간 꾸준히 인슐린 치료를 통해 혈당을 조절했지만 근래에는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았다. 인슐린 치료를 시작할 당시에는 혈당이 잘 조절됐지만 체중이 4~5kg 늘고 배가 나오면서 조절이 잘되지 않았던 것. 병원을 찾았을 때 그의 신장은 170cm, 체중은 76kg.
체질량지수가 26kg/m²로 경증 비만증이 있었고(25kg/㎡ 이상이면 비만), 배 둘레가 96cm(정상 남성은 90cm 이하)로 복부비만이었다. 혈압은 160/100mmHg(정상치는 130/85mmHg 이하)로 고혈압이 있었으며, 혈청 중성지방은 250mg/㎗(정상치는 150mg/㎗ 이하), 양성 콜레스테롤은 35mg/㎗(정상치는 40mg/㎗ 이상)로 이상지질혈증이 있었다.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뿐 아니라 고혈압, 이상지혈증 등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맞춤치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맞춤치료에서도 규칙적인 식사 조절과 운동요법은 필수다.
고혈당은 인슐린 분비 감소가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슐린 주사를 중지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완화하는 치료를 해야 했다. 이 환자의 인슐린 저항성의 원인은 과식과 운동부족에 따른 복부비만에 있기 때문에 엄격한 식사조절(하루 2000kcal)과 규칙적인 운동(하루 1시간 걷기)을 권장하고 인슐린 주사 대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경구약(글루코파지)을 사용했다.
이렇게 치료한 지 두 달 만에 혈당은 130mg/㎗로 떨어졌고 당화혈색소도 7%로 호전됐으며, 고혈압과 혈청 중성지방 및 양성 콜레스테롤도 현저하게 개선됐다. 체중도 76kg에서 71kg으로 줄었으며 허리둘레도 96cm에서 90cm로 줄어 대사증후군의 여러 요소도 크게 호전됐다.
저체중 1.5형 당뇨병
회사원 김모(40) 씨는 3개월 전 다음, 다뇨, 다식 등 당뇨병의 3대 증상이 갑자기 발생하면서 체중이 5kg 줄어 병원을 찾았다. 개인의원에서 경구혈당강하제(설폰요소제)를 처방받았으나 혈당조절이 잘 안 돼 인슐린 주사를 권고하자 필자를 찾아왔다. 내원했을 때 공복혈당은 280mg/㎗, 당화혈색소(HbA1c)는 13%였고 혈압, 중성지방, 콜레스테롤은 정상범위에 있었다.
신장은 165cm, 체중 50kg(체질량 지수 18kg/m²)로 저체중 상태였다. 과거력을 살펴보니 이 환자는 과음을 했고 육식은 좋아하지 않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인슐린 내성 검사상 인슐린 저항성은 없었으나 인슐린 분비가 심하게 감소해 있었다. 혈당강하제가 듣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이 환자는 1.5형(중간형) 당뇨병 환자로 영양결핍(특히 단백질 결핍)과 과음 탓에 당뇨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우선 금주와 당질, 단백질, 지방질 등 균형식을 하게 했고 종합비타민과 미네랄을 복용하게 했다. 인슐린 저항성은 없고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되고 있었으므로 인슐린 주사를 시작했다. 치료 2개월이 경과하자 전신 영양상태가 호전됐고 체중도 4kg 늘어 건강을 되찾았다.
위의 두 환자에게서 보듯 ‘한국인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 정도와 저항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혈당 조절에 앞서 반드시 인슐린 분비와 저항성을 평가해 각 환자의 고혈당 원인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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