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 왼쪽). 7월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서울의 친선경기, 맨유의 웨인 루니(오른쪽)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수치부터 확인해보자. 글로벌리서치 회사 ‘모리(MORI)’는 2003년 이미 ‘아시아 지역 맨유 팬이 4300만명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2300만명이 중국인’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으니 지금 이 회사의 분석팀은 그 당시보다 엄청나게 불어난 팬과 시장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2003년을 앞뒤로 하여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 중국의 순 지하이 등이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데 이어 한국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등도 잉글랜드에 둥지를 틀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축구 문화가 얼마나 광범위하면서도 신속하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프리미어리그는 초기 이른바 ‘티셔츠 보이’라고 해서 엄청난 인구와 경제성장을 통해 서서히 떠오르고 있던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일종의 미끼 상품처럼 선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박지성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음으로써 프리미어리그와 아시아 선수의 결합은 단순한 이벤트 상품 만들기가 아니라 뛰어난 선수와 광범위한 팬층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이제 동아시아 시장은 유럽의 축구산업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블루오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적 수익·전 세계 수많은 팬 확보
잉글랜드리그의 경우 앞으로 3년 동안 전 세계 208개국 미디어로부터 무려 1조1550억원의 중계권료를 받는다. 여기에 모바일폰, 인터넷 중계 등을 더하면 약 5조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이는 각 클럽의 광고, 입장료, 이적료 등 고정 수입을 제외한 것. 이 엄청난 ‘블루오션’을 은하계 최대 부자들이 가만둘 리 없다. 맨유(미국 글레이저 가문), 첼시(러시아 석유재벌 아브라모비치), 풀럼(이집트 재벌 알파에르), 뉴캐슬(미국 헤지펀드 폴리곤) 등이 이미 잉글랜드 바깥의 전주들에게 넘어갔다.
이번에 방한했던 맨유를 살펴보자. 맨유 스폰서인 미국 보험회사 AIG는 맨유 티셔츠에 로고를 새기는 대가로 1년에 2800만 달러를 지불한다. 어느 주주가 ‘영국에 왜 그렇게 많이 투자하느냐’고 물었을 때 AIG의 CEO 마틴 설리번은 “영국이 아니라 아시아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태풍의 진앙지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말해주는 대답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국인 서포터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열기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가?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흥행 구단인 맨유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긴 열기인가?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비슷한 시기 개최된 ‘2007 피스컵 대회’에도 볼튼 원더러스(잉글랜드), 올림피코 리옹(프랑스), 라싱 상탄데르(스페인) 등이 참가했고 브라질의 명문 클럽 SC 인터나시오날도 방한해 대전과 창원에서 평가전을 치렀다. 그러나 맨유에 비해 수익이나 관중 수를 따질 정도는 아니었다. 틀림없이 맨유였기 때문에, 더욱이 박지성에 의해 이미 국내 팬들과 친숙해진 호나우두, 루니, 긱스 등이 있었기에 그와 같은 바람이 불었다.
맨유 태풍, 우리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져
그러나 이러한 열풍은 단순히 명문 클럽이 왔기 때문이라는 ‘외인론’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열풍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가 좀더 중요하다는 ‘내인론’이 반드시 제기돼야 한다.
지금 맨유의 서포터스를 자처하며 정열적으로 응원했던 층은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다. 이 세대는 대중문화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이후 사회화된 세대로 그 이전 세대가 갖고 있는 문화에 대한 이중적 감정, 즉 개인적으로는 대중문화를 즐기지만 그것을 공론의 주제로 삼을 때는 비판적 입장에 서는 기이한 ‘균형감각’ 자체가 없는 세대다.
이 세대는 어떤 균형감각 이전에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문화가 실제로 즐길 만한 것이며 그 속에 몰입할 만큼 짜릿한 요소가 있는 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이들에게는 전지현과 스타크래프트와 배낭여행, 인터넷 댓글 놀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상이다.
축구 역시 같은 맥락의 문화적 대상이다. 특히 2002 월드컵과 박지성, 이영표의 유럽 빅리그 진출로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문화로 다가왔다. 이를 소비하는 과정, 즉 밤늦도록 잉글랜드리그를 시청하고 긱스나 호나우두의 팬페이지를 만들고 온라인 축구게임에 몰입하는 등의 행위는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관심, 즉 ‘팬덤’과 다를 바 없다. 바로 이 같은 문화적 욕망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전개됐기 때문에 ‘맨유 태풍’이 불어닥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무국적의 몰입’이 대표팀이나 K리그에 대한 무관심, 혹은 외국 것에 대한 추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는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수준의 축구 문화에 대한 관심은 중장기적으로 우리 축구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근대적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요소를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한다면 이 같은 관심이 외국 것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좀더 세련되고 정열적이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 그것이 가능한 사회를 향한 애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럽의 명문 클럽은 줄지어 동아시아 시장을 방문할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화 이전에 축구는 세계화된 문화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적 열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열정이 이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해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