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지 마라’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차이나 아방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미혹하기 훨씬 이전 최민화는 저 날렵한 붓으로 ‘분홍’ 연작을 그려내고 있었다. ‘실버들을 천만 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 못한단 말인가.’
가수 인순이의 희자매 시절 노래 ‘실버들’. 소월의 시로 만든 노래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저 기막힌 회화의 추억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단 말인가.
사진이 포착한 인물과 사건 회화로 재구성
1980년대를 거치면서 이름을 민화(民花)로 바꾼 화가 최민화가 20년 동안 그린 80년대 거리의 기억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전시가 열렸다. 50여 점의 회화작품을 내놓은 이 전시는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것이다. 누군가 기획을 해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이 혼자서 이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기념전을 연다. 이 사실만 봐도 이 예술가가 80년대 거리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열렬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출품작들은 대부분 가두투쟁 장면을 담고 있다.
소파에 눕듯 거리에 누워 군홧발에 짓밟히며 끌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파쇼에 누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989년에 그린 ‘쏘지 마라’란 작품은 한 인물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웃통을 벗고 앞으로 달려나오는 유명한 사진을 회화로 재현한 것이다. 얇고 맑게 그리는 90년대 그림들과 대비되는 이 그림은 굵은 붓질로 툭툭 쳐서 그린 것이 사뭇 흥미롭다.
80년대 거리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장면들. 출품작들은 사진이 포착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해 그린 다큐멘터리 그림들로, 사실적 재현과 초현실적 재구성을 통해 만들어졌다. 87년 6월의 민주화 투쟁부터 그 직후의 노동자 대투쟁, 통일을 외쳤던 학생운동까지 그가 지켜보았던 역사를 낱낱이 조망하고 있다. 분홍 깃발을 펼쳐든 사람들의 표정에서 아스라이 거리의 추억이 맴돈다.
‘6월9일’(왼쪽), ‘파쇼에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