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기지사령부가 자리한 부산 대연동 일대. 부산대연동 군부지 비상대책위원회 명단(아래)
6·25전쟁 중에 부친의 땅을 국가에 징발당한 원모씨(51)는 ‘대연동 땅’ 얘기만 나오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원씨의 아버지가 국가에 땅을 빼앗긴 건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 마을은 “정부(국군)가 토지를 징발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발칵 뒤집어진다. 주민들은 마을로 들어온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땅을 이렇게 빼앗아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애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는 군대가 쓰겠다는데 촌부들이 감히 토를 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을주민들은 결국 “언젠가 되돌려주지 않겠느냐”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삶의 터전을 내놓는다. 그러나 ‘되돌려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 등이 징발당한 농민들의 땅을 인수하면서 물거품이 된다. 현재 군이 사용하고 있는 당시 농민들의 땅은 정수장학회가 ‘원소유주’로 돼 있다.
“저희들 처지에선 김지태씨가 밉지요. 김씨 유족이 빼앗겼다는 토지 중 상당 부분의 본래 주인은 땅을 부치던 농민들입니다. 김씨와 몇몇 브로커들이 국가에 징발된 땅이라는 점을 악용해 교묘한 방법으로 인수해간 거예요. 정말로 억울한 사람들은 김씨 유족이 아니라 땅에 대한 권리조차 제대로 주장할 수 없게 된 우리들입니다.”
땅 징발당한 농민들 “억울하고 분통 터져”
군수기지사령부가 자리잡은 부산 대연동 일대 땅은 조만간 용도 변경될 예정이다. 징발법에 따르면 징발된 땅이 공공(군사) 목적을 상실하면 ‘원소유주’에게 우선 인수 권한을 주게 돼 있다. 원소유주는 땅을 낮은 가격에 인수하게 돼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 땅이 원소유주에게 매각되면 정수장학회가 대박의 주인공이 된다. 과거 농촌 지역이던 토지가 현재 도심으로 편입돼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김씨 유족이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부산 시내 땅은 10만147평에 이른다.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는 금싸라기로 부산진구 개금동 5만평, 남구 대연동 4만평, 해운대구 우동 1만평, 수영구 남천동 300평 등이다. 원씨의 아버지를 비롯한 농민들이 징발당한 대연동 땅의 상당 부분은 소유주가 농민-부산일보 등 관계자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정부(국방부) 등의 순서로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토지의 70%가량이 이미 불하됐으나 소유권 이전 과정이 석연치 않다. 소유권 이전 절차에서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부산광역시의 한 관계자는 “땅을 공원 등 다른 공공 목적으로 이용하면 원소유주에게 인수 권리를 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군수기지사령부 땅을 공원으로 할지 민간에 불하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정수장학회에 1차 인수 권리가 주어진다”고 확인했다.
일부에선 “부일장학회 토지 10만여평이 정수장학회로 넘어온 뒤 국방부로 양도되는 과정에서 정수장학회가 ‘반대급부’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 토지는 부산일보를 인수하면서 자연스레 정수장학회로 넘어온 것으로, 장부상에서만 일시적으로 정수장학회 앞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국방부가 ‘김지태씨가 넘겨주기로 했다’면서 정수장학회에 땅을 내놓으라고 해 정수장학회가 국방부에 다시 양여하는 형식으로 넘긴 것. ‘주간동아’가 입수한 당시 국방부 공문에 따르면 국방부는 정수장학회 측에 “김지태씨가 현재 군이 사용하고 있는 부동산 대지 253필지 10만147평을 정부에 기부하겠다는 결의서 및 관계 서류 일체를 이송해왔다”며 등기를 이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10만여평의 토지는 사실상 정수장학회와 관련이 없다. 김지태씨가 국방부에 ‘강탈’당하거나 ‘헌납’한 것이다. 다만 정수장학회는 앞서 언급한 대로 해당 토지가 용도 변경돼 불하될 경우 ‘원소유주’가 돼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 1950년대 땅을 국가에 징발당한 농민들은 수년 전 정수장학회에 찾아가 “인수 우선권을 포기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미 불하된 7만여평 의혹 투성이
요컨대 군사 정권이 김씨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이고, 최고의 수혜자는 정수장학회인 셈이다. 당시 땅을 징발당한 농민의 자손들은 “브로커들에게 속아 어처구니없이 땅의 권리를 넘긴 뒤 되찾지 못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개중엔 정식으로 도장을 넘기고 푼돈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도장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땅의 명의가 바뀐 사람들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지태씨가 기부한 땅에 대한 등기 이전을 요구하는 국방부 공문.
당시 수사를 맡았던 박용기 당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은 “국가(국군)에 징발되어 있는 농민들 소유 전답을 김씨가 국방위원이라는 신분을 활용해 헐값에 넘겨받아 치부 수단으로 이용했다”면서 “땅을 징발당한 농민 후손들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또 “특히 땅 부분은 김씨가 농민들에게 원성을 사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1962년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형을 구형받았는데 혐의 내용은 크게 탈세, 밀수, 농지개혁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세 가지 혐의 중 대연동 땅과 관련된 것은 농지개혁법 위반이다. 다음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당시 기소 내용.
“김지태 등은 1956년 2월15일부터 1962년 1월19일까지 부산시 대연동 등 소재 농지 약 2만2000평을 실지 농경자가 아니면서 이를 매수하여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시킴에 있어서 소유권 이전 등기상 소요되는 각 매수인들의 허위자작농지증명서를 동 매도자들에게 작성토록 했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징발된 농민들의 땅을 김씨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인수했다가 국가에 다시 ‘빼앗겼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김씨 유족은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농민들과 당시 수사 관계자의 증언에 대해 김씨 유족 측은 “정당한 방법으로 제 값을 주고 산 땅”이라며 “권력을 이용해 치부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현재로선 농민들이 땅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사정이 어떻든 농민들이 매매 형식으로 땅을 넘겼고 관련 공문서에는 정당한 매매 절차를 거쳐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땅을 징발당한 이들은 정수장학회 논란이 불거진 뒤 ‘혹시나 땅을 되찾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다. 김지태씨 재산 몰수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원소유권’마저도 행사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