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한(恨)의 민족인가. 그리고 백의민족이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 예술론’에서 주장하고 있듯 우리는 무기교, 무의식의 미의식을 갖고 있는가.
문화평론가 강영희씨(45·사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1994년 문화 평론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 개성 있는 문화론을 주장했던 강씨가 이번 책 ‘금빛 기쁨의 기억’(일빛 펴냄)에서는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미의식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에게 야나기의 조선미론이란 비유컨대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어두운 욕망 또는 뜨거운(hot) 이데올로기를 차가운(cool) 취향으로 위장한, 오래된 정신적 종양과 같은 것이었다.’
강씨 역시 처음엔 무네요시의 생각에 동의했다가 그것이 일본의 국학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료수집, 일본 국학 연구 등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6년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금빛 기쁨의 기억이란 우리가 갖고 있던 고유한 취향과 미의식을 말합니다. 지난 세기 서구적 근대화를 따라가다 민두기 교수가 말씀했던 ‘시간과의 경쟁’에서 생겨난 조급증 탓에 그것을 잃어버렸지요. 그 사이 무네요시의 조선미론 등이 밀려온 것입니다.”
무네요시는 부분적인 것을 강조하는 일본적 미의식을 통해 조선의 미를 보았다는 게 강씨의 생각이다. 즉 조선은 석조마애불이나 박수근의 그림처럼 가까이서 보면 조야해 보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그 전체를 보면 격조가 살아나는데 무네요시가 그 전체 상(象)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씨가 길어 올린 한국의 미는 다층적이다. 한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 해학과 신명, 아졸미(雅拙美) 또는 고졸미(古拙美), 발효 맛과 생기의 미감, 음양오행의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바꾸는 조화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강씨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볼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것.
“상생 지향이 만들어낸 탈속의 경지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는 불국토사상이나 미륵신앙, 풍수사상에서 드러나는 한국문화의 현세적 유토피아주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같은 탈속의 이상향이란 화가 장욱진의 동심이 추구한 세계, 김기창의 바보산수가 지향한 세계, 매화와 백자와 학의 정물로 이뤄진 김환기의 보랏빛 몽환이 꿈꾼 세계이기도 합니다.”
또 강씨는 한국의 미의식이 한이니, 무기교니 하는 단조로운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것에만 갇혀 있어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볼 수 있듯 색동 이미지나 오방색의 조화로 빚은 단청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서 미의식의 뿌리를 다시 찾아야 바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 미의식의 전체를 온전히 되살려 그것을 현재에 살려 쓰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문화평론가 강영희씨(45·사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1994년 문화 평론집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 개성 있는 문화론을 주장했던 강씨가 이번 책 ‘금빛 기쁨의 기억’(일빛 펴냄)에서는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미의식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에게 야나기의 조선미론이란 비유컨대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어두운 욕망 또는 뜨거운(hot) 이데올로기를 차가운(cool) 취향으로 위장한, 오래된 정신적 종양과 같은 것이었다.’
강씨 역시 처음엔 무네요시의 생각에 동의했다가 그것이 일본의 국학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료수집, 일본 국학 연구 등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6년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금빛 기쁨의 기억이란 우리가 갖고 있던 고유한 취향과 미의식을 말합니다. 지난 세기 서구적 근대화를 따라가다 민두기 교수가 말씀했던 ‘시간과의 경쟁’에서 생겨난 조급증 탓에 그것을 잃어버렸지요. 그 사이 무네요시의 조선미론 등이 밀려온 것입니다.”
무네요시는 부분적인 것을 강조하는 일본적 미의식을 통해 조선의 미를 보았다는 게 강씨의 생각이다. 즉 조선은 석조마애불이나 박수근의 그림처럼 가까이서 보면 조야해 보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그 전체를 보면 격조가 살아나는데 무네요시가 그 전체 상(象)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씨가 길어 올린 한국의 미는 다층적이다. 한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 해학과 신명, 아졸미(雅拙美) 또는 고졸미(古拙美), 발효 맛과 생기의 미감, 음양오행의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바꾸는 조화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강씨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볼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것.
“상생 지향이 만들어낸 탈속의 경지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는 불국토사상이나 미륵신앙, 풍수사상에서 드러나는 한국문화의 현세적 유토피아주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같은 탈속의 이상향이란 화가 장욱진의 동심이 추구한 세계, 김기창의 바보산수가 지향한 세계, 매화와 백자와 학의 정물로 이뤄진 김환기의 보랏빛 몽환이 꿈꾼 세계이기도 합니다.”
또 강씨는 한국의 미의식이 한이니, 무기교니 하는 단조로운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것에만 갇혀 있어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볼 수 있듯 색동 이미지나 오방색의 조화로 빚은 단청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서 미의식의 뿌리를 다시 찾아야 바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 미의식의 전체를 온전히 되살려 그것을 현재에 살려 쓰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