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야경.
1972년 현대조선소(현대중공업)라는 회사만 세웠지, 아직 조선소가 없는 상황에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거북선 그림과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 들고 그리스로 날아가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 두 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74년 6월, 울산조선소 준공식과 초대형 유조선 명명식이 동시에 열린다. 인하대 김효철 교수(정석물류통상연구원)는 이 행사를 “한국 조선산업의 신기원을 여는 경축행사”라고 평가했다.
1977년에는 삼성이, 그리고 이듬해에는 대우가 조선산업에 뛰어들었고,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하에 조선산업은 한국의 대표산업으로 성장해나갔다. 2000년 이후 한국은 조선업 강자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현재 세계 10위 조선업체 중 6개가 한국기업이다. 선박은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수출 품목이다.
‘우월적’ 지위 유지 꼭 필요한 투자
이처럼 위풍당당한 한국 조선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오자 여러 국내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인수 전쟁’에 나선 것은 당연지사. 1990년대 후반 공적자금을 투입받고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한 대우조선해양은 세계시장 점유율 5.4%(2007년 수주량 기준)로 세계 3위 조선업체다. 최대주주는 31.3%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산업은행이고, 이 은행은 정부가 지분 100%를 가진 공기업이다. 즉,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공기업 자회사를 민간에 파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뛰고 있는 기업은 GS그룹, 포스코, 한화그룹, 현대중공업 4곳으로 10월 초 현재 예비실사 과정에 있다. 현장 실사와 최종 입찰을 거쳐 10월 말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예상되는 매각 금액은 6조~8조원. 대어(大魚) 중 대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앞두고 조선학계에서 이 매각대금의 일부를 조선해양 관련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와 주목된다. 9월 초 열린 대우조선해양 매각 관련 토론회에서 대한조선학회는 “매각대금의 5%를 미래조선기금(가칭)으로 활용해 조선해양과 유관 기술의 연구활동에 투자하자”고 주장했다. 1조1700억원의 국민 세금으로 살려낸 회사인 만큼, 매각대금 일부를 국가 기술력을 높이는 데 쓰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윤영 의원은 조선기금 마련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 중이다.
조선학계가 조선기술 관련 R·D 기금 마련을 주장하는 이유는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산업이 지난해 세계 선박 발주량의 39%를 차지하고, 278억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지만 5년 후, 10년 후까지도 이러한 ‘우월적’ 지위를 누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중국의 추격과 유럽 미국 일본의 기술 발전이 그러한 판단 근거다. 특히 유럽의 기술 보호주의 강화가 우려를 낳는다. 충남대 이창섭 교수(선박해양공학)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상세하게 공개되는 유럽 등의 선진 조선기술을 뒤쫓으면서 성장해왔다”며 “그러나 최근 유럽연합(EU)은 한국 일본 중국을 완전히 배제한 채 최신 선박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돈을 내도 참여를 금지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EU는 2006년부터 200억원을 들여 선박의 설계와 성능 향상에 쓰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같은 조선산업과 정보기술(IT) 산업의 연계는 아직 국내에서는 준비조차 안 된 상황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또 일본은 심해에 묻혀 있는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캐내 운반하는 선박의 설계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김효철 교수는 “일본은 이미 이 기술을 국제표준화하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MO)에 제출해 심사를 받는 중이지만, 우리는 이 분야에 대해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중국, 일본, 유럽 턱밑까지 추격
세계 정상인 국내 조선업체들의 R·D 투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우려를 낳고 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제조업 전체 평균의 경우 1.8%이지만 조선업은 0.75%에 그친다(2006년 기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지난해의 경우 R·D 투자액은 오히려 전년도보다 10%가량 줄어든 1477억원에 그쳤다. 한편 삼성전자는 해마다 전체 매출액의 9~1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R·D 투자가 저조한 것은 기술변화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 조선업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당장 쓰일 수 있는 응용기술 개발에만 치중하는 국내 조선업계 현실은 조선산업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이 없었다면 IT기술이 지금만큼 발전하지는 못했겠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대식 이동통신연구본부장은 연간 1조3000억원 규모로 운용되고 있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을 IT강국의 자양분이라고 평가했다. 통신사업자가 내는 연구개발출연금과 주파수 할당대가 등을 재원으로 삼는 이 기금은 IT 관련 기술 연구와 대학의 인력 양성, 중소업체 융자 등을 지원하며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계기로 조선산업에도 이와 같은 기금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우조선해양 발자취 |
1978년 대우그룹, 옥포조선소 인수 |
1994년 대우중공업으로 합병 |
1999년 대우그룹 구조조정 진행, 대우중공업 워크아웃 돌입(총 1조1700억원의 공적자금 투입) |
2000년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로 기업 분할, 대우그룹에서 분리 |
2001년 워크아웃 졸업, 한국증권거래소 상장 |
2002년 대우조선해양주식회사(DSME)로 사명 변경 |
2007년 60억불 수출의 탑 수상 및 200억불 초과 수주 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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