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작 ‘매화와 항아리’.
학습기는 스승에게 기법을 배우고 익히는 시기로 아직 자기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독창성을 갖기 위해서는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는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외롭고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 미술대학을 나온 사람 가운데 이 치열한 전투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100명 중 한 명 정도다.
이 난관을 지나면 그 작가의 사유구조와 닮은 고유한 조형언어가 만들어지고, 양식의 변화와 진폭도 줄어 안정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작품 제작에 탄력이 붙으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보통 40, 50대에 전성기에 다다르지만 박생광 씨처럼 70을 맞아서야 전성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전성기에 이르면 대중적 인기가 높아진다. 그러면 작가는 본래 의지를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의식 있는 작가들은 다시 모색기를 통해 새로운 반전을 추구하지만 여기에 성공한 작가 또한 흔치 않다. 매너리즘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모색이 잦아 혼란스러운 것도 문제다. 김환기 씨나 이응노 씨처럼 인생에서 두세 번 전성기를 창출할 수 있고, 그것을 매력적인 열매로 만들어낸다면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학습기와 전성기의 작품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만, 전성기와 매너리즘기의 작품을 구분하는 것은 정밀한 내적 진찰이 필요하다. 비슷한 양식이 오래 계속되고 개념적 변화 없이 장식만 화려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면 일단 매너리즘을 의심해야 한다. 두 시기의 작품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의 냉철한 시각이 늘어날 때 작가들은 비로소 본연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