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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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와 살의 … 막가는 ‘막말 정치’

품위·위트 없고 비아냥으로 상대 자극 … 직설화법 좋지만 최소한 권위는 지켜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6-24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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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와 살의 … 막가는 ‘막말 정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연세대 특강에서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약육강식이 우주의 섭리가 아니냐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고 밝혔다. 보수세력을 폄하하는 듯한 ‘진보=선, 보수=악’이라는 뉘앙스의 직설적 발언은 결국 막말 공방으로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발끈했음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은 누가 들어도 인신공격에 가까운 표현으로 노대통령을 공격했다.

    “(노대통령의 보수-진보관에 대해) 개인철학이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 알고 계신 것이다. 공부를 안 한 탓이다. 학자들이 들으면 웃는다. (탄핵으로 직무 정지된) 두 달 동안 공부할 기회가 많았을 텐데….”(민노당 노회찬 의원)

    노대통령의 학력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처럼 이해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논객 유시민 의원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는 “참 오만한 사람들”이라며 “노대통령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느니 어쩌니 말하는 것은 심히 무례한 짓이다. 제가 보기에는 노회찬 의원보다 노대통령이 훨씬 공부를 더 많이 한 정치인”이라고 반박했다.



    여야 위아래 없이 치고받고

    이어 노의원을 직접 겨냥해 “물론 경기고나 고려대 같은 명문학교를 나와야 `공부한 사람으로 쳐주는 그런 분들에게는 노대통령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노의원은 경기고와 고려대를 나왔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한 대리전에서 “경제학 공부부터 하라”는 말 폭탄을 맞은 민노당은 더 심한 말로 되받았다.

    “꽤 오래 전부터 유시민 의원의 언행을 지켜보며 역사상의 한 인물을 연상하곤 합니다. 바로 이기붕입니다. …경제학보다는 윤리학부터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유의원도 잘 아시다시피 경제학은 윤리학에서 시작되었답니다.”(민노당 이재영 정책1국장)

    노의원도 유의원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다. 차지철씨를 연상시킨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던 박정희 정권의 경호실장에 유의원을 빗댄 말이다.

    악의와 살의 … 막가는 ‘막말 정치’
    공자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나, 실천은 민첩하고자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고 했다. 공자가 21C 한국 정치인을 군자라고 여기진 않을 것 같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막말 공방의 중심이 ‘허가된 욕쟁이’(정당 대변인)에게서 정치권 전체로 퍼지고 있다. 격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마 입으로 옮기기조차 부담스러운 거친 말들이 정치권에서 일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당의 수도권 초선 C의원은 최근 당 지도부로부터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C의원은 지도부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면 자극적인 말을 쓸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NG까지 내면서 “강금실 장관과 문재인 전 민정수석 두 사람은 ‘불륜 관계’인지 ‘불순한 관계’인지, 만남의 배경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발언을 웃음을 참아가며 되풀이 촬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악의와 살의 … 막가는 ‘막말 정치’
    요사이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말은 거침을 넘어 오싹하기까지 하다. 위트는 없고 비아냥거림만 가득하다. 그럴싸한 비유 속에 숨은 비겁한 막말은 상대를 자극하고 결국 섬뜩한 막말 전쟁을 촉발한다. 국정을 책임진 핵심 인사는 물론이고 정당의 실무자까지도 막말의 대오에 동참하고 있다. 여권에서 위아래가 서로 치받는 막말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 “그런 걸 갖고 계급장 떼나” “김근태 의원은 별 3개” “대통령 덕에 당선돼놓고…” “군기 잡겠다고 하면 물어 뜯어버리겠다” 등등 여권에서 쏟아져나오는 막말에 검찰총장까지 “(내) 목을 치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문희상 전 대통령정치특보가 당·청 간의 정례회동 요구를 “대통령에게 젖 달라는 격”이라고 비아냥대자, 신기남 의장이 “젖 먹으러 가고 그런 게 아니다”고 맞받은 것은 권력 다툼으로까지 비쳐진다.

    품위와 위트가 어우러진 ‘말’ 대신 악의와 살기가 느껴지는 ‘막말’이 더 자주 회자되는 이유가 정치인들의 발언에서 자극적인 부분만 빼내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라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의 막말은 언론이 보도해주기를 바라고 내뱉은 것들이다. 영산대 최윤선 교수(언어학)는 “유권자들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이미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은 이미지 형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고 말한다. 정치인들 역시 자극적인 표현일수록 국민들에게 더 깊이 각인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악의와 살의 … 막가는 ‘막말 정치’
    내심 언론 보도 노리고 내뱉어

    직설화법으로 바뀐 정치 언어에 대해 권위를 벗어 시원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하지만 평택대 김용희 교수(문학평론가)는 “예의 없는 말을 권위의 탈피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켜야 할 권위와 버려야 할 권위주의는 분명히 다르며 최소한의 품격도 담기지 않은 막말은 권위주의는 있으되 권위는 없는, 질이 떨어지는 표현일 따름이다”고 꼬집었다. 품격과 위트, 촌철살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질 막말 공방이 포퓰리즘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메가 스피드’로 변하는 21C를 사는 한국 정치인에게 공자가 말한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군자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등신’에서 ‘등신’까지…

    잊고 싶은 추억의 ‘막말 막말’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다.(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2003년)

    ●노무현 정권은 조선노동당 2중대 1소대 정권이 될 것이다.(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2002년)

    ●한나라당 의원들은 힐끗힐끗 이회창 후보 눈치를 보고, 이후보는 조폭 두목처럼 의원들의 등을 두들겨주곤 한다.(우리당 송영길 의원, 2002년)

    ●179cm에 45kg의 인체구조는 부축 없이는 직립보행이 불가능한 인간육포 상태다.(민주당 장전형 대변인, 2002년)

    ●한나라당 후보를 흠집 내고 흑색 선전하는 민주당에 대해 빨치산 집단 같은 느낌을 받았다.(한나라당 이규택 의원, 2002년)

    ●현재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하는 좌익광란의 시대다.(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입을 재봉틀로 박아야 한다.(한나라당 김홍신 전 의원,1999년)

    ●6공 정권의 치안은 등신이다.(우리당 정대철 전 의원,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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