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가 3월28일 광주 충장로 거리를 방문해 광주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3월23일 부산 범일동 자유평화시장을 방문한 정동영 의장(왼쪽부터).
3월23일 대표로 선출된 뒤 예상대로라면 박근혜 대표는 경부선을 가르는 ‘남행열차’에 몸을 실었어야 한다. 당내에서는 그가 ‘텃밭’에 횡횡하는 탄핵폭풍을 걷어내고 동남풍을 일으켜 북상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박대표의 행보는 조심스럽다. 한 측근은 “영남은 꼭 가야 할 지역이지만 문제는 시기”라고 말했다. 성급한 걸음걸이가 다른 지역의 반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계산된 행보다. 28일 박대표측이 광주를 첫 번째 지방 나들이 지역으로 정한 것은 허를 찌르는 선택이다. 박대표측은 “열린 대북정책으로 수구 및 냉전세력이라는 이미지를 털고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을 견인하는 것도 지금 필요한 전략”이라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친노 대 반노 선거전략 폐기 ‘박근혜 효과’ 노려
박대표의 총선 전략 가운데 하나는 이런 열린 대북관을 중심으로 한 ‘가자 북으로’이다. 박대표는 취임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동 등을 암시하는 전향적인 대북관을 보여준 바 있다.
박대표측은 영남의 전략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다. 당에서 매일 올리는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박대표측이 가장 먼저 지지율 변화를 확인하는 곳이 바로 영남이다. 박대표측이 진단하는 영남은 현재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차떼기의 주역들이 이 지역 출신이고, 대대적인 물갈이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잔존하는 곳이 영남이라는 진단이다. 그 후유증이 밀려들면서 영남의 ‘한나라당’은 중앙정치에 예속된 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선거 이슈 및 공약 등은 고사하고 유기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마저 상당 부분 끊어졌다. 3월24일 한나라당 부산 출마 후보자 14명은 총선 관련 대책회의를 연 뒤 “박대표의 이미지에 맞게 선거운동을 해나가자”는 결론을 도출, 박대표 얼굴만 쳐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박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 개념의 구지도부 선거전략을 폐기했다. 국론분열과 편가르기를 촉발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렇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친노 대 반노는 우리당이 짠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비슷한 컨셉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잘못하면 우리당 전략에 휘말린다는 것이 박대표의 판단이다. 이런 당찬 모습은 영남지역에서 일정 부분 ‘박근혜 효과’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동아일보 조사(3월24일)에 따르면 TK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20일의 15.7%에서 24.1%로 오른 반면, 우리당 지지도는 35.6%에서 30.0%로 떨어졌다. 동아일보의 3월27일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23.0%로 현상유지 상태였으나 우리당은 19.2%로 크게 하락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박대표가 영남 사람들과 50대 이상의 여성,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층 등 보수층을 결집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나라당측은 TK지역의 역풍은 잡힌 것으로 보고 이 바람을 부산과 울산, 경남 쪽으로 확산시킬 계획을 서두른다. 한나라당은 영남의석 70개 가운데 55~60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당의 시각은 이런 한나라당의 분석과 괘를 달리한다. 한마디로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고 나니 더블로 이겼더라”는 조롱이 따르지만 영남, 특히 부산과 울산·경남의 경우 탄핵 후폭풍이 선거 당일까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문제는 중앙당의 지원 부족과 출마후보들의 적극적인 선거전략 미비. 당 지도부는 탄핵 후폭풍이 쇠퇴할 경우 공약 및 인물비교 등을 통해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지역정서의 쏠림 현상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영남의 ‘우리당’은 무기력하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당 의장에 도전했던 김정길 상임중앙위원, 고원준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노혜경 여성중앙위원 등 PK 4인방은 당초 예상보다 집중력과 전술구사에 서툴다는 지적이 곧잘 터져나온다. 지역 출마자들은 탄핵 후폭풍에 편승해 명함만 돌리며 중앙당, 특히 정의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목을 맨다. 한 인사는 “요즘 PK 정치권은 중앙당의 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천수답”이라고 말했다. 우리당 지도부는 출마후보들의 이런 소극적인 자세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인상이다. 당 선거 관련 실무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인파이팅을 하라”는 독려전화를 연일 ‘영남’으로 쏘아 보낸다. 그 선봉에 정의장이 있다. 정의장은 26일 대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야도(野都) 대구가 변화의 중심에 서달라”고 정중하게 요구했다. 정의장의 요구에는 ‘당근’도 뒤따랐다. 정의장은 “동대구 역사를 쌍둥이 빌딩으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빼놓지 않았다. 행정수도 열풍이 충청도를 강타하듯 동대구 역세권 개발계획은 지역 민심을 강하게 강타하고 있다. 이 지역에 출마한 이강철 후보측은 “역세권 개발논리가 먹혀들고 있다”고 말한다. 정의장은 박대표와의 맞대결은 가급적 피한다. 개인을 인신공격할 경우 영남 민심이 돌아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의장은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싣고 ‘가자 남으로!’를 외칠 예정이다. 정의장이 희망하는 대구지역 목표의석은 절반(6석). 박대표와 정의장의 영남 패권 다툼은 총선의 최대 이슈로 등장할 조짐이다. 영남의 향배는 총선 후 두 인사의 정치적 명암을 결정짓는 잣대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