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독자로부터 이런 제보를 받았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이 제보자는 “이 택시만 타면 누구라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거나 소리내 웃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계속되는 택시기사의 열의에 찬 ‘연설’을 듣고 있노라면 삶에 대한 도전정신이 생기고, 좀더 들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는 얘기였다.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황량한 세상에 아직도 이런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느냐”며 기자에게 취재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그는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석 달 전 사운이 걸린 경쟁입찰에서 낙찰받지 못해 앞이 막막했을 때였지요. 회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대뜸 저더러 너무 멋있어 보인데요. 일에 골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사는 냄새가 난다나요. 처음에는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세 가지 축복을 주겠다면서 큰 소리로 주문 비슷한 것을 외우는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모두 제 앞길이 잘되고 제가 행복하기를 비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주위에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고 너무 힘들었던 터라, 감정이 격해졌는지 두 눈에 눈물이 고이더군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힘들어하는 승객에게 ‘세 가지 선물’
사업을 정리하고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던 이 제보자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회사를 접겠다는 생각을 바로 내던졌다고 한다. 회사에 도착해 그가 직원들에게 한 말은 “다시 한번 도와달라”는 것. 그 결과 이번 달 들어 그는 수십억원어치 물량을 신규로 수주했고, 단번에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택시기사가 목이 쉬어라 외쳤던 대로 그에게 기회와 희망이 찾아온 셈이다.
“내가 전하는 말로는 부족하니 ‘행복택시’(제보자가 붙인 이름이다)를 직접 한번 타보세요. 그럼 택시기사의 세 가지 축복을 받고, 이 시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그의 운행수첩에 남겨놓은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기자에게 택시기사의 이름과 소속회사, 차 번호를 알려주고는 암행취재를 권했고 기자는 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행복택시의 주인공은 해성운수(서울 성동구) 소속 택시기사 오문환씨(48)였다. 우선 해성운수에 연락해 오씨의 교대시간을 알아낸 기자는 그 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그의 차를 기다렸다. 그는 소문처럼 정확한 시간에 나타났고 덕분에 기자는 쉽게 그의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물론 취재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오문환씨가 지난 3년10개월 간 손님한테서 받은 사인과 각종 사연이 담긴 운행수첩과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린 도쿄신문.
“그런데 손님, 아시아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예? 멋진 사람이라뇨? 잘 모르겠는데요….”
“제가 아시아를 다 다녀봤는데 손님처럼 멋있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열심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입니다. 무언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이 진실하고 성실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저는 손님을 만나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이 제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세상에 택시기사와 손님의 만남처럼 극적인 만남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 그럼 제가 세상살이가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세 가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선물이라뇨?”
“자, 일단 들어보십시오.(이때 갑자기 오씨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커졌다) 첫번째 선물, 2000년부터 제 차 타는 손님 2010년까지 모든 일이 ‘절절절’ 풀리고, ‘뻥뻥뻥’ 뚫리고, 그래서 손님이 이 세상 모든 행운과 축복 10년 동안 몽땅 가지시고, 손님이 2010년까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이 모두 잘돼서 부디 소원성취하십시오. 두 번째 선물, 제 차 타는 손님 2010년 안에 고속버스만한 고급 승용차 타시기를. 영화 ‘나 홀로 2’에 나오는 리무진, 박세리가 타고 다니는 8억원짜리 BMW, 4억6000만원짜리 롤스로이스, 2억6000만원짜리 벤츠 최신형 승용차, 그보다 더 좋은 차도 탈 수 있으시기를. 이런 차 타고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잘되시기를….”
손님에게 세 가지 행복선물을 하며 웃고 있는 택시기사 오문환씨.
“세 번째 선물, 빌 게이츠도 갖지 못한 이 세상 모든 행복이 지금부터 영원히 손님과 함께하기를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손님, 저도 손님만큼 어둡고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힘내십시오.”
선물 보따리를 모두 풀어놓은 오씨는 기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어두웠던 과거를 극복하고,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했다. 금융권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15년간 일해온 기업은행에서 1997년 명예퇴직한 그는 퇴직금을 벤처회사에 투자했다 모두 날리고 99년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다. “다 같이 죽든지, 이혼하든지, 운전면허증이 있으니 택시기사를 하든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부인의 최후통첩에 1999년 12월, 그는 결국 택시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보름간의 운행. 택시 백미러에 비친 요지경 세상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서로를 욕하고 밟지 않으면 자신이 당하는 세상, 나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씨는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을 맞아 자신의 택시를 타는 모든 손님에게 행복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3년10개월 간 그에게 축복을 받은 사람이 모두 8만여명. 그의 행복 강의에 감동해 사인과 연락처, 사연을 남겨놓은 사람만 1만4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사연을 담은 수첩만 70여권. 지난 5월8일에는 그의 택시에 탄 일본 도쿄신문(東京新聞) 서울특파원이 그의 독특한 ‘행복 서비스’에 감동해 ‘복을 부르는 택시’라는 기사를 서울발로 보내 도쿄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물론 그도 오씨의 수첩에 사연을 남겼다.
오씨의 운행수첩에는 자살하러 가다 그의 행복 강의를 듣고 마음을 돌린 사람의 사연에서부터 절망에 빠진 교사가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암 투병환자가 오씨의 선물을 받고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되찾은 이야기 등 눈물을 자아내는 사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연락처와 이름을 모두 그의 운행수첩에 남긴 것을 보면 손님들이 얼마나 오씨를 믿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오씨는 자신의 차에 탄 불량배에게 행복선물을 주려다 ‘자신을 놀린다’며 격분한 불량배한테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그의 친절을 추근거리는 것으로 오해한 여성 승객이 도중에 하차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
“손님의 가슴속에 행복함 그 자체로 남고 싶습니다.” 하루 70명에게 행복선물을 해온 오씨는 요즘 건강이 극히 나빠져 행복선물을 언제까지 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