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코’
대학이 대중화된 것은 산업화 시기에 대학이 전문인력 배출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 역시 이제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 누구나 가는 필수 코스 정도로 바뀌었다. 학문적 진리탐구의 장에서 실용적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됐다. 보편적 진리를 잃은 대신 ‘학업 기회의 보편성’을 얻은 셈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보통교육이 된 대학교육이 새로운 의미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웬만한 가정에서는 대학교육 시키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된 것이다.
흔히 필수적인 사회복지의 두 축으로 의료와 교육을 꼽는다. 한국은 의료보험과 (일정한 수준까지의) 무상교육으로 이들을 상당히 성취했다고 자평해왔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코(Sicko)’를 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산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미국의 허술한 의료보험 체계를 그린 이 영화에는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 작업하다 잘린 두 손가락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보험 가입이 안 돼 있어 한 개만 봉합한다. 웬만큼 다쳐도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치료한다. 다친 부위를 바늘과 실로 직접 꿰매는, 수술도 집에서 ‘셀프’로 하는 장면은 정말 문명국 미국인가 하는 놀라움이 든다.
‘시코’에 앞서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라는 영화도 의료보험 문제를 제기했다. 아이가 눈앞에서 죽어가지만 보험혜택은 안 되고, 그렇다고 정부에서 도와주지도 않자 아버지는 인질극을 벌인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시스템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는 이들 영화를 보며 한국인들은 남의 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복지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한국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회보장비가 최하위인 나라가 한국이다. 비록 의료보험은 부실하지만 미국의 사회보장비는 우리보다 2배 이상 많다.
대학등록금 문제만 해도 미국 대학의 학비가 비싼 것만 봐서는 안 된다. 학자금 보조 정책이 잘돼 있어 미국 학생들은 큰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다. 비싼 학비는 오히려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비싼 학비를 받아내 어려운 가정들에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문제에서만큼은 ‘한국판 시코’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