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금요일 밤에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시드니 록스 지역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선술집이 즐비한 록스 거리는 주말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유독 길 건너편 선술집 앞에 젊은이들이 50m가량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후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긴 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기에 줄을 선 호주 젊은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답변이 너무 싱거웠다. “이 집에서 생맥주를 파는데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혀요.”
‘더 늦기 전에 술독에 빠진 호주를 건져내야 한다!’
요즘 호주 각계에서 이런 경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호주 국민 1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음주로 인한 두뇌 손상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호주 국민 한 명이 매년 마시는 맥주의 양은 무려 150ℓ. 호주는 체코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맥주 소비량이 많은 나라다. 게다가 세계적인 포도 생산지인 호주는 최근 와인산업이 번창해전체 알코올 소비량을 따지면 앞의 두 나라를 제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고운 빛깔의 칵테일이 인기여서 이래저래 온 나라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사회단체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간 경기침체에 시달려온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회원국들과 달리 그런대로 호경기를 유지하는 호주에서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근 호주 언론에서는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연이어 주요 기사로 다뤄지고 있다. 8월11일 ‘데일리텔레그래프’지는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 두 명이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택시운전사를 폭행한 사건을 1면에 실었다. 사건의 장본인 메트 더닝과 로트 터퀴리 선수는 과거에도 음주 문제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일로 터퀴리 선수는 2만 호주달러(약 15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200만명 음주로 인한 두뇌손상 위기
그 다음 날인 12일에는 ‘호주 팝계의 대부’로 불리는 연예기획자 몰리 멜드럼이 ‘채널7’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금주를 선언했다. “결심을 한 번 더 다지기 위해 TV에서 공개적으로 금주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최근 런던의 한 연예행사에서 술에 취해 큰 실수를 저질렀고, 이 일이 소문으로 퍼진 상태다.
8월13일 ‘시드니모닝헤럴드’지에는 정말 믿기 어려운 기사가 실렸다. 빅토리아주에 거주하는 아홉 살짜리 소년이 알코올 중독 상태로 2년간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절도와 폭행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금방 풀려난다”며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붓곤 했다는 이 영악한 소년은 결국 체포돼 사회복지시설로 보내졌다. 덕분에 이 소년은 ‘빅토리아주 최연소 죄수’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호주 원주민들도 술독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6월 존 하워드 총리는 “앞으로 6개월간 노던 테리토리 특별지구에 속한 모든 원주민 커뮤니티에 알코올 판매를 금지한다“는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는 사회복지수당에 의존하는 많은 원주민들이 수당을 생활비나 자녀교육비가 아닌, 술을 사는 데 써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주민의 알코올 의존 문제는 백인들의 호주 정착과정에서 생긴 사회문제라 하워드 총리의 결정이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한편 알코올 문제를 연구·치료하는 비영리사회단체 ‘ARBIAS’가 8월6일 발표한 ‘알코올과 연관된 두뇌 손상에 관한 보고서’는 호주 주요 언론들에 의해 크게 다뤄졌다. 약 200만명의 호주 국민이 과다한 음주로 두뇌 손상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이 단체의 소냐 버튼 대표는 “남성은 하루 4~6잔, 여성은 2~4잔을 10년 동안 거의 매일 마실 경우 영구적인 두뇌 손상을 입는다”면서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국민은 태양과 섹스, 그리고 맥주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죄수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라는 열패감에서 비롯된 사회에 대한 반발의식과 풍요로운 땅에서 즐기며 살자는 낙관적 사고(She’ll be alright)가 묘하게 결합해 생긴 문화다. 또한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술을 마시면 모두 동등해진다”는 식의 동지애를 바탕으로 음주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선술집에 들르지 않으면 소외되는 전통도 있다.
그뿐 아니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한 잔씩 사는 관습이 있어 곤드레만드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은 노동자 계층에만 남아 있는 이 관습은 호주의 전통이면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호주 젊은이들은 동지애를 바탕으로 한 음주습관을 잊은 지 오래다.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 시대에 놓인 그들은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을 마신다. 또한 과음하기보다 빛깔 곱고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선호한다. 결국 사회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 가정폭력, 알코올로 인한 질병 등으로 국가적 손실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이다. 호주당국이 음주문제로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후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긴 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기에 줄을 선 호주 젊은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답변이 너무 싱거웠다. “이 집에서 생맥주를 파는데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혀요.”
‘더 늦기 전에 술독에 빠진 호주를 건져내야 한다!’
요즘 호주 각계에서 이런 경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호주 국민 1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음주로 인한 두뇌 손상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호주 국민 한 명이 매년 마시는 맥주의 양은 무려 150ℓ. 호주는 체코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맥주 소비량이 많은 나라다. 게다가 세계적인 포도 생산지인 호주는 최근 와인산업이 번창해전체 알코올 소비량을 따지면 앞의 두 나라를 제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고운 빛깔의 칵테일이 인기여서 이래저래 온 나라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사회단체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간 경기침체에 시달려온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회원국들과 달리 그런대로 호경기를 유지하는 호주에서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근 호주 언론에서는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연이어 주요 기사로 다뤄지고 있다. 8월11일 ‘데일리텔레그래프’지는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 두 명이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택시운전사를 폭행한 사건을 1면에 실었다. 사건의 장본인 메트 더닝과 로트 터퀴리 선수는 과거에도 음주 문제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일로 터퀴리 선수는 2만 호주달러(약 15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호주 서민들이 즐겨 찾는 바(bar) 형태의 술집(왼쪽)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호주 청년.
그 다음 날인 12일에는 ‘호주 팝계의 대부’로 불리는 연예기획자 몰리 멜드럼이 ‘채널7’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금주를 선언했다. “결심을 한 번 더 다지기 위해 TV에서 공개적으로 금주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최근 런던의 한 연예행사에서 술에 취해 큰 실수를 저질렀고, 이 일이 소문으로 퍼진 상태다.
8월13일 ‘시드니모닝헤럴드’지에는 정말 믿기 어려운 기사가 실렸다. 빅토리아주에 거주하는 아홉 살짜리 소년이 알코올 중독 상태로 2년간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절도와 폭행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금방 풀려난다”며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붓곤 했다는 이 영악한 소년은 결국 체포돼 사회복지시설로 보내졌다. 덕분에 이 소년은 ‘빅토리아주 최연소 죄수’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호주 원주민들도 술독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6월 존 하워드 총리는 “앞으로 6개월간 노던 테리토리 특별지구에 속한 모든 원주민 커뮤니티에 알코올 판매를 금지한다“는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는 사회복지수당에 의존하는 많은 원주민들이 수당을 생활비나 자녀교육비가 아닌, 술을 사는 데 써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주민의 알코올 의존 문제는 백인들의 호주 정착과정에서 생긴 사회문제라 하워드 총리의 결정이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한편 알코올 문제를 연구·치료하는 비영리사회단체 ‘ARBIAS’가 8월6일 발표한 ‘알코올과 연관된 두뇌 손상에 관한 보고서’는 호주 주요 언론들에 의해 크게 다뤄졌다. 약 200만명의 호주 국민이 과다한 음주로 두뇌 손상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이 단체의 소냐 버튼 대표는 “남성은 하루 4~6잔, 여성은 2~4잔을 10년 동안 거의 매일 마실 경우 영구적인 두뇌 손상을 입는다”면서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국민은 태양과 섹스, 그리고 맥주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죄수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라는 열패감에서 비롯된 사회에 대한 반발의식과 풍요로운 땅에서 즐기며 살자는 낙관적 사고(She’ll be alright)가 묘하게 결합해 생긴 문화다. 또한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술을 마시면 모두 동등해진다”는 식의 동지애를 바탕으로 음주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선술집에 들르지 않으면 소외되는 전통도 있다.
그뿐 아니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한 잔씩 사는 관습이 있어 곤드레만드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은 노동자 계층에만 남아 있는 이 관습은 호주의 전통이면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호주 젊은이들은 동지애를 바탕으로 한 음주습관을 잊은 지 오래다.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 시대에 놓인 그들은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을 마신다. 또한 과음하기보다 빛깔 곱고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선호한다. 결국 사회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 가정폭력, 알코올로 인한 질병 등으로 국가적 손실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이다. 호주당국이 음주문제로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