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근 ‘Tenseless-54, Awaken’(2007)
그렇다면 사진도 회화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취급돼 내용적 측면만 논의될 수는 없을까? 회화와 사진이라는 장르를 떠나 이미지 자체로만 사유할 수는 없을까?
박형근은 주로 숲, 들, 호수, 건물 등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촬영해왔다. 그의 화면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꽃, 새, 천, 목걸이 등이 인위적으로 첨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물건과 배경이 때론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서로 대비되면서 어색하고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이 ‘Tenseless’ 시리즈다. ‘tenseless’는 긴장이 없거나 와해됐다는 뜻의 영어 단어지만, 박형근은 순간의 긴장을 벗어난 것 혹은 순간을 초월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한순간을 포착해 기록한다(장시간 노출해 촬영할 수도 있지만). 따라서 사건의 연속으로 이뤄진 내러티브를 사진에 담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한 장면을 연속 촬영해 내러티브를 억지로 만들 수는 있다. 박형근은 한 장의 사진에 순간뿐 아니라 여러 시간을 응축하고자 한다. 그는 빛·구도·색채·사물 등을 최대한 활용해 다른 것을 연상시킬 수 있는 독특한 상황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되도록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성되기를 바란다. 즉 관객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사진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재구성하게 된다.
박형근 ‘Tenseless-51, A Silhouette’(2007)(왼쪽부터), 박형근 ‘Tenseless-52, A Song of Silence’(2007), 박형근 ‘Tenseless-56, Winter Flowers’(2008)
마지막으로 그의 사진에서 주목할 점은 ‘크기(scale)’의 문제다. 박형근은 담에 금이 간 장면을 클로즈업해 번개 치는 이미지를 만들고, 바위와 늪에 특수 조명을 비춰 거대한 혹성의 표면을 나타냈다. 비록 시각적 착각이더라도 그는 미미한 사물로 대자연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반성적·철학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마치 가까운 곳에 진리가 있듯이. ~7월13일, 갤러리 잔다리. 문의 02-323-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