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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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피아 구분 이론논쟁 씁쓸

  • 입력2007-03-05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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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한 진보.’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브리핑 기고문에서 규정한 참여정부의 노선 이름이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붙였다고 한다. 때 아닌 피아(彼我) 구분이야 한국 학계의 진보적 흐름을 주도해온 최장집 교수 등 일부 진보진영 학자들의 잇따른 참여정부 개혁정책에 대한 비판이 실마리로 작용했을 터.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엔 수긍이 간다. 하지만 소외계층 보호와 사회복지 신장 등을 진보적인 정책 성과로 앞세운 건 좀 빈약한 듯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2배나 늘고, 그 동기의 절반이 생활고 비관인 게 현실이다. 우울증 탓만 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이 용어조차 생소한 장문의 고담준언(高談峻言)으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에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과연 생산적인가. 국정홍보처장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거드는 것도 코미디에 가깝다. 진보논쟁은 강단에서나 다룰 주제다. 대통령은 학자가 아니다. 국민은 누가 진정성을 담보한 진보세력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차라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 말을 더 신뢰하고플 따름이다. “야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몸으로 보여주겠다.” ‘야구’에 ‘정치’를, ‘경기장’에 ‘임기’를 대입해보라. 이 얼마나 명쾌한,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인가!

    기업 접대비의 증빙자료 제출 금액기준을 현행 5만원 초과에서 내년엔 3만원, 2009년엔 1만원 초과로까지 대폭 내리기로 한 정부의 조치는 지나친 간섭이 아닌가 싶다.

    접대비를 방만하게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과도한 접대 관행을 막고 세원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고매한 취지엔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밥값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업 임직원이 손님과 고작 커피 한 잔씩만 홀짝거려도 1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런데도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기자니 번거로움도 크거니와 사람과의 만남마저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직원이 몇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또 어떤가. 가뜩이나 도산과 불황에 허덕이는 중소 자영업자들에겐 시대착오적인 통제가 생존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간섭이 지나치면 미움이 쌓이는 법. 혹시나 기업인들이 펄 시스터즈의 옛 노래 ‘커피 한 잔’을 이렇게 개사해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영수증 일일이 챙겨야 하니 무척이나 씁쓰름하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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