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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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세계, 멋있는 삶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1-27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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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세계, 멋있는 삶
    새로운 음식 맛을 발견하는 것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미각,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행복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특히나 그런 음식을 주변사람들과 함께 먹으면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음식이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족이란 오랜 세월 함께 밥을 먹어온 사람들을 말한다. 출가한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한 밥상을 받게 된다. 그 밥상은 새로운 개념의 가족을 만들어준다.

    홍콩과 일본을 오가며 라이프 스타일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시노다 고코는 세계 6대륙 30개국을 돌며 특별한 맛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만났다. 그의 책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는 가깝게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이나 홍콩에서부터 멀리 이탈리아 피렌체, 스위스 생모리츠, 그리스 로도스 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완전히 다른 세상, 다른 맛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혀로 맛보는, 맛있는 세계로 건너가는 실마리라고나 할까. 세계를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음식을 통해 세계를 음미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기에.’

    고코는 레스토랑이나 유명 맛집을 찾아간 게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현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요리들을 맛보았다. 그래서 그 땅에서 떨어져 있는 지금은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것들뿐이다. 하지만 그 음식 맛은 그의 혀끝뿐 아니라 마음을 포함한 오관으로 체험한 것이기에 지금도 선명하다.



    그가 불러내는 맛의 기억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전이돼 혀끝에 이국적인 맛이 감돌게 한다. 아일랜드 땅끝마을의 퍼브(pub)에서 먹은 청어 우유조림, 러시아 모스크바의 서민가정에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 스메타나, 아프리카 사막에서 먹은 대추야자 열매 데츠, 중국 베이징의 택시운전사와 함께 먹은 양고기채소 물만두….

    고코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도 우리들에게 음식 맛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먹는 가스파초(gazpacho) 수프 얘기가 그 한 예가 아닐까.

    ‘에스파냐 가정에서는 어느 집에 가도 차가운 가스파초 수프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다. 가스파초는 토마토, 오이, 양파 등을 갈아서 식초로 상큼하게 마무리하여 차게 먹는 수프로, 여기에 잘게 자른 빵을 더하면 걸쭉해진다. 목으로 넘어갈 때의 느낌도 좋아서 주스를 마시듯 꿀꺽꿀꺽 마시게 된다.’

    이들은 한낮의 시에스타(낮잠)를 늘어지게 즐기기 전에 이 가스파초 수프를 마신다. 그리고 한두 시간 뒤 깨어나 저녁때부터 활기를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다양한 맛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삶도 소개된다. 아일랜드 퍼브에서 만난 72, 73세 할아버지 형제는 도망간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왓 하하하’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러시아가 개방된 뒤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의 월급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보디가드로 전직한 포나리오프는 어린 시절 먹었던 특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추억에 잠겼다. 그리스 여신처럼 잘 뻗은 몸매를 가진 독일 처녀 다비네는 촉촉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에, 레몬즙을 뿌리고 버터와 달걀을 넣어 만든 홀랜드 소스를 대접해 저자를 황홀경에 빠뜨렸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특히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나그네에게 언제나 친절했다.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베르베르족의 천막에 초대받은 저자는 그곳에서 연녹색의 박하차를 맛봤다. 뜨겁고 단 차인데도 몸 전체로 사막의 밤바람을 맞는 듯한 기분 좋은 냉기가 느껴지는 차였다. 몸이 너무 편해져 처음 방문한 사람의 집에서 기분 좋은 낮잠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천막을 떠난 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천막을 찾으려 했지만 사람들과 천막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그가 체감한 것은 음식의 맛이란 결국 그 지역의 풍토와 직결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라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확신한다. 또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맛있는 것을 찾아낸다. 그것이 지혜를 능가하는 인간의 강인함이 아닐까. 자기 나라의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국민의식의 표현이자 문화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혜영 옮김/ 이마고 펴냄/ 335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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