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차가운 권력의 법칙에 예외란 없다. 오랜 우정, 지연과 학연, 심지어 혈연조차 냉정하게 끊어버린다. 그래서 심리학자 맥코비(Maccoby)는 권력세계를 ‘정글’, 정치지도자를 ‘야수형’ ‘여우형’처럼 맹수에 비유했는지도 모른다.
이해찬(55)과 유시민(48). 두 사람도 권력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은 서울대와 운동권 선후배로, 한때 국회의원과 보좌관이라는 주종관계였다. 이를 놓고 언론은 정치사제라고 표현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왕의 남자’였지만, 지금은 둘 다 민주신당의 대선주자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돌변해 ‘노무현의 우산’ 아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 세 사람은 싸움에 능한 투사형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차별성을 가진다. 노 대통령이 선천적 투사형이라면 이해찬은 정책적 투사형, 유시민은 자유주의적 투사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해찬, 정책적 투사형 … 부하에게 깐깐한 의리파
이 전 총리는 한마디로 정책적 투사형이다. 잘 싸우되, 막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쓴다는 뜻이다. 그는 독재정권과 싸우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됐고, 88년 정계 입문 이후에는 당의 주류,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과 끊임없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획통’이란 듣기 좋은 수식어를 달았다. 그 덕에 5선 국회의원, 서울부시장, 교육부총리, 국무총리 등 행정가로서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요컨대 그는 콘텐츠가 있는 투사다. 이런 특징은 민주신당 경선 국면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성격은 알려진 대로 직선적이다.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다. 본인 스스로 단점을 ‘버럭 화내기’라 말하고, 실제로 화가 났을 때는 소리를 질러 상대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질의 때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아니다’ 싶으면 호통을 치거나 면박을 줬다. 그래도 한번 사귀면 오래가는 의리파다. 경선 캠프의 참모들 중에는 초선의원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동지가 많다. 그의 이미지에는 추진력, 고집, 결단, 독선, 냉철함이 있다. 이런 사람은 부하에게 깐깐하지만, 보스 처지에서는 믿음직스럽다.
이 전 총리의 이런 스타일은 성장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다. 일본 중앙대를 나온 부잣집 인텔리였던 아버지는 7남매 중 다섯째인 아들 해찬의 정치적 자질을 인지했고, “절대 변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덕에 그는 집안 식구들의 호응 속에 1980년대 초부터 재야인사 중 유일하게 자가용을 몰고 다녔다. 정치활동 와중에도 서점, 곰탕집, 출판사 운영 등 사업수완도 발휘했다. 또한 가까운 친척이 국회부의장이었고 아버지가 그 밑에서 선거사무장을 했던 만큼 일찌감치 정치감각을 익혔다.
요즘 이 전 총리의 권력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높은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의 꿈은 대통령이며, 라이벌은 없다”고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그러나 그의 대선후보 적합도는 한 번도 5%를 넘지 못했다. 이 전 총리의 말투가 원래 직선적이긴 하지만, 대선출마 선언 이후 독설이 부쩍 많아진 이유가 인지도 제고를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시민 전 장관이 대선판에 뛰어들었으니, 이 전 총리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유 전 장관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투사형이다. 2003년 첫 등원 때 국회 본회의장에 백바지 차림으로 나타났고, 스스로 “나는 진보적이기보다 자유주의적 성향이 훨씬 강하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런 자유주의자의 행보는 럭비공처럼 예측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8월 말 민주신당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이 손학규 전 지사의 정체성을 비판했지만, 오직 유 전 장관만 “역대 보건복지부 장관 가운데 최고”라며 치켜세워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같은 투사형이지만 행보를 예측할 수 있는 이 전 총리와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다. 또한 유 전 장관 같은 자유주의자는 낭만파 기질이 있다. 낭만파는 대체로 글을 쓰고,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며,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격정적이다. 노 대통령이 청년 시절 ‘간호원 연가’를 쓰고 자주 잠적했으며 감정표출이 극적인 것도 이런 낭만적 기질 때문이다.
유시민, 자유주의적 투사형 … 감정표출 극적인 낭만파
사실 노 대통령과 유 전 장관의 성장과정,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가히 ‘빅 노무현’과 ‘리틀 노무현’이라고 할 만큼 닮은꼴이다. 유 전 장관의 홈페이지를 보면 유소년기의 가난에 대한 과민 반응을 비롯해, 학창시절 법관이 되어 반드시 출세하겠다는 상승욕구,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력, 고교 시절 삐뚤어진 모범생의 일탈행동,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분노까지 노 대통령과 많은 점에서 닮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아버지를 부당하게 차별 대우했던 세상에 대한 냉소주의와 반감이 컸다.
“(아버지가) 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고 권모술수를 모른다는 이유로 냉대받고 소외당한다는 사실이 내 가슴속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 이후 나의 의식 한 귀퉁이에서 정신적 반란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유 전 장관의 이 고백은, 어머니를 박대한 이 세상이 자신의 원망과 반항심을 키웠다는 노 대통령의 자서전을 연상시킨다. 유 전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 공부보다는 학회, 농촌활동, 야학을 거치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뜨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유시민 하면 흔히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옥중 항소이유서,‘거꾸로 읽는 세계사’, MBC 100분 토론 진행자, 뛰어난 달변과 논리의 정치인을 떠올린다. 그는 이제 자신의 투사적 이미지를 벗고,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며 나섰다. 대충 폼잡다가 특정 후보를 돕는 것 아니냐는 반응에 대해 그는 “죽기 살기로 하고 있다”고 정색한다.
조만간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은 또 다른 권력의 법칙에 직면할 것이다.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냐, 아니면 다시 똘똘 뭉쳐 노무현 패밀리의 신화를 재현할 것이냐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두 사람은 친노 그룹의 대표성과 호남권의 헤게모니, 전현직 대통령의 지지 획득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권력의 세계에서 적과 동지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최진 고려대 연구교수(행정학)·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이해찬(55)과 유시민(48). 두 사람도 권력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은 서울대와 운동권 선후배로, 한때 국회의원과 보좌관이라는 주종관계였다. 이를 놓고 언론은 정치사제라고 표현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왕의 남자’였지만, 지금은 둘 다 민주신당의 대선주자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돌변해 ‘노무현의 우산’ 아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 세 사람은 싸움에 능한 투사형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차별성을 가진다. 노 대통령이 선천적 투사형이라면 이해찬은 정책적 투사형, 유시민은 자유주의적 투사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해찬, 정책적 투사형 … 부하에게 깐깐한 의리파
이 전 총리는 한마디로 정책적 투사형이다. 잘 싸우되, 막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쓴다는 뜻이다. 그는 독재정권과 싸우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됐고, 88년 정계 입문 이후에는 당의 주류, 보수언론, 기득권 세력과 끊임없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획통’이란 듣기 좋은 수식어를 달았다. 그 덕에 5선 국회의원, 서울부시장, 교육부총리, 국무총리 등 행정가로서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요컨대 그는 콘텐츠가 있는 투사다. 이런 특징은 민주신당 경선 국면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성격은 알려진 대로 직선적이다.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다. 본인 스스로 단점을 ‘버럭 화내기’라 말하고, 실제로 화가 났을 때는 소리를 질러 상대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질의 때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아니다’ 싶으면 호통을 치거나 면박을 줬다. 그래도 한번 사귀면 오래가는 의리파다. 경선 캠프의 참모들 중에는 초선의원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동지가 많다. 그의 이미지에는 추진력, 고집, 결단, 독선, 냉철함이 있다. 이런 사람은 부하에게 깐깐하지만, 보스 처지에서는 믿음직스럽다.
이 전 총리의 이런 스타일은 성장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정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다. 일본 중앙대를 나온 부잣집 인텔리였던 아버지는 7남매 중 다섯째인 아들 해찬의 정치적 자질을 인지했고, “절대 변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덕에 그는 집안 식구들의 호응 속에 1980년대 초부터 재야인사 중 유일하게 자가용을 몰고 다녔다. 정치활동 와중에도 서점, 곰탕집, 출판사 운영 등 사업수완도 발휘했다. 또한 가까운 친척이 국회부의장이었고 아버지가 그 밑에서 선거사무장을 했던 만큼 일찌감치 정치감각을 익혔다.
요즘 이 전 총리의 권력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높은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의 꿈은 대통령이며, 라이벌은 없다”고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그러나 그의 대선후보 적합도는 한 번도 5%를 넘지 못했다. 이 전 총리의 말투가 원래 직선적이긴 하지만, 대선출마 선언 이후 독설이 부쩍 많아진 이유가 인지도 제고를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시민 전 장관이 대선판에 뛰어들었으니, 이 전 총리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유 전 장관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투사형이다. 2003년 첫 등원 때 국회 본회의장에 백바지 차림으로 나타났고, 스스로 “나는 진보적이기보다 자유주의적 성향이 훨씬 강하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런 자유주의자의 행보는 럭비공처럼 예측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8월 말 민주신당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이 손학규 전 지사의 정체성을 비판했지만, 오직 유 전 장관만 “역대 보건복지부 장관 가운데 최고”라며 치켜세워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같은 투사형이지만 행보를 예측할 수 있는 이 전 총리와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다. 또한 유 전 장관 같은 자유주의자는 낭만파 기질이 있다. 낭만파는 대체로 글을 쓰고,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며,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격정적이다. 노 대통령이 청년 시절 ‘간호원 연가’를 쓰고 자주 잠적했으며 감정표출이 극적인 것도 이런 낭만적 기질 때문이다.
유시민, 자유주의적 투사형 … 감정표출 극적인 낭만파
사실 노 대통령과 유 전 장관의 성장과정,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가히 ‘빅 노무현’과 ‘리틀 노무현’이라고 할 만큼 닮은꼴이다. 유 전 장관의 홈페이지를 보면 유소년기의 가난에 대한 과민 반응을 비롯해, 학창시절 법관이 되어 반드시 출세하겠다는 상승욕구,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력, 고교 시절 삐뚤어진 모범생의 일탈행동,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분노까지 노 대통령과 많은 점에서 닮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아버지를 부당하게 차별 대우했던 세상에 대한 냉소주의와 반감이 컸다.
“(아버지가) 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고 권모술수를 모른다는 이유로 냉대받고 소외당한다는 사실이 내 가슴속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 이후 나의 의식 한 귀퉁이에서 정신적 반란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유 전 장관의 이 고백은, 어머니를 박대한 이 세상이 자신의 원망과 반항심을 키웠다는 노 대통령의 자서전을 연상시킨다. 유 전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 공부보다는 학회, 농촌활동, 야학을 거치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뜨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유시민 하면 흔히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옥중 항소이유서,‘거꾸로 읽는 세계사’, MBC 100분 토론 진행자, 뛰어난 달변과 논리의 정치인을 떠올린다. 그는 이제 자신의 투사적 이미지를 벗고,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며 나섰다. 대충 폼잡다가 특정 후보를 돕는 것 아니냐는 반응에 대해 그는 “죽기 살기로 하고 있다”고 정색한다.
조만간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은 또 다른 권력의 법칙에 직면할 것이다.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냐, 아니면 다시 똘똘 뭉쳐 노무현 패밀리의 신화를 재현할 것이냐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두 사람은 친노 그룹의 대표성과 호남권의 헤게모니, 전현직 대통령의 지지 획득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권력의 세계에서 적과 동지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최진 고려대 연구교수(행정학)·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