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실시를 앞두고 교회는 걱정, 사찰은 환영이라고 한다. 전국의 주요 사찰들은 곧 국보급 문화 유산이다. 불교계는 답사여행이 늘면 자연스럽게 불교와 친숙해지는 사람도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건축과)가 쓴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에는 스물아홉 군데의 사찰이 소개돼 있다. 그러나 섣불리 짐작하지 말기를. 여행길을 꼼꼼히 안내하는 실용적인 여행서도, 불교 건축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다. 저자가 직접 산길을 오르고 경내를 걸어보고 자연과 사찰의 어우러짐,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관찰한 뒤 독자들에게 “이곳만큼은 절대 빠뜨리지 말라”고 살짝 귀띔해 준다.
노련한 가이드가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을 정확히 알아서 관광객을 멈춰 세우듯, 김교수도 시선이 산만한 관광객들을 돌려 세운다. “범어사 진입로는 되도록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즐기세요.” “화암사까지 오르는 길은 그냥 걷기만 해도 속진이 절로 씻긴다오.” “비슬산 유가사는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에요.” “부석사에서 무량수전만 보지 말고 계단식 석단을 눈여겨보세요.”
이 책에서는 사찰 대신 ‘가람’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가람이란 ‘여러 승려들이 즐겨 모이는 장소’를 뜻하는 인도어 ‘samgharama’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공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은 범어사의 관조 스님(불교사진가)이 맡았다.
그럼, 지금부터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은 길’을 올라볼까. 범어사는 속계와 성소를 구별짓기 위해 산문과 긴 진입로를 택했다. 세 칸짜리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천왕문에 올라서면 멀리 불이문이 보인다. 김교수는 이곳이 진입부의 클라이맥스이며 한국 불교 건축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장면이라고 격찬했다. 길지도 않고 똑바르지도 않으며, 3단에 놓인 세 토막의 길들이 약간씩 어긋나며 휘어져 있지만 그 분절의 효과 때문에 전체적으로 곧아 보이는 길. 양 쪽의 낮은 담장이 길을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이는 한국적 미학의 극치라는 것이다.
전북 불명산의 화암사는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역사성 이전에 가람을 품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먼저 취한다. 김교수는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인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라고 했다. 이 고적한 산사에 주차장을 만드느라 변형과 파손의 피해가 나타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해인사에서 저자는 우리가 국사단을 그냥 지나쳐 버릴까봐 조바심을 낸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의 공간에서 국사단이 동쪽 빈틈을 차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 정적과 역동성, 비대칭적 대칭성 등이 나타난다. 사실 국사단은 이 지역의 토속신앙인 토지신을 모시는 건물로 불교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해인사는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이 건물을 봉황문(미망의 세계)과 해탈문(깨달음의 세계) 사이에 둠으로써 불교와 토속 신앙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렇게 김봉렬 교수의 안내대로 스물아홉 군데 사찰을 돌고 나면 누군가의 손을 이끌고 떠나고 싶어진다. “수덕사 대웅전은 측면을 잘 보아야 해. 5개의 기둥이 건물의 벽면을 정확히 4등분하는 아름다운 비례를 보라고.” “청룡사는 휘어진 듯 곧으며 곧은 듯 휘어진 기둥의 역동성이 핵심이야.” “선운사는 영산전과 대웅전 사이의 노전채를 철거하는 바람에 마당이 휑뎅그렁해졌단 말이야.”
가족들과 모처럼의 답사여행에서 조금 아는 척해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그곳까지 가는 길이 궁금하다면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시리즈가 있다. 전북, 경주, 동해·설악, 충남, 전남 등 지역별로 이미 14권이 나와 있고 곧 서울편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리즈는 길 안내 지도와 코스별로 답사지를 묶어 소개한 책이어서 초행자에게 적합하다.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 236쪽/ 1만5000원
답사여행의 길잡이 14 경남/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돌베개 펴냄/ 352쪽/ 1만3000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건축과)가 쓴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에는 스물아홉 군데의 사찰이 소개돼 있다. 그러나 섣불리 짐작하지 말기를. 여행길을 꼼꼼히 안내하는 실용적인 여행서도, 불교 건축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다. 저자가 직접 산길을 오르고 경내를 걸어보고 자연과 사찰의 어우러짐,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관찰한 뒤 독자들에게 “이곳만큼은 절대 빠뜨리지 말라”고 살짝 귀띔해 준다.
노련한 가이드가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을 정확히 알아서 관광객을 멈춰 세우듯, 김교수도 시선이 산만한 관광객들을 돌려 세운다. “범어사 진입로는 되도록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즐기세요.” “화암사까지 오르는 길은 그냥 걷기만 해도 속진이 절로 씻긴다오.” “비슬산 유가사는 자연이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에요.” “부석사에서 무량수전만 보지 말고 계단식 석단을 눈여겨보세요.”
이 책에서는 사찰 대신 ‘가람’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가람이란 ‘여러 승려들이 즐겨 모이는 장소’를 뜻하는 인도어 ‘samgharama’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공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은 범어사의 관조 스님(불교사진가)이 맡았다.
그럼, 지금부터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은 길’을 올라볼까. 범어사는 속계와 성소를 구별짓기 위해 산문과 긴 진입로를 택했다. 세 칸짜리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천왕문에 올라서면 멀리 불이문이 보인다. 김교수는 이곳이 진입부의 클라이맥스이며 한국 불교 건축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장면이라고 격찬했다. 길지도 않고 똑바르지도 않으며, 3단에 놓인 세 토막의 길들이 약간씩 어긋나며 휘어져 있지만 그 분절의 효과 때문에 전체적으로 곧아 보이는 길. 양 쪽의 낮은 담장이 길을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이는 한국적 미학의 극치라는 것이다.
전북 불명산의 화암사는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는 역사성 이전에 가람을 품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먼저 취한다. 김교수는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인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라고 했다. 이 고적한 산사에 주차장을 만드느라 변형과 파손의 피해가 나타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해인사에서 저자는 우리가 국사단을 그냥 지나쳐 버릴까봐 조바심을 낸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의 공간에서 국사단이 동쪽 빈틈을 차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 정적과 역동성, 비대칭적 대칭성 등이 나타난다. 사실 국사단은 이 지역의 토속신앙인 토지신을 모시는 건물로 불교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해인사는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이 건물을 봉황문(미망의 세계)과 해탈문(깨달음의 세계) 사이에 둠으로써 불교와 토속 신앙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렇게 김봉렬 교수의 안내대로 스물아홉 군데 사찰을 돌고 나면 누군가의 손을 이끌고 떠나고 싶어진다. “수덕사 대웅전은 측면을 잘 보아야 해. 5개의 기둥이 건물의 벽면을 정확히 4등분하는 아름다운 비례를 보라고.” “청룡사는 휘어진 듯 곧으며 곧은 듯 휘어진 기둥의 역동성이 핵심이야.” “선운사는 영산전과 대웅전 사이의 노전채를 철거하는 바람에 마당이 휑뎅그렁해졌단 말이야.”
가족들과 모처럼의 답사여행에서 조금 아는 척해 보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그곳까지 가는 길이 궁금하다면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시리즈가 있다. 전북, 경주, 동해·설악, 충남, 전남 등 지역별로 이미 14권이 나와 있고 곧 서울편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리즈는 길 안내 지도와 코스별로 답사지를 묶어 소개한 책이어서 초행자에게 적합하다.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 236쪽/ 1만5000원
답사여행의 길잡이 14 경남/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돌베개 펴냄/ 352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