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탤런트 최진실, 안재환의 자살 뒤에는 사금융(이하 사채)으로 인한 고통이 있었다. 사채가 20억원이네, 40억원이네 하는 이야기들로 얼룩진 안씨의 죽음은 지금도 인터넷을 메우고 있다. 최씨는 ‘25억 사채업’이란 루머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최씨가 안씨에게 거액을 빌려주고, 이를 갚지 않는 안씨를 죽이겠다는 식으로 협박해 결국 자살로 내몰았다’는 내용의 괴담은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사채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점점 문제를 키워왔던, 이제는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사채는 병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채 이용자 189만명
10월7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발표한 ‘불법 사금융(사채) 피해방지 종합대책’은 이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채 이용자는 189만명(20세 이상 국민의 5.4%)이 넘는다. 이중 33만명은 대부업 관련 불법행위의 대부분이 자행되는 무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경기침체-실직-생활고’로 이어지는 서민들의 고통을 반영한 탓인지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피해 사례가 2007년부터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눈에 띈다. 현재 우리나라 사채시장 규모는 16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며 사채 이용자 1인당 평균 연 72.2%의 이자율로 873만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금융위원회 2008년 6월 발표 내용).
금감원이 운영 중인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올해 상반기(1~6월 기준)에만 206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1% 증가했다. 지난해 초 사채의 폐해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이후 정부 차원의 각종 조치가 있어왔음에도 사채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사채 피해 사례로는 연간 수백%에 이르는 고금리로 인한 피해, 폭력과 협박을 동반한 불법추심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많았다.
금감원 상담센터에 들어온 사연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불과 수백만원의 사채로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가정이 파탄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다음은 그중 눈에 띄는 사연들이다.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K씨(여)는 무등록대부업체 A사로부터 올해 초 550만원을 대출받은 뒤 정상적으로 상환해오다 5월경 이자가 1회 연체됐다. 이후 A사 직원 P씨는 새벽 5시경 K씨의 전 주소지(K씨의 친정)를 방문해 대문을 차고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욕설과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 K씨와 가족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었다.’
‘서울시 용산구에 사는 김모(31·여) 씨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100만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는데, 급히 돈이 필요해 생활정보지를 보고 대부업체 2곳에서 각각 100만원과 80만원을 빌렸다. 대부업협회피해센터가 조사한 결과 두 대부업체의 연 이자율은 480%와 1800%에 이르렀다.’
사채시장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무등록 업자들이 금리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200~300%의 금리를 받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법정금리(49%)를 넘는 이자에 대해서는 채무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생활광고지 등을 통한 허위광고 차단에도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피해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백지계약서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안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지계약서는 말 그대로 채무자의 이름과 도장만 찍힌 채 계약서가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돈이 급한 사람들의 절박한 심리를 악용해 이런 계약서를 만든 뒤 임의로 채권자 이름을 바꿔넣는 수법으로 제2, 제3의 피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A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려 다 갚았는데도 A사채업자 이름 대신 B나 C의 이름을 적고는 이를 근거로 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안씨의 자살사건 수사과정에서도 백지계약서가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신체포기각서 같은 고전적 방식의 불법행위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채 피해자들의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대표 이선근·이하 민생연대)에 따르면 최근에도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접수된다. 이중에는 본인의 신체뿐 아니라 가족들의 신체에 대한 포기각서, 심지어 돈을 빌려주면서 사망보험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식의 각서로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민생연대에 접수된 사연들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임신 9개월의 몸을 이끌고 민생연대 문을 두드린 한 여성(37세)은 사채로 인한 신용불량 문제로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는 사연을 전했고, 300만원을 대출하면서 사채업자들의 꾐에 빠져 부모를 보증인으로 세웠다가 온 가족이 협박받는 20대 초반 대학생의 사연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사례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절박한 심리 악용 백지계약서도 등장
이선근 대표는 “사채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음에도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피해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여러 차례 나온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없음을 방증하는 결과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또 “정식 등록 대부업체들도 법정이자를 크게 웃도는 고금리를 받거나, 심지어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약간의 벌금만 내면 되는 구조이다 보니 불법을 사실상 방치한다. 법적으로 못 받게 돼 있는 선이자, 각종 불법수수료 등으로 해서 49%라는 이자를 지키는 듯하면서도 실제론 180%까지 이자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식 등록 대부업체 가운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대부업체들도 불법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생연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사채업체가 무려 4만5000개(미등록 불법업체 2만7000여 개 포함)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부업체들은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많은 대부업체들이 법에서 정한 이자 한도를 지키며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데, 몇몇 불법업체 때문에 경영에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 최근 인기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로 인한 대부업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인터넷상에는 “높은 이자와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안재환 씨가 죽었다. 대부업체의 과도한 채권추심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을 문 닫게 해야 한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업체 한 관계자는 “안재환 씨 자살사건 이후로 항의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고객도 20~30% 줄었다. 몇억원의 빚이 1~2년 만에 몇십억원으로 불어난다는 것은 정상적인 대부업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그런 피해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사채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점점 문제를 키워왔던, 이제는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사채는 병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채 이용자 189만명
10월7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발표한 ‘불법 사금융(사채) 피해방지 종합대책’은 이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채 이용자는 189만명(20세 이상 국민의 5.4%)이 넘는다. 이중 33만명은 대부업 관련 불법행위의 대부분이 자행되는 무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경기침체-실직-생활고’로 이어지는 서민들의 고통을 반영한 탓인지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피해 사례가 2007년부터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눈에 띈다. 현재 우리나라 사채시장 규모는 16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며 사채 이용자 1인당 평균 연 72.2%의 이자율로 873만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금융위원회 2008년 6월 발표 내용).
금감원이 운영 중인 사금융피해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올해 상반기(1~6월 기준)에만 206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1% 증가했다. 지난해 초 사채의 폐해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이후 정부 차원의 각종 조치가 있어왔음에도 사채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사채 피해 사례로는 연간 수백%에 이르는 고금리로 인한 피해, 폭력과 협박을 동반한 불법추심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많았다.
금감원 상담센터에 들어온 사연들은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불과 수백만원의 사채로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가정이 파탄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다음은 그중 눈에 띄는 사연들이다.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K씨(여)는 무등록대부업체 A사로부터 올해 초 550만원을 대출받은 뒤 정상적으로 상환해오다 5월경 이자가 1회 연체됐다. 이후 A사 직원 P씨는 새벽 5시경 K씨의 전 주소지(K씨의 친정)를 방문해 대문을 차고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욕설과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 K씨와 가족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었다.’
‘서울시 용산구에 사는 김모(31·여) 씨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100만원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는데, 급히 돈이 필요해 생활정보지를 보고 대부업체 2곳에서 각각 100만원과 80만원을 빌렸다. 대부업협회피해센터가 조사한 결과 두 대부업체의 연 이자율은 480%와 1800%에 이르렀다.’
사채시장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무등록 업자들이 금리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200~300%의 금리를 받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법정금리(49%)를 넘는 이자에 대해서는 채무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생활광고지 등을 통한 허위광고 차단에도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피해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백지계약서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안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진 고(故) 안재환 씨의 장례식 모습.
신체포기각서 같은 고전적 방식의 불법행위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채 피해자들의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대표 이선근·이하 민생연대)에 따르면 최근에도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접수된다. 이중에는 본인의 신체뿐 아니라 가족들의 신체에 대한 포기각서, 심지어 돈을 빌려주면서 사망보험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식의 각서로 고통받는 경우도 있다. 민생연대에 접수된 사연들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임신 9개월의 몸을 이끌고 민생연대 문을 두드린 한 여성(37세)은 사채로 인한 신용불량 문제로 혼인신고도 하지 못하는 사연을 전했고, 300만원을 대출하면서 사채업자들의 꾐에 빠져 부모를 보증인으로 세웠다가 온 가족이 협박받는 20대 초반 대학생의 사연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사례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절박한 심리 악용 백지계약서도 등장
이선근 대표는 “사채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음에도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피해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여러 차례 나온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없음을 방증하는 결과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또 “정식 등록 대부업체들도 법정이자를 크게 웃도는 고금리를 받거나, 심지어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약간의 벌금만 내면 되는 구조이다 보니 불법을 사실상 방치한다. 법적으로 못 받게 돼 있는 선이자, 각종 불법수수료 등으로 해서 49%라는 이자를 지키는 듯하면서도 실제론 180%까지 이자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식 등록 대부업체 가운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대부업체들도 불법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생연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사채업체가 무려 4만5000개(미등록 불법업체 2만7000여 개 포함)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부업체들은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많은 대부업체들이 법에서 정한 이자 한도를 지키며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데, 몇몇 불법업체 때문에 경영에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 최근 인기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로 인한 대부업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인터넷상에는 “높은 이자와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안재환 씨가 죽었다. 대부업체의 과도한 채권추심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을 문 닫게 해야 한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업체 한 관계자는 “안재환 씨 자살사건 이후로 항의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고객도 20~30% 줄었다. 몇억원의 빚이 1~2년 만에 몇십억원으로 불어난다는 것은 정상적인 대부업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그런 피해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