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의 한 장면.
극작가 버나드 쇼는 정치에 대해 이렇듯 신랄한 악담을 퍼부었다. 그의 풍자와 독설은 너무 심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 말에 대해서만큼은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갖는 생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조차 자신이 하는 일의 ‘비밀’을 폭로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가는 자신이 한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믿으면 놀란다.”(프랑스 드골 전 대통령).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는 늘 이렇게 희화화되고 있고, 정치인은 지독한 불신의 대상이다.
최근 한 지상파 방송에서 ‘정치 에세이’라는 색다른 타이틀로 방송돼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은 이 직업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연민과 동정의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렸다. 카메라는 집 한 칸 장만할 돈이 없어 컨테이너박스에서 사는 전직 국회의원의 남루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정치인들의 진짜 삶이라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달콤쌉싸름한 인생’이던 것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제목의 멕시코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 영화에서 제목은 여주인공이 겪는 삶의 즐거움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정치인의 처지가 이와 같지 않으냐는 비유를 들고 싶었던 듯하다. 잘나갈 때의 그 달콤함, 거기에서 탈락했을 때의 쓰디쓴 현실. 마치 정치에 뜻을 품은 젊은이들에게 “이래도 정치를 하려 하느냐”란 얘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과연 유익한 것일까. 정치 세계에 대한 환상이 있다면 그건 깨줘야겠지만 그것이 단지 정치에 대한 냉소와 희화화에 그치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정치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 중 1939년 만들어진 흑백영화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가 있다. 보이스카우트 단장인 순진한 청년 스미스가 어느 날 갑자기 상원의원으로 발탁된 이후, 워싱턴 정가의 부패와 탐욕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도 분명 추악한 정치 현실이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더욱 선한 ‘권력의지’에 대한 추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에 출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가들은 부패했다고 믿고 있을 때, 저는 정치현장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좋은 동기를 갖고자 하는 데 12년을 바쳤습니다”.
진흙탕 같은 정치, 냉소만으로는 더 나빠질 뿐이다. ‘쌉싸름한’ 진실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