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자살할 거야.” 누구든 어머니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귀싸대기’ 맞기에 딱 좋다. 그러나 딸이 정말 ‘죽으려고 작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극 ‘잘 자요, 엄마’(마샤 노먼 작, 문삼화 연출)는 자살의 이유를 납득시키려는 딸과 그 딸을 막으려는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무대는 미국의 평범한 시골집. 여느 토요일 저녁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델마는 TV를 시청하고 있고, 집 안을 정돈하던 딸 제시가 갑자기 다락에서 총이 든 상자를 가지고 내려와 자살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극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딸의 천연덕스러운 폭탄선언에 처음에는 가볍게 대응하지만, 이내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이유를 캐묻지만 ‘버스를 타고 50개의 정거장을 더 가더라도 내려서는 곳은 마찬가지’라는 딸의 허무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제시는 간질병 발작 증세 때문에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는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문제아 아들은 가출한 지 오래다. 그러나 제시가 자살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표면적인 불행보다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 때문이다.
자살을 앞두고 딸 제시가 어머니 델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속 깊은 대화. 덕분에 두 사람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딸은 어머니가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신상에 대한 비밀을 듣고 괴로워하고, 어머니는 딸이 그토록 깊은 외로움과 공허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그동안 딸의 삶은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살을 감행하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행동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 용서해다오. 난 네가 내 건 줄 알았어.” 총성이 울린 후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전혀 감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된다. 어머니와 딸은 자살을 앞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코코아를 끓여 마시고, 소파의 천을 새로 씌우는 등 소소한 재미를 나눈다. 여느 날과 같이 ‘잘 자요, 엄마’라는 인사말을 남긴 채 방에 들어가 자살을 감행하는 딸, 총성이 울린 후에 기절하거나 뛰쳐나가지 않고 딸과 함께 코코아를 끓여 마셨던 냄비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TV를 시청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복합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이처럼 일상과 특수한 상황의 조화는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히 평범한 대화가 안도감을 주려는 순간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비집고 올라오기를 반복하면서 증폭되는 긴장감이 극을 탄력 있게 이끌어간다.
연극 ‘잘 자요, 엄마’는 자살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선입견을 입히지 않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살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장식 없이 표현한다. 동시에 아폴론적으로 정돈된 일상을 비집고 나온 균열을 통해 많은 문제와 비밀을 덮어놓은 채 서로를 소외시킨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연극 ‘잘 자요, 엄마’(마샤 노먼 작, 문삼화 연출)는 자살의 이유를 납득시키려는 딸과 그 딸을 막으려는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무대는 미국의 평범한 시골집. 여느 토요일 저녁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델마는 TV를 시청하고 있고, 집 안을 정돈하던 딸 제시가 갑자기 다락에서 총이 든 상자를 가지고 내려와 자살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극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딸의 천연덕스러운 폭탄선언에 처음에는 가볍게 대응하지만, 이내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이유를 캐묻지만 ‘버스를 타고 50개의 정거장을 더 가더라도 내려서는 곳은 마찬가지’라는 딸의 허무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제시는 간질병 발작 증세 때문에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는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문제아 아들은 가출한 지 오래다. 그러나 제시가 자살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표면적인 불행보다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감 때문이다.
자살을 앞두고 딸 제시가 어머니 델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속 깊은 대화. 덕분에 두 사람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딸은 어머니가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신상에 대한 비밀을 듣고 괴로워하고, 어머니는 딸이 그토록 깊은 외로움과 공허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한다. 그동안 딸의 삶은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살을 감행하는 것 이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행동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 용서해다오. 난 네가 내 건 줄 알았어.” 총성이 울린 후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전혀 감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된다. 어머니와 딸은 자살을 앞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코코아를 끓여 마시고, 소파의 천을 새로 씌우는 등 소소한 재미를 나눈다. 여느 날과 같이 ‘잘 자요, 엄마’라는 인사말을 남긴 채 방에 들어가 자살을 감행하는 딸, 총성이 울린 후에 기절하거나 뛰쳐나가지 않고 딸과 함께 코코아를 끓여 마셨던 냄비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TV를 시청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복합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이처럼 일상과 특수한 상황의 조화는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히 평범한 대화가 안도감을 주려는 순간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비집고 올라오기를 반복하면서 증폭되는 긴장감이 극을 탄력 있게 이끌어간다.
연극 ‘잘 자요, 엄마’는 자살이라는 소재에 윤리적인 선입견을 입히지 않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살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장식 없이 표현한다. 동시에 아폴론적으로 정돈된 일상을 비집고 나온 균열을 통해 많은 문제와 비밀을 덮어놓은 채 서로를 소외시킨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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