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시내 풍경.
자밀라가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에 다니던 1997년, 내가 이 나라의 수도 타슈켄트를 일주일간 방문했을 때 그와 비슷하게 생긴 미녀를 많이 봤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미녀들이 한국에 많이 오지 못했다.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이 냉랭했고 우즈베키스탄인이 한국 비자를 받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난 8월 우즈베키스탄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타슈켄트에서 서쪽으로 500km 떨어진 나보이공항에 대한항공 화물기가 취항하는 것을 취재하는 현장이었다.
타슈켄트에서 나보이로 가는 국내선에는 미녀 스튜어디스들이 가득했다. 1시간 동안 기내 서비스는 음료수 한 잔이 전부. 그러나 제2의 ‘자밀라’를 보는 한국 승객 중 부실한 서비스를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즈베키스탄 미녀들에게 압도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물기 취항 취재 중 황당한 체험 아직도 고개가 ‘절레절레’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우즈베키스탄의 참모습을 체험했다. 화물기 취항식이 끝나고 타슈켄트로 돌아가는 항공편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예정 시간보다 20분 먼저 떠났다.
나보이공항은 중앙아시아 사막지대 한복판에 새로 생긴 공항이다. 이날 타슈켄트로 가는 항공기는 한 대뿐이었다. 나는 시내로 나가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운전사는 “에어컨이 달린 한국의 중고 자동차를 구입했다”며 500km를 5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이 택시는 나보이 시내를 벗어나 10km를 달리자 엔진이 멈췄다. 보닛을 열어보니 엔진룸에는 중국산 부품들이 가득했다. 중국산 부품에 한국산 차체를 덧씌운 불량 택시였던 것이다.
나보이 시내로 되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는 에어컨이 없는 대우 넥시아였다. 창문을 열고 시속 80km로 달렸지만 한낮 사막 기후로 택시 안은 사우나보다 더 뜨거웠다.
시내에서 또 다른 택시를 상대로 흥정에 들어갔다. 옛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흥정을 하는 것은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룰렛게임이다. 운전사는 “타슈켄트까지 4~5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에어컨이 없어 무척 더웠지만 해가 기울어 참을 만했다. 하지만 타슈켄트까지 7시간 반이나 걸렸다. “왜 주행 시간을 속였느냐”고 묻자 운전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면 승객들이 택시를 타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오전 타슈켄트 거리에는 11년 전과 다름없이 수많은 자밀라 후보들이 지나갔다. 사진을 찍는데 경찰이 달려왔다. 타슈켄트 경찰은 “관광객이 현지 통역인 없이 다니면 불법”이라며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
자밀라가 한국을 가까운 나라라고 여기면 다행이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자밀라를 키운 조국의 진면목을 체험해보라고 권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