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자가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열심인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코끝에 맺히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남자는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긴 한숨을 쉰다. 장면이 바뀌어 남자는 차를 몰고 탁 트인 도로를 달려간다. 그리고 카피가 들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 카드회사의 TV 광고는 ‘열심히 일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제 정말로 그들이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주5일 근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막 떠나려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그래, 떠나라! 그러나 어디로?”
‘여가’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요즘 사회적인 뜨거운 화두이기도 하다. 주5일 근무제로 매주 2박3일의 휴가가 생겼는데도 그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 있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학적·심리학적·경제학적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여가·문화학회’도 창립
지난 7월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연 ‘여가·문화학회’의 탄생은 드디어 여가가 학문적인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유영구 명지대 이사장, 이광모 중앙대 영화과 교수 등이 참여한 여가·문화학회는 학자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경영인, 연극배우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 400여명이 참여한 특이한 학회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전성철 세종대 경영대학장은 학회의 역할에 대해 “여가에 대한 학술적 연구활동과 정보의 장터 역할을 동시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저 사이언스’(Leisure Science)라고 불리는 여가학은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학문의 한 영역에 편입된 지 오래다. 미국의 일리노이 주립대와 조지아대, 캐나다의 워털루대 등에 학과가 개설돼 있다. 사회과학, 사회체육, 관광학 등이 여가학의 모태다. 사회과학자들은 심리학 사회학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여가학을 연구하는 데 반해, 사회체육은 ‘여가치료’라는 개념으로 여가학을 조망한다. 반면 관광학 쪽은 산업의 측면에서 여가학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는 명지대 기록과학대학원에 여가정보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의 김정운 교수는 한 사회가 여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가 노동과 여가가 막 분리되기 시작한 단계라면, 2단계는 여가를 위한 노동의 단계, 그리고 여가와 일이 하나가 되어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3단계다. 이중 우리 사회는 1단계에서 막 2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김교수의 분석이다.
“여가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문화를 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일하는 패턴은 비슷합니다. 삼성이나 소니, GM의 일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노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죠. 따라서 여가학은 문화연구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교수는 ‘여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개개인이 가족과 함께 놀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긴 여가는 오히려 괴로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한국의 성인 남성들은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빠져 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죠. 하지만 여가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적잖은 기성세대는 ‘놀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1년 일찌감치 ‘한국인의 여가문화-노동과 여가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부산대 김문겸 교수(사회학)는 여가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 두 가지로 시간과 경제적 요인, 즉 돈을 꼽았다. 휴일이 늘어난다고 해도 경제적 여유와 직업의 안정성이 함께 충족되지 않는 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기는 어렵다. 결국 잠을 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술, 도박 등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
여가심리학자인 경주대 고동우 교수(관광학부)는 ‘여가 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회의 주력인 386세대는 투쟁으로 일관된 학창시절에 여가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위 세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요. 거기다가 한국인들은 본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죠. 모이면 별다른 대화 없이도 공유할 수 있는 술이나 도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비생산적인 여가를 지양하고 보다 진지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여가는 주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체감정년’은 38세라고 한다. 반면 평균수명은 이미 70세를 훌쩍 넘어 80세를 넘보고 있다. 직장 은퇴 이후 30여년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어떠한 직장을 선택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여가학은 단순히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의 차원이 아니라 좀더 잘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 즉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문인 셈이다.
한 카드회사의 TV 광고는 ‘열심히 일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제 정말로 그들이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주5일 근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막 떠나려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그래, 떠나라! 그러나 어디로?”
‘여가’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요즘 사회적인 뜨거운 화두이기도 하다. 주5일 근무제로 매주 2박3일의 휴가가 생겼는데도 그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 있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학적·심리학적·경제학적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여가·문화학회’도 창립
지난 7월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연 ‘여가·문화학회’의 탄생은 드디어 여가가 학문적인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유영구 명지대 이사장, 이광모 중앙대 영화과 교수 등이 참여한 여가·문화학회는 학자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경영인, 연극배우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 400여명이 참여한 특이한 학회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전성철 세종대 경영대학장은 학회의 역할에 대해 “여가에 대한 학술적 연구활동과 정보의 장터 역할을 동시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저 사이언스’(Leisure Science)라고 불리는 여가학은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학문의 한 영역에 편입된 지 오래다. 미국의 일리노이 주립대와 조지아대, 캐나다의 워털루대 등에 학과가 개설돼 있다. 사회과학, 사회체육, 관광학 등이 여가학의 모태다. 사회과학자들은 심리학 사회학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여가학을 연구하는 데 반해, 사회체육은 ‘여가치료’라는 개념으로 여가학을 조망한다. 반면 관광학 쪽은 산업의 측면에서 여가학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는 명지대 기록과학대학원에 여가정보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의 김정운 교수는 한 사회가 여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가 노동과 여가가 막 분리되기 시작한 단계라면, 2단계는 여가를 위한 노동의 단계, 그리고 여가와 일이 하나가 되어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3단계다. 이중 우리 사회는 1단계에서 막 2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김교수의 분석이다.
“여가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문화를 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일하는 패턴은 비슷합니다. 삼성이나 소니, GM의 일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노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죠. 따라서 여가학은 문화연구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교수는 ‘여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개개인이 가족과 함께 놀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긴 여가는 오히려 괴로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한국의 성인 남성들은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빠져 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죠. 하지만 여가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적잖은 기성세대는 ‘놀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1년 일찌감치 ‘한국인의 여가문화-노동과 여가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부산대 김문겸 교수(사회학)는 여가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 두 가지로 시간과 경제적 요인, 즉 돈을 꼽았다. 휴일이 늘어난다고 해도 경제적 여유와 직업의 안정성이 함께 충족되지 않는 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기는 어렵다. 결국 잠을 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술, 도박 등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
여가심리학자인 경주대 고동우 교수(관광학부)는 ‘여가 교육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회의 주력인 386세대는 투쟁으로 일관된 학창시절에 여가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빴던 그 위 세대는 말할 나위도 없고요. 거기다가 한국인들은 본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죠. 모이면 별다른 대화 없이도 공유할 수 있는 술이나 도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비생산적인 여가를 지양하고 보다 진지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여가는 주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체감정년’은 38세라고 한다. 반면 평균수명은 이미 70세를 훌쩍 넘어 80세를 넘보고 있다. 직장 은퇴 이후 30여년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어떠한 직장을 선택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결국 여가학은 단순히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의 차원이 아니라 좀더 잘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 즉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