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각 방송사의 스타 찾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 번의 방송을 통해 심사위원단은 수만명의 지원자들 중 30명의 후보자를 가려낸다. 그리고 이들 30명은 이후 12회의 생방송을 통해 걸러진다. 최후의 승자 한 사람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자 유명한 팝 프로듀서인 디터 볼렌이 작곡한 신곡을 받고 프로그램 후원사인 BMG와 음반 계약을 맺는다. 실로 엄청난 특전인 셈이다.
구름같이 몰려드는 지원자들 중 쓸 만한 인재는 드물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의견이지만, 지원자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연예인 베로나 펠트부시나 인기그룹 ‘노 앤젤스’ ‘브로시스’ 등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타가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년 전 또 다른 TV 채널인 RTL2는 ‘팝스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적으로 여성 밴드를 모집했다. 4300여명의 지원자 중 5명이 발탁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지금 독일 최고의 인기그룹 중 하나인 ‘노 앤젤스’다. 작년에도 이 행사를 통해 혼성그룹 ‘브로시스’가 탄생했다. 그들은 1만여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행운아들이었다.
학자들은 “심각한 사회문제” 경고
독일의 TV쇼 사회자인 밀카
개중에는 중독에 가까운 경우도 드물지 않다. 대학생인 옌스 우제바흐(22)는 지금까지 20차례 이상 각종 캐스팅에 응모했다. 그중에는 어린이 프로그램, 아이스크림 광고, 에로틱 잡지 모델까지 있다. 우제바흐는 스타의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캐스팅에 응모할 작정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존 독일 사회의 직업관이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슈타인레는 “독일인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스타 열풍은 급속한 사회 변동의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독일에서도 안정된 직업을 찾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전에 없었던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젊은이들은 자연히 빠른 시간 내에 유명해질 수 있는 길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뢰더 정부가 ‘나-주식회사(Ich-AG)’라는 신개념을 홍보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제 독일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능력을 검증받고 싶어한다. 한 가지의 직업에 묵묵히 일생을 걸었던 과거 독일의 직업관에 비하면 파격적 변화다.
심리학자 하이코 에른스트는 독일의 시사잡지 ‘포쿠스’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가문이나 지위, 혹은 능력으로 엘리트가 되었다면 이제는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설령 연예인이 되었다 해도 사회는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주었던 관심과 환호를 이내 거두어갈 것이다. 그럴 경우 이들이 인격 파탄에 이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독일 학자들이 대중적 인기를 심리적 마약으로 규정하고 스타 열풍을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의 스타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 바람은 독일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혼돈만 남기고 이내 사라질 광기일 뿐일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우리 사회도 독일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