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입학관리 담당자들이 한목소리로 고교평준화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교육부가 10월28일 발표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등급화하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려면 공교육 정상화와 내신의 공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허울뿐인 고교평준화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고교평준화 정책이 유지된 상태에서 새로운 대입제도가 시행될 경우 학생 선발의 변별력 강화를 위해 별도의 전형 방식을 도입할 것이며, 고등학교 사이의 학력 격차를 반영할 수 있는 전형 방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고교 평준화를 대학 입시의 원칙으로 재확인한 교육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 대학들의 학생 선발방식이 다른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추어볼 때, 이들의 주장은 대학별 입시안 확정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 | 김완진교수
-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교육부가 여러 의견을 조율하고 균형을 잡느라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공교육 정상화를 꾀한 방향은 옳다고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수능을 등급제로 바꾼 것도 환영할 만하다. 하루에 전국의 수험생이 모여 치르는 시험 점수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우수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수능을 다양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내신에 대한 부분이다. 새 대입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2008학년도까지 내신성적의 신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획기적’이라는 것은, 대학이 고교 내신을 믿고 선발 전형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고등학생들은 공교육을 믿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간다. 이런 현실에서 내신을 믿고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8학년도까지 내신의 신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인가에 대해 솔직히 비관적이다. 그 경우 대학은 내신을 자체적으로 조정, 반영할 수 있는 전문성을 키워야 할 것 같다.”
- 고교등급제를 뜻하는 것인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고교등급제’는 정의가 불분명하다. 선배들의 성적에 따라 후배의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고교등급제’라고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 고등학교 사이에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평준화가 원칙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이 남아 있고 특수 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들도 있다. 지역별 학력차도 뚜렷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학생을 하나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과학고등학교의 물리, 수학 과목은 대학 강의 수준이다. 거기서 1등한 학생과 일반 고등학교 1등 학생의 성적을 같이 평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차이는 평가과정에 반영돼야 한다.
서울대에는 내신을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특기자 전형이 있다. 특목고 학생들은 이 전형을 이용하면 일반계 학교 졸업생과 비교해 전혀 불리하지 않게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외고 졸업생은 외국어 계열로만 가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디까지가 동일계인가에 대한 판단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특목고는 교과 과정상 일반고와 특성이 다르고, 대학이 선발과정에서 그에 맞는 배려를 할 수 있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미국의 경우 사립학교의 종류가 다양하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도 있지만, 학업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학교도 있다. 이렇게 되면 ‘좋은 학교’에 대한 획일적인 가치가 자연스레 사라진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 병폐는 사교육이다. 학교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사교육 수요는 당연히 줄어든다. 고교평준화제는 해체돼야 한다.”
-수능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는데.“지금까지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가장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수능 성적이다. 하지만 등급제가 도입되는 2008학년도부터는 이러한 객관적 지표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이 상황에서 다양한 수준의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국가 평가시험을 상급 수준의 시험과 표준 수준의 시험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수능은 그대로 두고, 엘리트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기준 시험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과목을 다양화하고 수준 높은 문제를 출제하면 학생들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 시험을 치를 수 있고, 대학은 지원자가 고급 수능에서 받은 등급을 전형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대학의 본고사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도 개선이 없을 경우 많은 대학들은 2008학년도 이후 사실상 본고사를 보게 될 것이다.”
-대학들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것보다는 학생을 우수하게 키워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진정한 교육자라면 누구도 ‘평범한 학생을 데려다가 잘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선발과정에서부터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 평범한 아이를 데려다가 축구를 잘 가르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나. 서울대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을 키우는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 말이 맞겠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위해서는 우수 학생 선발이 필수적이다.”
| 연세대 입학관리처장 | 백윤수교수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내신성적에 표준편차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지금껏 대학은 학생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정한 선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제 대학은 고등학교가 제시한 자료를 분석해 학교간 차이와 특성을 전형과정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능등급제’도 문제없다고 본다. 입시 사정과정에서 소수점 1~2점이 학생들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하지만 등급의 범위가 지금보다 넓어지면 안 된다. 대학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해야지, 그 이상이 되면 사립대학들은 대학을 다 반납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모든 대학을 국립대화할 것이 아니라면 이 이상은 곤란하다.”
-2005학년도 입시 수시모집 과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1998년 교육부가 대학에 보낸 ‘외국 대학의 학생 선발방법 안내자료집’을 보면 ‘출신 고교 입학생의 대학성적 평균’을 전형자료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연세대는 이 자료를 참고해 수시모집 담당 교수들에게 ‘3년간 각 고등학교별 연세대 지원자 수와 합격 학생수’를 제공했을 뿐이다. 고교의 등급을 매기거나 그에 따라 점수에 차별을 둔 일이 없다. 교육부가 지침을 통해 전형 방법의 한 가지로 제시한 방법이 왜 ‘고교등급제’로 불리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대학이 왜 일방적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등급제’라면 전국의 고교를 그룹별로 구별해 점수를 매기는 형태 아닌가. 연세대는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기지 않았고, 지역적·경제적인 목적으로 학생을 차별한 적도 없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우수한 학생뿐이다. 내신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능성적 없이 내신만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수시 1학기 모집에 참고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고등학교의 학력 차이를 전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인가.
“2003학년도 연세대 정시 합격자를 과학고군과 외국어고군, 일반계군으로 구별해 내신 수준을 자체 조사한 자료가 있다. 수능점수가 비슷한 합격생들의 내신을 비교해본 결과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가 있었다. 교육자로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대가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교육부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유형별 고교 정리’라는 항목에 특목고 리스트가 올라가 있다. 고교 평준화가 원칙이라면 왜 고등학교의 유형을 구별, 정리해둔 것인가. 고등학교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닌가. 대학에 그것을 반영할 자율성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
계속 고교등급제에 대한 오해를 살 경우 대학들은 내신과 관련해 모아둔 자료를 공개하고 사회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지역 대학들은 이미 자료를 다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일단은 교육부에 ‘고교등급제의 정의가 무엇이냐’ ‘일부 고등학교의 특성을 전형과정에 반영한 것이 대학 자율권의 범위 밖이냐’ ‘교육부는 고교등급제를 전면 금지할 정도로 지금 고등학교가 평준화돼 있다고 믿느냐’는 공개질의서를 보내놓았다. 이에 대한 답이 오는 대로 2008학년도 이후 전형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고교평준화는 이상적인 아이디어다. 이상으로서는 찬성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꿈을 위해 20년 넘게 노력해온 결과가 공교육 붕괴 아닌가. 균형 발전이 다 같이 못사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지식혁명시대다. 이 시점의 정책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교육자로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우수 인력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신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울 경우 본고사 실시 등의 방향을 고려하고 있나.
“본고사는 절대 아니다. 학생들을 암기능력에 따라 평가하고 줄 세우기 한다는 점에서 본고사도 수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보다 연세대가 학생 선발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성장 가능성이다. 그에 가장 적절한 방식은 추천서 제도다. 학생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신뢰성 있는 추천서는 다른 어떤 평가방식보다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은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고, 내신까지 부풀리면서 제도 정착을 망쳐버렸다. 그 부분에 대해 안타까운 게 많다. 대학은 절대 전근대적인 공간이 아니다. 대학이 주관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부분을 신뢰하고 악용하지 않을 때 훨씬 다양하고 공정한 학생 선발이 가능해진다.”
| 고려대 입학처장 | 김인묵교수-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교육부가 고생했다. 1등급을 4%에서 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 이상이었다면 대학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능등급제 도입은 이제 학생들을 한 줄로 죽 세워놓고 드러난 성적에 따라 선발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대가 특정 능력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겠다고 발표하면 바로 그것만 준비하는 사교육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사회가 동의하는 선 안에서 우리 학교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형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 내신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신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 지원자가 자신의 성적뿐 아니라 출신교의 모든 자료를 함께 제출하는 것이다. 해당 학교의 종합적인 스펙트럼을 파악할 수 있으면 대학은 학교의 특성과 지원자의 위치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턱없이 부족한 정보만 주고 믿으라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의 손발을 묶어놓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그게 ‘선발’인가. 대학이 고등학교의 특성을 알게 되면 스펙트럼이 비슷한 곳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 그들끼리 경쟁시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목고와 일반고에 완전히 다른 ‘게임의 룰’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내신은 상당히 신뢰성 있는 자료로 전형과정에 반영될 것이다.”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인가.
“교육부가 ‘3불 원칙’을 천명한 상황이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고교등급제’가 뭔가 하는 점이다. 고교의 ‘특성’은 반영할 수 있지만 등급제는 안 된다는데 대학이 어디까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교육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도 다양한 특성이 생기게 된다. 고려대는 그 특성에 맞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특성을 제대로 알기 위한 전제조건이 모든 고등학교가 모든 정보를 대학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내신은 믿기 어렵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고교평준화는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교육을 망쳐놓았다. 이제는 없어져야 할 제도다. 교육부가 구성하는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협의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 그래도 없애지 못한다면 고려대가 고등학교를 재평가할 만한 틀을 만들 수밖에 없다. 섬세하고 전문적인 방식을 이용해 고등학교의 전체 스펙트럼을 판단, 모든 고등학교를 재평가하겠다. 대학도 사회의 일부니까, 사회적으로 공감할 만한 수준이 될 것이다.”
-내신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울 경우 본고사 실시 등을 고려하고 있나.
“본고사 역시 교육부의 금지사항이다. 고려대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논술, 면접 등 학생의 깊이 있는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전형방법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빛이 입자일 수도 있고, 파장일 수도 있다는 발견은 20세기 과학문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도든 이것으로도, 또 저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3불정책’이라고 해서, 교육부가 큰 틀을 만들어놓고 일방적으로 정의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대학은 안 하면 된다. 하지만 다양한 준비를 통해, 제도의 불확정의 한도 내에서 자율성의 여지를 만들어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교육부가 10월28일 발표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등급화하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려면 공교육 정상화와 내신의 공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허울뿐인 고교평준화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고교평준화 정책이 유지된 상태에서 새로운 대입제도가 시행될 경우 학생 선발의 변별력 강화를 위해 별도의 전형 방식을 도입할 것이며, 고등학교 사이의 학력 격차를 반영할 수 있는 전형 방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고교 평준화를 대학 입시의 원칙으로 재확인한 교육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 대학들의 학생 선발방식이 다른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추어볼 때, 이들의 주장은 대학별 입시안 확정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 | 김완진교수
-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교육부가 여러 의견을 조율하고 균형을 잡느라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공교육 정상화를 꾀한 방향은 옳다고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수능을 등급제로 바꾼 것도 환영할 만하다. 하루에 전국의 수험생이 모여 치르는 시험 점수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우수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수능을 다양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내신에 대한 부분이다. 새 대입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2008학년도까지 내신성적의 신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획기적’이라는 것은, 대학이 고교 내신을 믿고 선발 전형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고등학생들은 공교육을 믿지 않고,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간다. 이런 현실에서 내신을 믿고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8학년도까지 내신의 신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인가에 대해 솔직히 비관적이다. 그 경우 대학은 내신을 자체적으로 조정, 반영할 수 있는 전문성을 키워야 할 것 같다.”
- 고교등급제를 뜻하는 것인가.
“현재 거론되고 있는 ‘고교등급제’는 정의가 불분명하다. 선배들의 성적에 따라 후배의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고교등급제’라고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 고등학교 사이에 학력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평준화가 원칙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이 남아 있고 특수 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들도 있다. 지역별 학력차도 뚜렷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학생을 하나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과학고등학교의 물리, 수학 과목은 대학 강의 수준이다. 거기서 1등한 학생과 일반 고등학교 1등 학생의 성적을 같이 평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차이는 평가과정에 반영돼야 한다.
서울대에는 내신을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특기자 전형이 있다. 특목고 학생들은 이 전형을 이용하면 일반계 학교 졸업생과 비교해 전혀 불리하지 않게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외고 졸업생은 외국어 계열로만 가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디까지가 동일계인가에 대한 판단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특목고는 교과 과정상 일반고와 특성이 다르고, 대학이 선발과정에서 그에 맞는 배려를 할 수 있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미국의 경우 사립학교의 종류가 다양하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도 있지만, 학업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학교도 있다. 이렇게 되면 ‘좋은 학교’에 대한 획일적인 가치가 자연스레 사라진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 병폐는 사교육이다. 학교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사교육 수요는 당연히 줄어든다. 고교평준화제는 해체돼야 한다.”
-수능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는데.“지금까지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가장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수능 성적이다. 하지만 등급제가 도입되는 2008학년도부터는 이러한 객관적 지표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이 상황에서 다양한 수준의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국가 평가시험을 상급 수준의 시험과 표준 수준의 시험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수능은 그대로 두고, 엘리트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기준 시험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과목을 다양화하고 수준 높은 문제를 출제하면 학생들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 시험을 치를 수 있고, 대학은 지원자가 고급 수능에서 받은 등급을 전형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대학의 본고사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도 개선이 없을 경우 많은 대학들은 2008학년도 이후 사실상 본고사를 보게 될 것이다.”
-대학들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것보다는 학생을 우수하게 키워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진정한 교육자라면 누구도 ‘평범한 학생을 데려다가 잘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선발과정에서부터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 평범한 아이를 데려다가 축구를 잘 가르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나. 서울대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을 키우는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 말이 맞겠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위해서는 우수 학생 선발이 필수적이다.”
| 연세대 입학관리처장 | 백윤수교수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내신성적에 표준편차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지금껏 대학은 학생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정한 선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제 대학은 고등학교가 제시한 자료를 분석해 학교간 차이와 특성을 전형과정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수능등급제’도 문제없다고 본다. 입시 사정과정에서 소수점 1~2점이 학생들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하지만 등급의 범위가 지금보다 넓어지면 안 된다. 대학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해야지, 그 이상이 되면 사립대학들은 대학을 다 반납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모든 대학을 국립대화할 것이 아니라면 이 이상은 곤란하다.”
-2005학년도 입시 수시모집 과정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1998년 교육부가 대학에 보낸 ‘외국 대학의 학생 선발방법 안내자료집’을 보면 ‘출신 고교 입학생의 대학성적 평균’을 전형자료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연세대는 이 자료를 참고해 수시모집 담당 교수들에게 ‘3년간 각 고등학교별 연세대 지원자 수와 합격 학생수’를 제공했을 뿐이다. 고교의 등급을 매기거나 그에 따라 점수에 차별을 둔 일이 없다. 교육부가 지침을 통해 전형 방법의 한 가지로 제시한 방법이 왜 ‘고교등급제’로 불리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대학이 왜 일방적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등급제’라면 전국의 고교를 그룹별로 구별해 점수를 매기는 형태 아닌가. 연세대는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기지 않았고, 지역적·경제적인 목적으로 학생을 차별한 적도 없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우수한 학생뿐이다. 내신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능성적 없이 내신만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수시 1학기 모집에 참고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고등학교의 학력 차이를 전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인가.
“2003학년도 연세대 정시 합격자를 과학고군과 외국어고군, 일반계군으로 구별해 내신 수준을 자체 조사한 자료가 있다. 수능점수가 비슷한 합격생들의 내신을 비교해본 결과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가 있었다. 교육자로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대가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교육부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유형별 고교 정리’라는 항목에 특목고 리스트가 올라가 있다. 고교 평준화가 원칙이라면 왜 고등학교의 유형을 구별, 정리해둔 것인가. 고등학교마다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닌가. 대학에 그것을 반영할 자율성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
계속 고교등급제에 대한 오해를 살 경우 대학들은 내신과 관련해 모아둔 자료를 공개하고 사회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지역 대학들은 이미 자료를 다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일단은 교육부에 ‘고교등급제의 정의가 무엇이냐’ ‘일부 고등학교의 특성을 전형과정에 반영한 것이 대학 자율권의 범위 밖이냐’ ‘교육부는 고교등급제를 전면 금지할 정도로 지금 고등학교가 평준화돼 있다고 믿느냐’는 공개질의서를 보내놓았다. 이에 대한 답이 오는 대로 2008학년도 이후 전형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고교평준화는 이상적인 아이디어다. 이상으로서는 찬성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꿈을 위해 20년 넘게 노력해온 결과가 공교육 붕괴 아닌가. 균형 발전이 다 같이 못사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은 지식혁명시대다. 이 시점의 정책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교육자로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우수 인력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신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울 경우 본고사 실시 등의 방향을 고려하고 있나.
“본고사는 절대 아니다. 학생들을 암기능력에 따라 평가하고 줄 세우기 한다는 점에서 본고사도 수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보다 연세대가 학생 선발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성장 가능성이다. 그에 가장 적절한 방식은 추천서 제도다. 학생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신뢰성 있는 추천서는 다른 어떤 평가방식보다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은 자기소개서를 대필하고, 내신까지 부풀리면서 제도 정착을 망쳐버렸다. 그 부분에 대해 안타까운 게 많다. 대학은 절대 전근대적인 공간이 아니다. 대학이 주관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부분을 신뢰하고 악용하지 않을 때 훨씬 다양하고 공정한 학생 선발이 가능해진다.”
| 고려대 입학처장 | 김인묵교수-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한 평가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교육부가 고생했다. 1등급을 4%에서 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 이상이었다면 대학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능등급제 도입은 이제 학생들을 한 줄로 죽 세워놓고 드러난 성적에 따라 선발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대가 특정 능력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겠다고 발표하면 바로 그것만 준비하는 사교육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사회가 동의하는 선 안에서 우리 학교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형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 내신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신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 지원자가 자신의 성적뿐 아니라 출신교의 모든 자료를 함께 제출하는 것이다. 해당 학교의 종합적인 스펙트럼을 파악할 수 있으면 대학은 학교의 특성과 지원자의 위치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턱없이 부족한 정보만 주고 믿으라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의 손발을 묶어놓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그게 ‘선발’인가. 대학이 고등학교의 특성을 알게 되면 스펙트럼이 비슷한 곳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 그들끼리 경쟁시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목고와 일반고에 완전히 다른 ‘게임의 룰’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내신은 상당히 신뢰성 있는 자료로 전형과정에 반영될 것이다.”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인가.
“교육부가 ‘3불 원칙’을 천명한 상황이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고교등급제’가 뭔가 하는 점이다. 고교의 ‘특성’은 반영할 수 있지만 등급제는 안 된다는데 대학이 어디까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교육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도 다양한 특성이 생기게 된다. 고려대는 그 특성에 맞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특성을 제대로 알기 위한 전제조건이 모든 고등학교가 모든 정보를 대학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내신은 믿기 어렵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입장은.
“고교평준화는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교육을 망쳐놓았다. 이제는 없어져야 할 제도다. 교육부가 구성하는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협의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다. 그래도 없애지 못한다면 고려대가 고등학교를 재평가할 만한 틀을 만들 수밖에 없다. 섬세하고 전문적인 방식을 이용해 고등학교의 전체 스펙트럼을 판단, 모든 고등학교를 재평가하겠다. 대학도 사회의 일부니까, 사회적으로 공감할 만한 수준이 될 것이다.”
-내신의 신뢰성 확보가 어려울 경우 본고사 실시 등을 고려하고 있나.
“본고사 역시 교육부의 금지사항이다. 고려대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논술, 면접 등 학생의 깊이 있는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전형방법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빛이 입자일 수도 있고, 파장일 수도 있다는 발견은 20세기 과학문명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제도든 이것으로도, 또 저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3불정책’이라고 해서, 교육부가 큰 틀을 만들어놓고 일방적으로 정의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대학은 안 하면 된다. 하지만 다양한 준비를 통해, 제도의 불확정의 한도 내에서 자율성의 여지를 만들어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