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는 것이지만 우리가 밥에 대해 늘어놓을 수 있는 문화적 지식은 과연 몇 마디나 될까. 외국인들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마주 앉아 먹고 있는 음식들의 유래와 역사, 문화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로 한국문화의 다양한 현상들 속에 숨어 있는 뿌리를 파헤쳐온 최준식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가 얼마간 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한정식을 앞에 둔 듯 군침이 돌게 한다.
최교수는 1997년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를 펴낸 뒤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 등을 통해 한국문화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러다 좀더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에서 그림 도자기 음악 음식 복식 무용 영상 등 한국문화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들을 모아 ‘한국문화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한국인에게…’는 모임에서 만난 호서대 정혜경 교수(식품영양학과)와 함께 만들었다.
“정교수와 함께한 한국음식 순례과정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이 강렬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매일 먹던,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는 음식이 이렇게 세련된 문화의 소산물이었다니….”
저자는 먼저 한식의 문화사를 일별한다. 우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이나 반찬을 부식으로 하는 주·부식형이다. 고대에는 육식에서 시작된 음식문화가 곡식농사가 정착되면서 밥 중심의 장문화로 발달했다. 채식 위주의 우리 식단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에서 기원을 찾는다. 당시 살생이 국법으로 금지됐고, 고기 잡는 도구는 불태우게 해 어업 자체를 금지한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콩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 장문화가 발달했다.
이런 흐름은 고려시대 중기까지 이어졌지만 몽골의 침략기를 거치며 유목민의 음식 전통인 육식문화가 수입됐고 지금까지 우리 식단에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요즘 우리가 즐기고 있는 소주도 이 시기 몽골에서 들어왔다.
조선 음식사의 분수령은 무엇보다 고추의 전래다. 조선 전기에는 식단이 다양해지고 화려해졌지만 신분질서도 엄격해져 왕실과 양반, 그리고 서민들의 식습관이 섞이지 못했다. 그러다 조선 후기 고추가 도입되면서 식단은 큰 변화를 보였고, 신분간 식습관도 섞이기 시작했다. 궁중식이 양반식에 영향을 주고(封送), 양반식은 다시 평민식에 영향(꾸러미)을 주었다. 한식은 이렇게 양반과 평민들의 식단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완성됐다.
이를 반영하듯 이 시기에 음식 관련서가 쏟아졌는데 허균의 ‘도문대작’, 장씨 부인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등이 식경(食經)으로 읽혔다. 이 책들에는 음식 조리법뿐 아니라 철학도 제시돼 있다.
“힘듦의 다소를 헤아리고, 저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보라. 음식을 좋은 약으로 알아 몸이 괴로운 것을 낫게 하라. 군자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음식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규합총서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는 ‘한국인에게…’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한식의 원리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건강식으로 알려진 지중해식과 한식을 비교한다. 지중해식은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샐러드와 파스타, 포도주와 양고기 등을 적당히 먹으며 항상 과일로 끝내는 식사를 말한다. 반면 한식은 참기름 들기름 등 불포화지방산을 즐겨 먹고 육류 섭취량이 적다. 적당한 전통술에 콩, 전곡류, 채소를 많이 먹으며 우유와 낙농제품은 약간 즐기는 정도다. 따라서 지방 섭취량이 많지 않은 한식이 지중해식보다 더 우수하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우리 음식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음(식물성 식품)과 양(동물성 식품)이 8대 2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오행론에서 보면 오방색(적 황 청 흑 백)의 조화가 있고, 맛으로는 오미(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우주의 내적 원리에 맞는 음식이므로 자연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상들은 절기에 맞는 음식을 즐겼으며 비빔밥과 탕평채 등을 통해 ‘어우러짐’의 미학을 보여줬다. 음식과 의약은 같다는 약식동원의 이론이 있었고, 숙깍두기 섭산적 타락죽 같은 음식에서 노인 등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식생활이 도입되면서 우리 음식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인스턴트식품을 남용하고 육식 위주로 바뀌고 있다. 관혼상제나 통과의례에서 즐기던 고급스러운 음식문화는 단절의 위기에 처했다. 대신 ‘불량만두소 파동’에서 확인했듯 악덕 상혼이 밥상을 점령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는 의복이나 건축과 달리 한식의 전통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케 하는 책이다.
최준식·정혜경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52쪽/ 1만5000원
Tips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유학자 이존재의 어머니 장씨 부인(1598~1680)이 한글로 쓴 조선의 본격적인 음식전문서로 300여 가지의 음식과 자세한 조리법이 정리돼 있다. 흔히 한국 최고의 식경((食經)으로 불린다. 장씨 부인은 이문열씨가 소설 ‘선택’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이다.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로 한국문화의 다양한 현상들 속에 숨어 있는 뿌리를 파헤쳐온 최준식 교수가 최근 펴낸 책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가 얼마간 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한정식을 앞에 둔 듯 군침이 돌게 한다.
최교수는 1997년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를 펴낸 뒤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 등을 통해 한국문화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러다 좀더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에서 그림 도자기 음악 음식 복식 무용 영상 등 한국문화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들을 모아 ‘한국문화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한국인에게…’는 모임에서 만난 호서대 정혜경 교수(식품영양학과)와 함께 만들었다.
“정교수와 함께한 한국음식 순례과정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이 강렬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매일 먹던,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는 음식이 이렇게 세련된 문화의 소산물이었다니….”
저자는 먼저 한식의 문화사를 일별한다. 우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이나 반찬을 부식으로 하는 주·부식형이다. 고대에는 육식에서 시작된 음식문화가 곡식농사가 정착되면서 밥 중심의 장문화로 발달했다. 채식 위주의 우리 식단은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에서 기원을 찾는다. 당시 살생이 국법으로 금지됐고, 고기 잡는 도구는 불태우게 해 어업 자체를 금지한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콩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 장문화가 발달했다.
이런 흐름은 고려시대 중기까지 이어졌지만 몽골의 침략기를 거치며 유목민의 음식 전통인 육식문화가 수입됐고 지금까지 우리 식단에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요즘 우리가 즐기고 있는 소주도 이 시기 몽골에서 들어왔다.
조선 음식사의 분수령은 무엇보다 고추의 전래다. 조선 전기에는 식단이 다양해지고 화려해졌지만 신분질서도 엄격해져 왕실과 양반, 그리고 서민들의 식습관이 섞이지 못했다. 그러다 조선 후기 고추가 도입되면서 식단은 큰 변화를 보였고, 신분간 식습관도 섞이기 시작했다. 궁중식이 양반식에 영향을 주고(封送), 양반식은 다시 평민식에 영향(꾸러미)을 주었다. 한식은 이렇게 양반과 평민들의 식단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완성됐다.
이를 반영하듯 이 시기에 음식 관련서가 쏟아졌는데 허균의 ‘도문대작’, 장씨 부인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등이 식경(食經)으로 읽혔다. 이 책들에는 음식 조리법뿐 아니라 철학도 제시돼 있다.
“힘듦의 다소를 헤아리고, 저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보라. 음식을 좋은 약으로 알아 몸이 괴로운 것을 낫게 하라. 군자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음식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규합총서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는 ‘한국인에게…’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한식의 원리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건강식으로 알려진 지중해식과 한식을 비교한다. 지중해식은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샐러드와 파스타, 포도주와 양고기 등을 적당히 먹으며 항상 과일로 끝내는 식사를 말한다. 반면 한식은 참기름 들기름 등 불포화지방산을 즐겨 먹고 육류 섭취량이 적다. 적당한 전통술에 콩, 전곡류, 채소를 많이 먹으며 우유와 낙농제품은 약간 즐기는 정도다. 따라서 지방 섭취량이 많지 않은 한식이 지중해식보다 더 우수하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우리 음식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음(식물성 식품)과 양(동물성 식품)이 8대 2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오행론에서 보면 오방색(적 황 청 흑 백)의 조화가 있고, 맛으로는 오미(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쓴맛)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우주의 내적 원리에 맞는 음식이므로 자연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상들은 절기에 맞는 음식을 즐겼으며 비빔밥과 탕평채 등을 통해 ‘어우러짐’의 미학을 보여줬다. 음식과 의약은 같다는 약식동원의 이론이 있었고, 숙깍두기 섭산적 타락죽 같은 음식에서 노인 등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식생활이 도입되면서 우리 음식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인스턴트식품을 남용하고 육식 위주로 바뀌고 있다. 관혼상제나 통과의례에서 즐기던 고급스러운 음식문화는 단절의 위기에 처했다. 대신 ‘불량만두소 파동’에서 확인했듯 악덕 상혼이 밥상을 점령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는 의복이나 건축과 달리 한식의 전통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케 하는 책이다.
최준식·정혜경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52쪽/ 1만5000원
Tips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유학자 이존재의 어머니 장씨 부인(1598~1680)이 한글로 쓴 조선의 본격적인 음식전문서로 300여 가지의 음식과 자세한 조리법이 정리돼 있다. 흔히 한국 최고의 식경((食經)으로 불린다. 장씨 부인은 이문열씨가 소설 ‘선택’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