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힘이 된다. 3학년 2반 교실에서 실제 수업이 이뤄진다. 1970년대 당시 캠페인에 쓰인 리본들.박물관을 운영하는 두 분 선생님이 땡땡이종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위부터)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주번 패찰을 단 교복과 교련복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앉은뱅이 책상과 오래된 책들, 옆에는 ‘아우 책상’이라는 푯말에 사과 궤짝이 책상인 척 옆으로 누워 있다. 우리의 1960년대 방 풍경이다. 옆에는 ‘엄마 아빠 학교 다닐 적엔’이라는 실물 공간이 열려 있다. 바로 3학년 2반 교실이다. 낡디 낡은 책·걸상들, 교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무쇠 난로, 풍금과 교탁, 기억보다 그것들의 크기가 훨씬 작아서 놀랍지만 20~30년 전에 실제로 쓰던 물건들이다. 양철 연통 틈으로 구수한 냄새를 내뿜는 난로 위에는 양은 도시락들이 포개져 있다. 뚜껑이 헐거워서 그놈의 김칫국물로 가방을 온통 적셔놓던 도시락이 오랜만에 보는 촌스런 소꿉친구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가난과 불편도 돌아보면 그리움
금방이라도 다시 메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유년시절의 책가방. 걸스카우트복과 교련복을 입던 시절. 어느 국민학교 복도에 걸렸을 대형 포스터.(위부터)
30분 정도 진행되는 이 짧은 수업은 관람객이 많을 때는 하루에 7, 8차례도 이뤄진다. 그렇게 수업이 많은 날이면 두 교사의 얼굴은 더욱 밝아진다. 이곳은 그들이 학생들을 계속 만나고 싶어 꾸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덕포진 교육박물관을 꾸민 김동선(63), 이인숙(57)씨는 스무 해 넘도록 초등학교 교단을 지켜온 부부 교사 출신이다. 그러던 1992년 부인 이씨가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실명하면서 교단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때 남편인 김씨는 약속했다. “걱정 마. 내가 곧 학생들 만나게 해줄게.” 이씨가 마지막으로 맡은 담임반이었다는 3학년 2반은 그렇게 해서 전시 공간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그후 사재를 다 털어 옛날 학교에서 쓰던 물건들을 사 모으는 일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실 옆에는 당시 학생들이 쓰던 교과서며 “1973년 10월20일 17시 쥐를 잡자”라고 쓰인 캠페인 리본들, 피구할 때 쓰던 오제미, 크고 작은 주판, 세뱃돈으로 받아 좋아라 했던 500원짜리 지폐까지 있다. 지나간 시절이 와락 품안으로 안겨올 무렵 미니어처로 제작된 60년대 집과 골목 풍경도 만나게 된다. 이곳에 비치할 목적으로 만든 것은 아닌데 전시 공간에 끌어올 수 없었던 당시의 집과 골목, 축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저런 방안에 있다가 댓돌의 고무신을 신고 뛰어나가 저 꼬불꼬불한 골목에서 술래잡기와 공기놀이를 하며 뛰어 놀았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전시물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현장인 덕포진.
3층에 이르면 농경문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갔다 오면 학원에 가기 바쁘지만 당시에는 “동생 업고 밭에 나가 봐라. 오늘은 콩밭 매는 날인데 무신 학교를 가노?” 하던 시절이었다. 필통과 몽당연필말고도 추억의 농경문화가 있었다. 3층 전시장에 마련된 농기구들의 규모는 그러나 추억의 구색 맞추기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바람을 이용해 곡식의 쭉정이·먼지 등을 가려내던 풍구에서부터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 쓰던 손풍구, 염전에서 물을 끌어들이던 물레방아처럼 생긴 무자위, 병아리를 가둬 기르던 어리와 천렵 도구 통발, 요즘의 핫팩처럼 안에 뜨거운 물을 넣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쓴 유담뽀, 오줌장군, 인두 등 다양한 농기구와 생활용구가 전시장을 메우고 있다.
그리고 덕포진 교육박물관에서는 해마다 특별 기획전이 열린다. 2004년에는 옛날 사진전이 열릴 계획이다. 지난 시절의 우리를 또 만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전시 공간 한쪽에 수수께끼와 속담에 나오는 옛날 물건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는다’의 가래와 호미,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의 솥뚜껑이 실물로 전시되는 재미있는 기획이다.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가면 지난날의 가난이나 불편함도 추억이 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여겼던 유년의 교실로 돌아간 긴 꿈을 꾸는 것도 같다. 또 덕포진에서는 옛 스승을 만난 듯하다. 김포 땅 손돌목 바닷가 덕포진에 그리워할 곳이 또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