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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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푸짐 … 입맛이 ‘팔딱팔딱’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4-27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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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고 푸짐 … 입맛이 ‘팔딱팔딱’

    노량진 수산시장(아래)과 푸짐한 노량진 스타일로 서빙되는 회.

    1980년 부모님은 평생을 사시던 바닷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내고 자리를 잡으면 부모가 뒤따라 상경하는, 지방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전형적인 방식의 이주였다.

    부모님은 서울살이에 꽤 적응력이 필요했다. 경상도 사투리로 인한 이웃간의 사소한 오해에서부터 서울 사는 친지집 방문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특히 입맛 까다로운 두 분은 서울 시장의 음식재료에 대해 늘 불만을 토로하셨다.

    “아이고, 이놈의 서울 시장에는 묵을 께 없더라. 괴기(경상도 바닷가에서는 생선을 ‘괴기’라 한다)가 다 썩은 거뿐이고. 마산서는 묵지도 않는 생선(임연수를 말함)을 안 파나. 예서 더 이상 못 살겄다.”

    제철 해산물 천국 … 보고 즐길 거리도 풍성

    당시만 해도 냉장유통이 잘 되지 않던 시절이라 서울 시장의 생선들은 내 눈으로 봐도 맛이 간 것들뿐이었다. 평생 싱싱한 생선만 드신 두 분께 그런 생선들이 눈에 들 리 없었다. 그래서 장보러 갔다가 푸성귀만 잔뜩 사오시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때 어머니는 싱싱한 생선 고르는 법과 손질하는 법을 반복해서 들려주셨는데 아마 자식들에게 고향의 맛을 잊지 말라는 당부의 뜻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싱싱한 생선은 눈깔 빛깔이 맑고 투명하다. 아가미는 선명한 붉은색이고, 아가미 위를 눌렀을 때 핏물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비늘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비린내가 나지 않아야 한다. 비린내는 오래된 생선일수록 심하다.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면 손질해서 둬야 하는데, 그냥 냉장고에 두면 잡내가 나서 못 먹는다. 비늘 치고 내장 빼고 굵은 소금 뿌려서 채반에다 말려라. 하루쯤 둬서 생선에서 잡내나는 물이 빠지면 소금 탈탈 털어 냉장고에 넣어둬라.”

    그로부터 몇 년 지나서야 부모님은 서울에서도 싱싱한 생선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버스로 30분 정도 걸렸는데 어머니는 이 거리도 멀다 하셔서 아버지가 장보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자전거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니셨다. 이런 날에는 꼭 부모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야야, 니 아부지 노량진 갔다 오셨다. 전어가 싱싱하더라. 회쳐서 냉장고에 넣어뒀으니까 퇴근길에 꼭 들러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주로 회식 장소로 이용했다. 동료들은 처음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생선 고르고 식당 찾는 게 번거롭고 일반 횟집과 가격도 별 차이 없으면서 ‘밑반찬(쓰끼다시)’까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한두 번 맛들이고 나니 이젠 그들이 먼저 가자고 나선다. 길게 늘어선 활어가게 둘러보는 재미도 있는 데다 산 낙지 조금, 왕새우 조금, 멍게 조금씩 입맛에 맞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노량진 수산시장 마니아들 중에는 단골가게를 정해두기도 하지만 사실 생선의 질과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나는 따로 단골을 두지 않았다. 상인들이 붙잡든 말든(호객행위가 좀 심한 편이다) 요즘은 어떤 생선이 먹을 만한지 일단 훑어보고 몇 가지 메뉴를 정해 가격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이때 주차권을 꼭 받아야 한다. 상인들 말로는 2만원어치 이상 사면 한 시간짜리 주차권을 준다고 한다).

    채소와 양념, 매운탕 내는 식당은 활어가게 앞 건물의 2층과 지하에 즐비하다. 이 역시 이들 식당 중 어디가 낫다고 하기 어렵다.

    일본 도쿄를 여행하면 반드시 구경할 곳으로 쓰키지 수산시장을 꼽는다. 여기에는 골목골목 싸고 맛있는 초밥집들이 있고 규모도 노량진 수산시장보다 크지만, 보고 즐길 거리는 노량진만 못하다. 도쿄 쓰키지 시장을 보고 나면 더더욱 서울 한복판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게 된다.

    나는 철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간다. 제철에 나오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기 위해서다. 또 여기만 가면 갯내음으로 고향 바다에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내 아버지도 그 먼 길을 자전거로 다닌 것을 보면 싱싱한 생선 구하자고 그러신 것만은 아닌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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