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야외 조각장에 설치된 곽덕준의 설치작품 ‘`10개의 계량기`’. 이 작품은 `계량하는 것이 계량되고 있다`는 난센스를 드러낸다.
이러한 의도로 서울대 2008학년도 통합교과논술 2차 예시문항, 이화여대 2007학년도 수시 2학기 논술고사 문제에서도 이미지 제시문이 출제됐다. 미술 과목에 관심 없는 학생들의 경우 이미지 제시문을 보는 순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논술에서 활용되는 이미지는 나머지 제시문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추론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이미지 제시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제시문을 활용해 이미지를 해석해낸다면 충분히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나머지 제시문과의 관계 속 의미 추론 수준
논술고사에서 이미지를 가장 먼저 활용한 대학은 연세대다. 연세대는 2003학년도와 2005학년도 정시 논술고사에서 이미지를 제시문으로 출제했다. 성균관대도 2004학년도 1학기 수시 논술고사에서 이미지 제시문을 출제했다. 최근의 논술고사가 ‘주어진 제시문에서 학생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추출하는가’라는 점을 평가하기 때문에 제시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문학 연구에서 이미지의 영향력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이미지 이해 능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지 제시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 출제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다른 제시문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2003학년도 연세대 정시논술에서는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1. 이미지는 심오한 현실을 표현한다. 2. 이미지는 심오한 현실을 은폐하고 변질시킨다. 3. 이미지는 심오한 현실과 관계가 없다. 아래 제시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세 가지 관점을 각각 설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논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그리고 제시문 중 하나로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이 제시됐다. 일단 이 그림을 놓고 분석할 때 화가가 그린 그림은 실제의 파이프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그림에 담배를 채워넣고 불을 붙여서 피울 수 없기 때문에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와 관련해 판단한다면 이 그림은 심오한 현실을 표현하거나 은폐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는 현실과 관련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이 그림을 보고 자의적으로 파이프와 연결한다는 점을 비판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4학년도 성균관대 1학기 수시모집에서는 “다음 제시문들을 읽고 여론에 의한 합리적 의사결정의 가능성과 한계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논하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됐으며, ‘제시문 4’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서로 다른 여론조사 결과가 제시됐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 이미지(사진)가 나오는데 여기에 “왼쪽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야외 조각장에 설치된 ‘10개의 계량기’라는 작품으로, ‘계량하는 것이 계량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여론을 조사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지가 제시문으로 출제됐을 때 당황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문제 출제 방향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