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파리컬렉션에서 디자이너 카스텔 바작이 ‘곰돌이(테디 베어)’를 주렁주렁 단 옷을 선보이자 언론들은 이것이 ‘정신적 퇴행’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때 이 예외적이고 ‘퇴행적인 패션’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어른들이 어린이가 되고 싶어하는 환상을 담은 ‘키덜트(kid+adult)’ 문화는 온·오프 라인과 대중·순수 예술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주류 문화 코드가 되었다.
연예인들, 캐릭터 셔츠 ‘너도나도’
카스텔 바작의 ‘곰돌이’ 패션이 일찌감치 달려나간 데서도 알 수 있지만, 키덜트가 가장 먼저 광범위하게 팔리는 분야는 패션이다. 패션에서 키덜트는 이미 아동기를 지나쳐 유아기로 돌아갔다.
고가의 브랜드들조차 키덜트 아이템을 팔고 있으며, 힐러리 더프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섹시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가슴엔 미키마우스나 코믹스의 한 장면이 박혀 있다(그러니 바라보는 데 부담이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2004년 170만원짜리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선보여 비싼 키덜트 패션 시대를 예고한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올해도 남성복에서 같은 시리즈를 내놓았다. 프라다는 전기 소켓과 철사, 플라스틱 조각 등을 이용해 공작한 것 같은 로봇·비행기·선풍기 등의 큼지막한 액세서리를 내놓았다. 20만~30만원대의 고가였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위적이던 마틴 싯봉도 플라스틱으로 된 동물 액세서리와 커다란 꽃송이들을 붙인 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아 유명해진 브랜드 비주얼드나 정크 푸드 등은 디즈니 만화의 담비와 미키, 코믹스에서 따온 슈퍼맨, 베티 등의 캐릭터 셔츠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는데, 옥주현·이영애 등 국내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맥긴나잇브리지의 MD 정은경 씨는 “미국 만화의 금발 미녀 캐릭터를 프린트하면 섹시하게 보이고, 소매를 유치원생 옷처럼 부풀리면 부잣집 외동딸 느낌이 난다. 어느 쪽이든 이제 키덜트는 저항감 없는 컨셉트”라고 설명했다.
“분홍색과 리본을 이용한 ‘걸리(girly)’ 라인이 큰 인기를 얻어 올여름에 딸기·사탕 등을 주렁주렁 단 ‘스위티’ 라인을 런칭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아요. 아이들처럼 정말 빨아먹고 싶을 정도죠. 나이 들기 싫어하는 일부 어른들의 ‘피터팬 증후군’이 나이를 무시하는 낭만적인 ‘에이지리스(ageless)’ 세대로 보편화된 듯합니다.”(크리스찬 디오르 코리아 윤순근 과장)
300원짜리 볼펜을 저항감 없이 3000원짜리 캐릭터 볼펜으로 바꾼 것도 키덜트 문화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우세하던 문구류는 최근 1년 사이 가장 과장된 디자인이 적용되는 분야로 바뀌었다. ‘텐바이텐’ ‘1300K’처럼 다양하고 기발한 키덜트 상품을 수입, 판매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게들이 대도시에서 성업 중인데 ‘텐바이텐’의 경우 불황에도 올해 매출을 2004년의 2배(약 110억원)로 잡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텐바이텐’이나 ‘1300K’ 등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동글동글한 초미니 선풍기, 빛을 받으면 까닥까닥 잎사귀를 움직이는 플라스틱 화분(‘플립플립’)이나 인형(‘노호혼’), 태권브이 라이터, 양철로봇 ‘퍼니 비’, 관절로봇 ‘스틱파스’, 요란한 장식을 단 볼펜 등이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하고 8번 돌리면 대답이 나타난다는 ‘매직볼’도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테이프에 알파벳을 새겨넣어 아무 데나 붙일 수 있는 ‘다이모’인데, 70년대에 학생들이 많이 쓰던 문구용품이란 점도 특이하다.
“여기 와서 귀여운 물건을 보고 자신의 취향을 새롭게 발견하는 어른들이 많아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라는 걸 알고 그 다음부턴 자주 오죠.”
손님은 어른, 인테리어는 어린이용
‘텐바이텐’ 이건창 대학로점장 자신이 바로 그런 경우여서 취향이 직업으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일종의 연령 ‘커밍아웃’이랄까. ‘텐바이텐’ 대학로점은 지난해 매장을 확장하면서 키덜트 컨셉트의 카페도 열었다. 손님은 어른들이지만, 인테리어는 ‘어린이집’을 연상시킨다. 근처에 직장이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이미경(30) 씨는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귀엽게 나오기 때문에 ‘싸이’나 ‘블로그’를 하는 여성들이 많이 온다”고 말한다. 이 씨 역시 이곳에서 ‘곰돌이 푸우’의 ‘노호혼’을 샀는데 “눈 돌릴 데 없는 삭막한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을 때 쳐다보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텐바이텐’의 동물 인형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어 ‘싸이’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행위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라면, ‘싸이월드’에서 ‘미니미’를 꾸미는 것은 본격적인 디지털 키덜트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처음 판매를 시작해 하루 판매액이 수십만원에 머물던 디지털 아이템은 2004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해 요즘은 하루 판매액이 2억원에 이른다. 처음 디지털 아이템을 주로 소비하던 층은 10대였지만 연령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최근엔 ‘상품권’에 익숙한 어른들을 위해 오프라인 상점에서 ‘도토리 상품권’ 판매도 시작했다.
“디지털이긴 하지만, 감성에 호소하는 서비스죠. 디자이너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패션이나 행동에서 영감을 얻어와요. 디지털과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죠.”(싸이월드 명성남 과장)
전 세계적 흥행 신화를 예고하고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현재 10대 관객들 때문이 아니라 1977년(우리나라는 78년) 첫 번째 ‘스타워즈’(에피소드 4) 개봉 당시 10대를 보낸 어른들의 추억 덕분이다. 78년 서울 피카디리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동시상영관에서 세 번을 내리 더 봤다”는 직장인 김지웅(42) 씨는 ‘스타워즈3’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다 첫날인 5월26일 극장으로 달려갔다.
“‘스타워즈’의 ‘먼먼 옛날’로 시작하는 오프닝 타이틀이 누워서 올라가는 것을 봤을 때 어린 마음에 장엄한 감동이 있었는데, 30년 동안 이 영화는 같은 오프닝 타이틀을 고집하니 나 같은 관객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죠. 젊은 관객들에겐 유치한 줄거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우주에 대한 환상을 총정리한다는 점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키덜트’의 인기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최근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흐름을 이룬다.
미국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로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해 ‘아토마우스’를 만든 이동기, ‘동글이’ 캐릭터의 권기수, ‘마우미’의 이기섭·노석미·이진경 등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어린이들의 표현 수단을 끌어온 작가들로 꼽힌다. 처음에 이들은 작은 대안공간에서 전시를 여는 비주류로 간주되었으나, 요즘은 대형 미술관 기획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작가들이다. 대개 30, 40대 초반인 이들은 정치적으로 심각하지 않으며, 어렸을 때 영향받은 만화와 영화, 힙합을 진지하게 작품에 이용한다.
5월30일까지 갤러리 꽃에서 ‘잘 자란 종이 인형전’을 연 ‘사구귀’ 그룹 작가들은 어릴 때 갖고 놀던 종이 인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대표적인 ‘키덜트 엔터테이너’이며 미술 작가인 김태중은 5월20일까지 포스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내 작업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코 갤러리 전시기획자 김윤희 씨는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을 격리하고, 자신의 세계 속에 빠져 있고 싶은 욕망을 가진 작가들이 탈출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어린이보다 더 어린이다운 형상들이다. 이런 작가들이 늘어난다는 건 여기에 공감하는 대중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현명’한 젊은 작가들은 이런 사회적 감성을 발 빠르게 ‘계산’해낸다”고 말한다.
키덜트 관련 전시회도 잇따라
삼성문화재단 로댕미술관도 6월17일부터 8월21일까지 일본 네오팝의 대표 주자인 나라 요시토모전을 열어 미술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나라 요시토모의 ‘만화’ 그림엔 반항적인 ‘악동’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를 이용한 다양한 아트 상품도 유명하다. 전시기획자인 태현선 씨는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는 컬렉터가 아닌 대중을 위한 작가”라고 말한다.
‘키덜트’의 한쪽 끝에 피터팬 같은 어른들이 있다면, 반대편 끝에는 너무 빨리 성숙해져 새로운 소비 주체로 등장한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키덜트’는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형성된 새로운 소비 욕망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시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특히 ‘키덜트’가 한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습득하기 이전 유아적, 원초적 감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세계화 시대가 개척한 새로운 시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키덜트’ 세대는 한국인이거나 미국인이라기보다 ‘텔레비전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인터넷보다는 먼저 태어난’(미술평론가 이주현) 사람들이다. 마셜 맥루한 같은 학자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기존 미디어에 대한 예술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듯이.
‘키덜트’가 어쩔 수 없이 ‘퇴행’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키덜트’ 문화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구체관절인형 마니아들 중에는 “정신적 미성숙자들로 보는 시선이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키덜트’ 문화는 소수의, 미성숙한 퇴행 문화가 아니다. 김창기 정신과 전문의는 “키덜트 문화는 ‘약한’ 정도의 일탈이자, ‘나는 해를 주지 않는다’ ‘나는 착하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새로운 세대의 ‘마음 트기’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이 ‘좋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든 사회적 공포와 권위 앞에서 어른들이 갖게 되는 무조건적 복종의 형태든, ‘에고의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들이 어린이가 되고 싶어하는 환상을 담은 ‘키덜트(kid+adult)’ 문화는 온·오프 라인과 대중·순수 예술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주류 문화 코드가 되었다.
‘키덜트’는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주류 코드가 되었다. 작가 김태중(작은 사진)의 전시장.
카스텔 바작의 ‘곰돌이’ 패션이 일찌감치 달려나간 데서도 알 수 있지만, 키덜트가 가장 먼저 광범위하게 팔리는 분야는 패션이다. 패션에서 키덜트는 이미 아동기를 지나쳐 유아기로 돌아갔다.
고가의 브랜드들조차 키덜트 아이템을 팔고 있으며, 힐러리 더프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섹시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가슴엔 미키마우스나 코믹스의 한 장면이 박혀 있다(그러니 바라보는 데 부담이 적어진 것도 사실이다!).
2004년 170만원짜리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선보여 비싼 키덜트 패션 시대를 예고한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올해도 남성복에서 같은 시리즈를 내놓았다. 프라다는 전기 소켓과 철사, 플라스틱 조각 등을 이용해 공작한 것 같은 로봇·비행기·선풍기 등의 큼지막한 액세서리를 내놓았다. 20만~30만원대의 고가였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위적이던 마틴 싯봉도 플라스틱으로 된 동물 액세서리와 커다란 꽃송이들을 붙인 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아 유명해진 브랜드 비주얼드나 정크 푸드 등은 디즈니 만화의 담비와 미키, 코믹스에서 따온 슈퍼맨, 베티 등의 캐릭터 셔츠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는데, 옥주현·이영애 등 국내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맥긴나잇브리지의 MD 정은경 씨는 “미국 만화의 금발 미녀 캐릭터를 프린트하면 섹시하게 보이고, 소매를 유치원생 옷처럼 부풀리면 부잣집 외동딸 느낌이 난다. 어느 쪽이든 이제 키덜트는 저항감 없는 컨셉트”라고 설명했다.
“분홍색과 리본을 이용한 ‘걸리(girly)’ 라인이 큰 인기를 얻어 올여름에 딸기·사탕 등을 주렁주렁 단 ‘스위티’ 라인을 런칭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아요. 아이들처럼 정말 빨아먹고 싶을 정도죠. 나이 들기 싫어하는 일부 어른들의 ‘피터팬 증후군’이 나이를 무시하는 낭만적인 ‘에이지리스(ageless)’ 세대로 보편화된 듯합니다.”(크리스찬 디오르 코리아 윤순근 과장)
300원짜리 볼펜을 저항감 없이 3000원짜리 캐릭터 볼펜으로 바꾼 것도 키덜트 문화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이 우세하던 문구류는 최근 1년 사이 가장 과장된 디자인이 적용되는 분야로 바뀌었다. ‘텐바이텐’ ‘1300K’처럼 다양하고 기발한 키덜트 상품을 수입, 판매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게들이 대도시에서 성업 중인데 ‘텐바이텐’의 경우 불황에도 올해 매출을 2004년의 2배(약 110억원)로 잡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텐바이텐’이나 ‘1300K’ 등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동글동글한 초미니 선풍기, 빛을 받으면 까닥까닥 잎사귀를 움직이는 플라스틱 화분(‘플립플립’)이나 인형(‘노호혼’), 태권브이 라이터, 양철로봇 ‘퍼니 비’, 관절로봇 ‘스틱파스’, 요란한 장식을 단 볼펜 등이다. 마음속으로 질문을 하고 8번 돌리면 대답이 나타난다는 ‘매직볼’도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테이프에 알파벳을 새겨넣어 아무 데나 붙일 수 있는 ‘다이모’인데, 70년대에 학생들이 많이 쓰던 문구용품이란 점도 특이하다.
“여기 와서 귀여운 물건을 보고 자신의 취향을 새롭게 발견하는 어른들이 많아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라는 걸 알고 그 다음부턴 자주 오죠.”
손님은 어른, 인테리어는 어린이용
‘텐바이텐’ 이건창 대학로점장 자신이 바로 그런 경우여서 취향이 직업으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일종의 연령 ‘커밍아웃’이랄까. ‘텐바이텐’ 대학로점은 지난해 매장을 확장하면서 키덜트 컨셉트의 카페도 열었다. 손님은 어른들이지만, 인테리어는 ‘어린이집’을 연상시킨다. 근처에 직장이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이미경(30) 씨는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귀엽게 나오기 때문에 ‘싸이’나 ‘블로그’를 하는 여성들이 많이 온다”고 말한다. 이 씨 역시 이곳에서 ‘곰돌이 푸우’의 ‘노호혼’을 샀는데 “눈 돌릴 데 없는 삭막한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을 때 쳐다보면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텐바이텐’의 동물 인형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어 ‘싸이’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행위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라면, ‘싸이월드’에서 ‘미니미’를 꾸미는 것은 본격적인 디지털 키덜트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처음 판매를 시작해 하루 판매액이 수십만원에 머물던 디지털 아이템은 2004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해 요즘은 하루 판매액이 2억원에 이른다. 처음 디지털 아이템을 주로 소비하던 층은 10대였지만 연령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최근엔 ‘상품권’에 익숙한 어른들을 위해 오프라인 상점에서 ‘도토리 상품권’ 판매도 시작했다.
“디지털이긴 하지만, 감성에 호소하는 서비스죠. 디자이너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패션이나 행동에서 영감을 얻어와요. 디지털과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죠.”(싸이월드 명성남 과장)
전 세계적 흥행 신화를 예고하고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현재 10대 관객들 때문이 아니라 1977년(우리나라는 78년) 첫 번째 ‘스타워즈’(에피소드 4) 개봉 당시 10대를 보낸 어른들의 추억 덕분이다. 78년 서울 피카디리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동시상영관에서 세 번을 내리 더 봤다”는 직장인 김지웅(42) 씨는 ‘스타워즈3’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다 첫날인 5월26일 극장으로 달려갔다.
“‘스타워즈’의 ‘먼먼 옛날’로 시작하는 오프닝 타이틀이 누워서 올라가는 것을 봤을 때 어린 마음에 장엄한 감동이 있었는데, 30년 동안 이 영화는 같은 오프닝 타이틀을 고집하니 나 같은 관객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죠. 젊은 관객들에겐 유치한 줄거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우주에 대한 환상을 총정리한다는 점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키덜트’의 인기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최근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흐름을 이룬다.
미국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로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해 ‘아토마우스’를 만든 이동기, ‘동글이’ 캐릭터의 권기수, ‘마우미’의 이기섭·노석미·이진경 등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어린이들의 표현 수단을 끌어온 작가들로 꼽힌다. 처음에 이들은 작은 대안공간에서 전시를 여는 비주류로 간주되었으나, 요즘은 대형 미술관 기획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작가들이다. 대개 30, 40대 초반인 이들은 정치적으로 심각하지 않으며, 어렸을 때 영향받은 만화와 영화, 힙합을 진지하게 작품에 이용한다.
5월30일까지 갤러리 꽃에서 ‘잘 자란 종이 인형전’을 연 ‘사구귀’ 그룹 작가들은 어릴 때 갖고 놀던 종이 인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대표적인 ‘키덜트 엔터테이너’이며 미술 작가인 김태중은 5월20일까지 포스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내 작업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스코 갤러리 전시기획자 김윤희 씨는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을 격리하고, 자신의 세계 속에 빠져 있고 싶은 욕망을 가진 작가들이 탈출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어린이보다 더 어린이다운 형상들이다. 이런 작가들이 늘어난다는 건 여기에 공감하는 대중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현명’한 젊은 작가들은 이런 사회적 감성을 발 빠르게 ‘계산’해낸다”고 말한다.
키덜트 컨셉트의 카페(왼쪽)와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디자인의 문구와 장난감들.
삼성문화재단 로댕미술관도 6월17일부터 8월21일까지 일본 네오팝의 대표 주자인 나라 요시토모전을 열어 미술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나라 요시토모의 ‘만화’ 그림엔 반항적인 ‘악동’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를 이용한 다양한 아트 상품도 유명하다. 전시기획자인 태현선 씨는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는 컬렉터가 아닌 대중을 위한 작가”라고 말한다.
‘키덜트’의 한쪽 끝에 피터팬 같은 어른들이 있다면, 반대편 끝에는 너무 빨리 성숙해져 새로운 소비 주체로 등장한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키덜트’는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형성된 새로운 소비 욕망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시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특히 ‘키덜트’가 한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습득하기 이전 유아적, 원초적 감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세계화 시대가 개척한 새로운 시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키덜트’ 세대는 한국인이거나 미국인이라기보다 ‘텔레비전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인터넷보다는 먼저 태어난’(미술평론가 이주현) 사람들이다. 마셜 맥루한 같은 학자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기존 미디어에 대한 예술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듯이.
‘키덜트’가 어쩔 수 없이 ‘퇴행’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키덜트’ 문화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구체관절인형 마니아들 중에는 “정신적 미성숙자들로 보는 시선이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키덜트’ 문화는 소수의, 미성숙한 퇴행 문화가 아니다. 김창기 정신과 전문의는 “키덜트 문화는 ‘약한’ 정도의 일탈이자, ‘나는 해를 주지 않는다’ ‘나는 착하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새로운 세대의 ‘마음 트기’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이 ‘좋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든 사회적 공포와 권위 앞에서 어른들이 갖게 되는 무조건적 복종의 형태든, ‘에고의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