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이렇게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은 이들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3월26일 경북대병원 영안실에서 치러진 ‘개구리 소년’ 합동장례식 추진위원장 나주봉씨(49)는 환히 웃고 있는 생전의 아이들 사진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10여년간 전국을 돌며 소년들을 찾아다녔던 나씨는 뒤늦은 장례식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개구리 소년들과 일면식도 없던 나씨가 이들을 찾아나선 것은 1991년. 인천 월미도에서 카세트테이프 행상을 하다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소년들의 부모와 마주친 게 계기가 됐다.
“삼형제의 맏이로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온갖 고생을 다했거든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부모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나씨는 행상 트럭에 전단지를 붙이고 소년들을 찾는 일에 더 매달렸다. 그때 만난 실종자 가족들과 나눈 인연으로 2000년 ‘전국 미아 실종자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20여명의 미아들을 찾기도 했다. 가정 살림은 부인과 함께 하는 노점상을 통해 근근이 꾸리고 있다.
“가끔 자기 자식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누구든 아이 잃은 부모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면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그냥 넘길 수 없을 겁니다.”
나씨는 시민들도 실종 어린이를 찾는 일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당부했다.
3월26일 경북대병원 영안실에서 치러진 ‘개구리 소년’ 합동장례식 추진위원장 나주봉씨(49)는 환히 웃고 있는 생전의 아이들 사진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10여년간 전국을 돌며 소년들을 찾아다녔던 나씨는 뒤늦은 장례식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개구리 소년들과 일면식도 없던 나씨가 이들을 찾아나선 것은 1991년. 인천 월미도에서 카세트테이프 행상을 하다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소년들의 부모와 마주친 게 계기가 됐다.
“삼형제의 맏이로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온갖 고생을 다했거든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부모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나씨는 행상 트럭에 전단지를 붙이고 소년들을 찾는 일에 더 매달렸다. 그때 만난 실종자 가족들과 나눈 인연으로 2000년 ‘전국 미아 실종자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20여명의 미아들을 찾기도 했다. 가정 살림은 부인과 함께 하는 노점상을 통해 근근이 꾸리고 있다.
“가끔 자기 자식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누구든 아이 잃은 부모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면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그냥 넘길 수 없을 겁니다.”
나씨는 시민들도 실종 어린이를 찾는 일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