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광우병 쇼크로 야키니쿠 가게의 매상이 급감하자 야키니쿠 업계는 무료 시식회까지 열며 손님 끌기에 나섰다.
일본 야키니쿠 전국협회는 5월26일 협회 총회에서 이같이 보고했다.
야키니쿠, 즉 ‘일본식 불고기’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당 주인들은 요즘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이들 협회 회원 가운데에는 일본에 정착한 한국계가 상당수 있다.
2001년 9월 초 일본산 비육우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진 뒤 야키니쿠집을 찾는 손님이 급격히 감소했다. 당시 야키니쿠 전국협회가 회원사 가운데 102개 회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2001년 9월 초순을 100으로 볼 때 2001년 10월에는 55.6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최악의 주간에는 46.3까지 떨어졌다. 무려 60%까지 매출이 감소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식육처리되는 소에 대해 전량 광우병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2002년 3월에는 예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지난해에 쇠고기 원산지를 속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손님들의 발길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올 들어 손님이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해 마침내 2년 전 수준보다 약간 높은 상태를 유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BSE 쇼크 종료’ 선언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한국요리
한국인들은 ‘일본식 불고기’라고 부르지만 이미 야키니쿠는 일본의 ‘국민 음식’이다. 야키니쿠를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한국요리”라고 설명하는 일본인도 있다. 자장면이나 짬뽕이 ‘중국에는 없는 중국요리’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의 야키니쿠는 한국에서 전래된 것이기는 하나 사실 다른 요리나 마찬가지다. 찍어 먹는 양념만 있을 뿐 쌈장이나 상추는 따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맛은 일본의 다른 음식처럼 깔끔하다. 일본을 찾는 서양 관광객들 역시 야키니쿠를 일본음식으로 알고 돌아간다. 그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한국의 불고기가 일본으로 건너와 야키니쿠가 되었다는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는다.
한국의 고구마가 일본의 ‘사쓰마이모(薩摩芋)’에서 전래됐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반영구적인 정착을 꾀했다. 이때 식량 자급을 위해 들여와 재배한 것이 고구마. 삶아 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밥에 넣어 먹기도 하는 등 고구마는 구황식물로 큰 역할을 했다. 그런 고구마를 이제 와서 일본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야키니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야키니쿠 가게의 메뉴들. 일본인 중에는 야키니쿠가 한국에서 전래한 음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사가 3월 말 결산 기업 347개사를 대상으로 음식업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02년도 상위 100대 기업의 매출액 합계는 전년도에 비해 평균 1.9% 증가했다. 이는 2000∼2001년 증가율인 4.1%를 크게 밑도는 것이며, 1993년 이래 9년 만의 최저 증가치였다.
일본 맥도널드는 점포 매상고에서 2년 연속 수위 자리를 지켰지만 수입은 대폭 감소했다. 1위 맥도널드가 8.3% 감소한 반면 2위 스카이락은 3.6% 증가했다. 스카이락은 적극적으로 가게 수를 늘렸으나 기존 점포들의 영업 실적이 부진해 이 정도 증가율에 만족해야 했다. 이자카야로 불리는 대중술집 ‘시라기야(白木屋)’ 등을 내고 있는 요식업계의 큰손, 몬테로자도 매상고가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중견 중소 체인점은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야키니쿠 가게와 대중술집 ‘규가쿠(牛角)’ 등 12종의 체인점을 운영중인 레인즈 인터내셔널(20위)은 전년 대비 70.6%의 경이적인 신장률을 기록했다. 1987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97년에 야키니쿠 사업을 시작했다. 가격이 일본산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 저렴한 가격으로 히트를 친 것이다. 야키니쿠 인기에 힘입어 안주, 밑반찬용으로 김치 깍두기 등 전통 한국식품도 판매하고 있다.
야키니쿠 가게의 내부.
특히 최근 들어 레인즈 인터내셔널 등 야키니쿠 업계의 큰손들은 점포 수를 대폭 늘리고 있다. 광우병 쇼크가 계속된 1년 사이에 개인이 하던 가게들이 상당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1년 사이에 야키니쿠점 총 점포 수는 10% 가량 줄어들었다. 이후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면서 수요가 증가했지만 한번 혼줄이 난 개인은 섣불리 다시 야키니쿠 점포를 내기 어렵다. 대신 큰 회사들이 서둘러 가게를 내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규가쿠 체인점을 내고 있는 레인즈 인터내셔널은 2003년 중에 점포 수를 1.3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현재 607곳인 체인점을 2003년 말까지 800곳으로 늘릴 계획. 역시 야키니쿠 식당 전문회사인 ‘사카이’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사이에 도쿄를 중심을 프랜차이즈 점을 60개 늘려 점포 수를 250개로 늘렸다. 대개 60∼70평 규모의 소형 점포지만, 일본산 쇠고기를 제공하는 메뉴 단가 5000엔(약 5만원) 정도의 고급점도 문을 열었다. ‘안라쿠테이(安樂亭)’도 프랜차이즈점 신설을 재개해 올해 3월까지 점포 수를 광우병 파동 이전의 상태인 280개로 되돌려놓았다. 2002년 7월에는 사이타마 시에 별실 중심의 고급점 ‘가라쿠니야’를 열었고, 양식 메뉴를 취급하는 ‘테라 플레이트’ 등 새로운 형태의 식당도 냈다.
한때 일본 소의 광우병 감염 사실이 밝혀진 후 야키니쿠 식당들은 수입쇠고기를 쓴다고 선전했고 가격도 낮췄다. 그러나 고객 1인당 매출액도 떨어지고 이용객도 크게 줄었다. 그래서 이제는 일본산 쇠고기를 다시 판매하는 곳이 많다.
기자가 좋아하는 야키니쿠 체인, ‘조조엔(敍敍苑)’은 도쿄 신주쿠의 오다큐 백화점 별관 오다큐하루쿠 내에 180평 규모의 매장을 냈다. 야키니쿠 체인점으로는 최대인 166석 규모에 와인감별사도 상근하고 있다. 조조엔은 직영점만 32개, 직원은 800명, 시간제 근무자가 700명에 이른다. 연간 이용객은 400만명이라고 한다.
다른 외식업에 비해 이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야키니쿠 업계이기에 그만큼 생존경쟁도 치열하다. 도쿄 코리아타운의 한국식당 주인들도 이제 본격적인 경쟁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