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
물론 이 같은 계획이 순탄하게 추진될 리는 없다. 당연히 시민단체들은 ‘1984년의 현실화’라고 비판한다. 이 논란에 대해 어느 한쪽이 옳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안전’과 ‘개인정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 공방은 낯설지 않다. 다만 그 추세가 영국과는 상반된다는 데 차이가 있다. 한국은 개인 생체정보 이용에 관대하다. 일찌감치 전 국민의 지문을 한곳에 집적해놓은 나라가 아닌가.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시골형사 박두만이 유전자검사 기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모습을. 과학 수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1980년대 미국 전문기관이 판정해주는 유전자 감식 검사 결과는 연쇄살인범을 옴짝달싹 못하게 할 신기한 주문 같았다. 박두만 형사의 믿음은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믿음이나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첨단과학의 조화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이들은 개인정보 악용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반대로 영국은 사회 안전을 위해 개인정보를 희생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 두 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는 세계 많은 나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의 ‘안전’을 어느 정도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타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인 미래사회의 특징이 압축적으로 펼쳐진다. 막 태어난 아기의 몸에서 피 한 방울을 채취하는데, 그 안에는 질병 발생률과 예상수명 같은 신체정보부터 성격까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사회는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 조합에 따라 ‘최적의 임신’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래서 열등한 유전자,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는 미리 걸러진다. 사회는 이런 식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완벽한 ‘치안체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사회가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낙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