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각급 학교마다 깐깐하게 선발한 사서교사 활발하게 활동
얼마 전 미국인 부부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부는 요즘 두 살 난 아들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느라 고심한다고 했다. 신데렐라처럼 왜곡된 성역할을 주입하거나 백인만 등장시켜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는 동화책을 피하다 보니 선택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안목이 조금은 까다롭고 유별나다고 생각했지만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본받을 만한 일임이 분명했다. 독서 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미국의 독서 교육은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그 다양한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영·유아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동화책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또한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도서관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특히 독서 교육이 소홀해지는 방학에는 독서 클럽을 운영해 학교를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도서관마다 어린이 독서교육 전문가를 두는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자리잡은 전통이다. 1900년에는 전미도서관협회에 어린이 전문가 분과가 따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최초로 어린이 독서 전문가 양성학교가 설립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듯, 미국의 독서 교육은 말 그대로 백 년의 계획을 실현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통은 미국 대부분의 학교가 사서교사를 두고 있는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에도 독서 지도교사가 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미국은 14개 주에서 사서교사의 자격요건으로 도서관학에 관련된 석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보니 요건이 깐깐할 수밖에 없다.
미국 학교에서 사서교사의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사서교사의 존재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1년 텍사스 주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전자오락이 유행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이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예술진흥재단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7세 청소년의 경우 ‘교과서와 관계없는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1984년 9%에서 2004년 19%로 늘어났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61%에서 57%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독서습관이 빈부격차를 반영한다는 것. 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독하는 경향을 보인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이 소수인종보다 열심히 읽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독서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는 저소득층 자녀의 독서 교육에 힘쓰고 있다. ‘누군가를 도와 차의 시동을 걸게 하다’는 뜻의 NGO(비정부기구) ‘점프스타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미취학 아동에게 독서 교육을 제공한다. 1993년 15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현재 4000명 가까운 자원봉사자를 거느린다.
‘독서 교육에는 되도록 빨리 개입하는 게 좋다’는 이들의 교육철학은 독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금전적 빈곤이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미국 사회의 노력은 갈수록 교육격차가 빈부격차를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에 많은 함의를 던진다.
스탠퍼드= 김수경 통신원 sookim76@gmail.com
[FRANCE] 책 안 읽으면 대학 못 가는 입시 시스템
“우화 작가 라 퐁텐의 작품 ‘이리와 양’을 다음 주까지 외워오세요.”
프랑스의 초등학교에서는 유독 시를 외워오라거나 단편소설, 희곡 등을 읽어오라는 숙제가 많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 ‘그림자와 나’, 짧은 희곡 ‘엄마! 엄마! 배가 아파요’ ‘펭귄의 모험’ 등을 친구끼리 등장인물을 바꿔 읽어보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게 했다. 흥미로운 독서활동으로 책 자체에 취미를 붙이게 하려는 취지다.
수시로 열리는 읽기 평가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단어들을 ‘내 것’으로 만들게 하려는 일종의 학습도구로 함께 읽은 책에 나온 단어 목록을 주고 각 단어의 뜻과 반대말, 비슷한 말 등을 적게 하는 시험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읽기 평가는 이어졌다. 중학교 때는 2주에 한 번꼴로 권장도서를 읽고 주제와 핵심인물을 파악하는 시험 문제들이 주를 이뤘다. 중학교에서도 장르별로 지속적으로 책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딜 가나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들게 된다. 등굣길에 책을 보면서 가거나 점심시간을 쪼개 책과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책을 친구들끼리 추천해주고 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풍경도 흔했다. 하루에 한 권꼴로 책을 읽던 프랑스 친구 안나는 “책은 내게 초콜릿과 같아. 없으면 허전하고 몹시 갈구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책을 ‘음미’하던 그는 특히 프랑스어 성적이 우수했다.
고등학교 독서교육의 목표는 분석력과 비판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화나 우화가 다시 독서 자료가 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접한 친숙한 작품을 좀더 색다른, 자신만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는 그저 외우기만 했던 ‘이리와 양’을 다시 읽게 됐고, 이 작품에 주석(Commentaire de texte)을 다는 과정을 통해 비평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쌓인 독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치르는 프랑스어 능력평가(Baccalaureat de Francais)를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고교 졸업 및 대입 자격을 평가하는 이 시험은 프랑스어 과목에 한해서만 3학년이 아닌 2학년 때 치르게 된다.
논술 등으로 구성된 이 시험의 특징은 자신이 펼칠 주장들의 근거를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인용하게 한다는 것. ‘지금까지 접한 연극 작품들과 독서를 바탕으로 일인극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쓰시오’ ‘자서전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제삼자가 그 인물에 대해 쓴 전기를 먼저 참고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인용해 쓰시오’ 등의 문제는 웬만큼 독서량이 확보되지 않고는 쓰기 힘든 문제들이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프랑스에서도 독서량이 줄고 있다는 통계결과가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발표된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La Croix)’는 프랑스 성인들이 읽는 독서량이 20년 전보다 4% 줄었다고 보도한다. 이처럼 조금씩 사그라지는 독서문화를 되살리고자 정부에서는 도서관 폐관시간을 늦추고 지역별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독서 강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은 전한다.
박혜진 코리아넷 프랑스어판 에디터 haejin_park@naver.com
[FINLAND] 신문활용교육으로 ‘독서형 인간’ 기른다
유럽이나 북미 대륙을 여행할 때 만나는 가장 부러운 풍경 중 하나는 작은 시골 마을의 노천카페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다. 핀란드는 지구상에서 이 모습 그대로 책을 즐기는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것이다.
핀란드에는 ‘독서형 인간’이 가득하다. 국민의 77%가 매일 1시간씩 독서한다는 통계가 있다. 도서관 이용률은 67.8%, 인구 1000명당 신문구독 부수는 518.4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 온 식구가 모여 한두 시간씩 책이나 신문을 읽는 문화. 이렇게 하는 동안 핀란드인의 몸과 마음에는 자연스레 ‘읽기 DNA’가 생겨난다.
10년 전 핀란드로 유학 갔다가 현지에서 결혼하고 정착한 이지영 씨는 “핀란드 사람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교육 원칙이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하루 2시간 바깥바람 쐬기 △많이 움직이기와 함께 ‘4대 원칙’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기 전에 책 읽기”라며 “그 덕분인지 대부분의 아이가 별다른 학습 없이 문자를 습득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원칙이 아이가 평생 ‘읽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학교에 진학해도 읽기 교육은 이어진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신문활용교육(NIE)을 시킨다. 주한 핀란드대사관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의 3분의 2는 신문이나 만화 읽기 동호회에서 활동한다. 학생의 61%가 거의 매일 신문을 읽고, 85%는 한 달에 여러 번 신문을 본다. 학생이 신문을 보면 구독료를 반액 할인해줄 정도로 읽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대부분 신문을 정독한다.
책을 많이 읽는 나라지만 핀란드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 한 권 가격이 보통 45달러,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을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대신 주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사실 도서관 시스템이 잘돼 있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평균 한 사람당 1년에 21권의 책을 대출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의 1인당 공공도서관 대출 권수가 1년에 4.1권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핀란드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 도서관에서는 ‘책 힌트’라는 이름으로 신간 소개,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 서평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제공한다. 도서관 사서들도 열정적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2회 정도 사서가 지역 내 학교를 방문해 읽기 교육을 비롯한 특별수업을 진행한다.
‘읽기’를 강조하는 문화, NIE 및 지역도서관 활성화는 핀란드 사람들이 ‘읽기’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평생 즐길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다.
이경선 자유기고가 dayoung1404@naver.com
*참고도서 : ‘핀란드 교육의 성공’(북스힐)
[JAPAN] 일본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 발표
많은 곳의 일본 초·중학교에서는 매일 1교시가 시작하기 10분 전, 교실 안이 조용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꺼내놓고 읽기 시작한다. 전국 초·중학교의 69%가 실시하는 ‘아침독서’ 시간인 것이다.
1988년 지바(千葉)현의 한 교사의 제창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학급 붕괴’가 거론되던 90년대에 전국의 교사들이 동참하면서 번져나갔다.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이 모여 ‘아침독서 추진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침독서를 실천하는 초·중학교는 일본 전국에서 2만6000여 개교, 참가 인원은 960만명에 이른다. 아침독서 덕분에 “아이들이 침착해지고 독서 습관이 몸에 붙었다”고 정평이 나 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활자 이탈’에 대한 경계는 대단하다.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 양상이다. 2001년 일본 국회는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린이 독서활동 확대를 위해 독자적으로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02년에는 4월23일을 ‘어린이 독서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광역자치단체가 큰 틀을 정하면 각 기초자치단체가 계획을 구체화해 각 학교에 제안하는 식으로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데 아침독서, 독서감상 발표회, 책 읽어주기, 책 소개 연극 등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의 학교와 공립도서관별로 기획된다.
일본 의회는 나아가 2005년 여야 만장일치로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을 제정했다.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기 범람으로 젊은 층의 활자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공립도서관을 설치하고 사서와 자료를 충분히 갖춘다는 것 등이 골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7년 10월에는 민간도 나섰다. 출판, 신문, 정치, 경제 등 폭넓은 업계 단체가 모여 재단법인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를 결성한 것이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의 명예회장인 후쿠하라 요시하루 씨가 초대회장을 맡은 이 단체는 일본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나 지식인을 총망라해 독서장려운동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국민에게 신문과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고 언어의 힘을 기르기 위한 갖가지 활동을 전개한다. 이에 힘입어 2008년 6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이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활자 이탈이나 언어 피폐는 경제 불안과 같은 심각한 문제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11월에는 이를 위한 추진회의가 따로 발족해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회인의 언어력(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심포지엄, 강좌 등을 기업이나 지역 단위로 개최하고 올 가을에는 ‘언어력 검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청소년의 독해력이나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학력 단계에 맞춰 문장이나 도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한다고 한다. 2010년 10월에는 국민에게 폭넓은 참가를 요구하는 ‘국민독서의 해 제전’을 실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신문사들도 활자 이탈을 막기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사는 사내에 ‘활자문화추진회의’를 만들어 각종 관련 행사를 주최하거나 지원한다. 각 언론사가 진행하는 신문활용교육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와 공동으로 ‘업무를 살리는 독서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책 덕분에 우리는 선인들의 사상이나 경험, 미의식을 알 수 있고 동세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활자문화의 역사 없이 인간의 창조력이나 기술 발달도, 경제 사회의 진보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이 없어지는 일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인 후쿠하라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 회장의 독서론이다.
도쿄=서영아 동아일보 특파원 sya@donga.com
얼마 전 미국인 부부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부는 요즘 두 살 난 아들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느라 고심한다고 했다. 신데렐라처럼 왜곡된 성역할을 주입하거나 백인만 등장시켜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는 동화책을 피하다 보니 선택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안목이 조금은 까다롭고 유별나다고 생각했지만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본받을 만한 일임이 분명했다. 독서 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미국의 독서 교육은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그 다양한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영·유아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동화책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또한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도서관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특히 독서 교육이 소홀해지는 방학에는 독서 클럽을 운영해 학교를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도서관마다 어린이 독서교육 전문가를 두는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자리잡은 전통이다. 1900년에는 전미도서관협회에 어린이 전문가 분과가 따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최초로 어린이 독서 전문가 양성학교가 설립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듯, 미국의 독서 교육은 말 그대로 백 년의 계획을 실현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통은 미국 대부분의 학교가 사서교사를 두고 있는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에도 독서 지도교사가 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미국은 14개 주에서 사서교사의 자격요건으로 도서관학에 관련된 석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보니 요건이 깐깐할 수밖에 없다.
미국 학교에서 사서교사의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사서교사의 존재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1년 텍사스 주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전자오락이 유행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이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예술진흥재단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7세 청소년의 경우 ‘교과서와 관계없는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1984년 9%에서 2004년 19%로 늘어났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61%에서 57%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독서습관이 빈부격차를 반영한다는 것. 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독하는 경향을 보인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이 소수인종보다 열심히 읽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독서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는 저소득층 자녀의 독서 교육에 힘쓰고 있다. ‘누군가를 도와 차의 시동을 걸게 하다’는 뜻의 NGO(비정부기구) ‘점프스타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미취학 아동에게 독서 교육을 제공한다. 1993년 15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현재 4000명 가까운 자원봉사자를 거느린다.
‘독서 교육에는 되도록 빨리 개입하는 게 좋다’는 이들의 교육철학은 독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금전적 빈곤이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미국 사회의 노력은 갈수록 교육격차가 빈부격차를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에 많은 함의를 던진다.
스탠퍼드= 김수경 통신원 sookim76@gmail.com
[FRANCE] 책 안 읽으면 대학 못 가는 입시 시스템
“우화 작가 라 퐁텐의 작품 ‘이리와 양’을 다음 주까지 외워오세요.”
프랑스의 초등학교에서는 유독 시를 외워오라거나 단편소설, 희곡 등을 읽어오라는 숙제가 많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 ‘그림자와 나’, 짧은 희곡 ‘엄마! 엄마! 배가 아파요’ ‘펭귄의 모험’ 등을 친구끼리 등장인물을 바꿔 읽어보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게 했다. 흥미로운 독서활동으로 책 자체에 취미를 붙이게 하려는 취지다.
수시로 열리는 읽기 평가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단어들을 ‘내 것’으로 만들게 하려는 일종의 학습도구로 함께 읽은 책에 나온 단어 목록을 주고 각 단어의 뜻과 반대말, 비슷한 말 등을 적게 하는 시험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읽기 평가는 이어졌다. 중학교 때는 2주에 한 번꼴로 권장도서를 읽고 주제와 핵심인물을 파악하는 시험 문제들이 주를 이뤘다. 중학교에서도 장르별로 지속적으로 책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딜 가나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들게 된다. 등굣길에 책을 보면서 가거나 점심시간을 쪼개 책과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책을 친구들끼리 추천해주고 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풍경도 흔했다. 하루에 한 권꼴로 책을 읽던 프랑스 친구 안나는 “책은 내게 초콜릿과 같아. 없으면 허전하고 몹시 갈구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책을 ‘음미’하던 그는 특히 프랑스어 성적이 우수했다.
고등학교 독서교육의 목표는 분석력과 비판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화나 우화가 다시 독서 자료가 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접한 친숙한 작품을 좀더 색다른, 자신만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는 그저 외우기만 했던 ‘이리와 양’을 다시 읽게 됐고, 이 작품에 주석(Commentaire de texte)을 다는 과정을 통해 비평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쌓인 독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치르는 프랑스어 능력평가(Baccalaureat de Francais)를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고교 졸업 및 대입 자격을 평가하는 이 시험은 프랑스어 과목에 한해서만 3학년이 아닌 2학년 때 치르게 된다.
논술 등으로 구성된 이 시험의 특징은 자신이 펼칠 주장들의 근거를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인용하게 한다는 것. ‘지금까지 접한 연극 작품들과 독서를 바탕으로 일인극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쓰시오’ ‘자서전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제삼자가 그 인물에 대해 쓴 전기를 먼저 참고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인용해 쓰시오’ 등의 문제는 웬만큼 독서량이 확보되지 않고는 쓰기 힘든 문제들이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프랑스에서도 독서량이 줄고 있다는 통계결과가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발표된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La Croix)’는 프랑스 성인들이 읽는 독서량이 20년 전보다 4% 줄었다고 보도한다. 이처럼 조금씩 사그라지는 독서문화를 되살리고자 정부에서는 도서관 폐관시간을 늦추고 지역별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독서 강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은 전한다.
박혜진 코리아넷 프랑스어판 에디터 haejin_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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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LAND] 신문활용교육으로 ‘독서형 인간’ 기른다
유럽이나 북미 대륙을 여행할 때 만나는 가장 부러운 풍경 중 하나는 작은 시골 마을의 노천카페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다. 핀란드는 지구상에서 이 모습 그대로 책을 즐기는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것이다.
핀란드에는 ‘독서형 인간’이 가득하다. 국민의 77%가 매일 1시간씩 독서한다는 통계가 있다. 도서관 이용률은 67.8%, 인구 1000명당 신문구독 부수는 518.4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 온 식구가 모여 한두 시간씩 책이나 신문을 읽는 문화. 이렇게 하는 동안 핀란드인의 몸과 마음에는 자연스레 ‘읽기 DNA’가 생겨난다.
10년 전 핀란드로 유학 갔다가 현지에서 결혼하고 정착한 이지영 씨는 “핀란드 사람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교육 원칙이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하루 2시간 바깥바람 쐬기 △많이 움직이기와 함께 ‘4대 원칙’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기 전에 책 읽기”라며 “그 덕분인지 대부분의 아이가 별다른 학습 없이 문자를 습득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원칙이 아이가 평생 ‘읽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학교에 진학해도 읽기 교육은 이어진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신문활용교육(NIE)을 시킨다. 주한 핀란드대사관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의 3분의 2는 신문이나 만화 읽기 동호회에서 활동한다. 학생의 61%가 거의 매일 신문을 읽고, 85%는 한 달에 여러 번 신문을 본다. 학생이 신문을 보면 구독료를 반액 할인해줄 정도로 읽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대부분 신문을 정독한다.
책을 많이 읽는 나라지만 핀란드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 한 권 가격이 보통 45달러,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을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대신 주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사실 도서관 시스템이 잘돼 있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평균 한 사람당 1년에 21권의 책을 대출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의 1인당 공공도서관 대출 권수가 1년에 4.1권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핀란드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 도서관에서는 ‘책 힌트’라는 이름으로 신간 소개,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 서평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제공한다. 도서관 사서들도 열정적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2회 정도 사서가 지역 내 학교를 방문해 읽기 교육을 비롯한 특별수업을 진행한다.
‘읽기’를 강조하는 문화, NIE 및 지역도서관 활성화는 핀란드 사람들이 ‘읽기’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평생 즐길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다.
이경선 자유기고가 dayoung1404@naver.com
*참고도서 : ‘핀란드 교육의 성공’(북스힐)
[JAPAN] 일본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 발표
많은 곳의 일본 초·중학교에서는 매일 1교시가 시작하기 10분 전, 교실 안이 조용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꺼내놓고 읽기 시작한다. 전국 초·중학교의 69%가 실시하는 ‘아침독서’ 시간인 것이다.
1988년 지바(千葉)현의 한 교사의 제창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학급 붕괴’가 거론되던 90년대에 전국의 교사들이 동참하면서 번져나갔다.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이 모여 ‘아침독서 추진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침독서를 실천하는 초·중학교는 일본 전국에서 2만6000여 개교, 참가 인원은 960만명에 이른다. 아침독서 덕분에 “아이들이 침착해지고 독서 습관이 몸에 붙었다”고 정평이 나 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활자 이탈’에 대한 경계는 대단하다.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 양상이다. 2001년 일본 국회는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린이 독서활동 확대를 위해 독자적으로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02년에는 4월23일을 ‘어린이 독서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광역자치단체가 큰 틀을 정하면 각 기초자치단체가 계획을 구체화해 각 학교에 제안하는 식으로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데 아침독서, 독서감상 발표회, 책 읽어주기, 책 소개 연극 등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의 학교와 공립도서관별로 기획된다.
일본 의회는 나아가 2005년 여야 만장일치로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을 제정했다.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기 범람으로 젊은 층의 활자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공립도서관을 설치하고 사서와 자료를 충분히 갖춘다는 것 등이 골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7년 10월에는 민간도 나섰다. 출판, 신문, 정치, 경제 등 폭넓은 업계 단체가 모여 재단법인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를 결성한 것이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의 명예회장인 후쿠하라 요시하루 씨가 초대회장을 맡은 이 단체는 일본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나 지식인을 총망라해 독서장려운동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국민에게 신문과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고 언어의 힘을 기르기 위한 갖가지 활동을 전개한다. 이에 힘입어 2008년 6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이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활자 이탈이나 언어 피폐는 경제 불안과 같은 심각한 문제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11월에는 이를 위한 추진회의가 따로 발족해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회인의 언어력(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심포지엄, 강좌 등을 기업이나 지역 단위로 개최하고 올 가을에는 ‘언어력 검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청소년의 독해력이나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학력 단계에 맞춰 문장이나 도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한다고 한다. 2010년 10월에는 국민에게 폭넓은 참가를 요구하는 ‘국민독서의 해 제전’을 실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신문사들도 활자 이탈을 막기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사는 사내에 ‘활자문화추진회의’를 만들어 각종 관련 행사를 주최하거나 지원한다. 각 언론사가 진행하는 신문활용교육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와 공동으로 ‘업무를 살리는 독서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책 덕분에 우리는 선인들의 사상이나 경험, 미의식을 알 수 있고 동세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활자문화의 역사 없이 인간의 창조력이나 기술 발달도, 경제 사회의 진보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이 없어지는 일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인 후쿠하라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 회장의 독서론이다.
도쿄=서영아 동아일보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