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침은 청계천에서 시작된다/ 살면서 열심히 일하면서 날개가 부러지면 생각의 가지 끝에 잠시 둥지를 튼다/… 날마다 달라지는 구호와 현수막 붙박이 간판들은 서슴없이 우리들의 공중마저 빼앗고/ 어느 날 새의 부리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린 폐수/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다며 뿌리째 이사한 청계천/ 어디로 갔을까 우리들의 청계천은’(박라연 ‘우리들의 청계천’)
청계천(淸溪川)에 ‘청계’는 없다. 붕괴 위험 판정이 내려진 고가도로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주변 건물들, 그리고 폭 50m의 복개도로…. 사방이 온통 시멘트 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600년 고도(古都) 서울의 상징이었던 옛 청계천을 잊지 못한다.
‘천변 모래 벌판에 휘날리던 하얀 빨래와 멱감는 아이들, 빨래 방망이를 휘둘러대던 아주머니, 반두질을 하는 아저씨들….’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청계천 주변 서민의 일상을 소설화한 박태원(1909~86년, 월북)의 ‘천변풍경’에 비친 청계천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50대 이상의 서울 토박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 다 괜한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소설 ‘천변풍경’ 속 한 인물은 청계천 복개에 관한 소문을 듣고 턱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정확히 18년 후, 그 넓고 맑던 청계천은 복개공사(1955~78년)로 자취를 감췄고, 그 위에는 어김없이 아스팔트가 깔렸다. 그도 모자라 공중에는 고가도로까지 생겼고 고가도로 아래는 슬럼화가 진행됐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지금의 청계천을 ‘서울의 쓰레기통’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일찌감치 “청계천 복원은 우리가 20세기적인 물질문명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생명의 21세기로 나아감을 보여줄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환경단체, 학자와 일부 지식인들의 줄기찬 주장에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청계천 복원론이 최근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치인들의 공약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사람은 민주당 이상수 총무와 한나라당 이명박 전 의원. 이들은 청계천로의 아스팔트뿐만 아니라 고가도로까지 철거해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하고 그곳에 유람선까지 띄우겠다고 장담한다. 또 천변에 도로와 경전철, 녹색 공원을 만드는 것은 물론, 세운상가와 평화시장을 비롯한 주변 노후 건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청계천 일대를 혁신하겠다는 재개발 계획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이미 ‘똥물’이 돼버린 청계천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느냐는 주변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그들은 청계천을 살리기 위한 세미나(2월28일)와 심포지엄(3월6일)을 열었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 이들의 주장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99년 서울 양재천 복원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래 환경과 도시계획 관련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청계천 복원을 주장해 왔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가 30여명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청계천살리기연구회(청계천포럼). 시장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들의 집요한 요구는 청계천 복원을 각 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으로 만들어 놓았다.
상황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30~ 40년 동안 서울의 하수도 구실을 해온 청계천의 물줄기를 온전히 살려낼 수 있느냐는 문제. 즉 청계천이 아직도 지하에서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잊힌 청계천의 물줄기를 찾아 지난 2월28일 오전 복개도로 밑의 지하 청계천을 찾아 나섰다.
청계천은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이 만나는 서울 자하문 앞 백운동에서 발원해 광화문과 광교를 거쳐 청계천로를 따라가다 마장동 신답 네거리 마장철교 부분에서 중랑천과 합쳐진다(총 13.75km). 광화문에서 광교 구간은 이미 지난 55년 복개가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마장동까지는 61~78년 3단계에 걸쳐 복개가 이루어졌다. 현재 복원 주장이 나오는 부분은 바로 광교에서 마장동까지의 5.4km 구간.
일단 마장동에서 광교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마장철교 밑의 청계천 지하로 들어섰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메탄가스 냄새를 몇 번의 헛구역질로 간신히 다스리고 몇 발짝 움직이자 육중한 아스팔트 구조물과 고가다리를 받치는 기둥들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짙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쏴’ 소리에 ‘드디어 청계천의 물줄기를 보는구나’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것은 천 양쪽 가장자리에 설치된 대형 하수관로에 흐르는 오수 소리다.
“청계천 주변의 모든 생활하수는 이 하수관에 모여 중랑천 하수처리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청계천의 자연수는 모두 지하로 스며들고 없어요.” 청계천 지하 시설물의 보수관리를 맡고 있는 성동도로관리사업소의 직원은 보기가 민망하다는 듯 연신 혀를 찼다. 폭 80m의 청계천에는 복개공사 때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토사물, 음식물, 비닐 등 온갖 쓰레기가 가득하다. 모두 복개도로 위로 뚫린 구멍 사이로 사람들이 버린 것들. “구멍을 막아버리지 왜 뚫어 놓았느냐”고 따져 묻자 “저것 막으면 바로 기절해요”라고 힐난한다. 하수에서 나오는 가스가 분출되는 숨구멍이었던 것.
1km쯤 갔을까. 드디어 약간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청계천의 지류인 정릉천과 만나는 용두동 지점. 그나마 물을 본 것도 잠시뿐, 10m 가량 땅을 적시던 물줄기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길을 재촉했다. 과연 청계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소주 반 병쯤 마신 것 같지 않습니까.” 함께 들어간 환경운동연합 간사들이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외쳤다. “겨울이라 이 정도입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와요.” 사업소 직원의 말에 누구도 대꾸를 못한다. 신설동의 성북천(안암천) 합류 지점을 지나 황학동 중고품시장 밑에 다다르자 ‘하수 천하’가 벌어졌다. 하수관로는 구멍이 뻥뻥 뚫렸고, 온갖 오물이 넘쳐 천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냄새는 더욱 코를 찔렀다. 그 순간 위에서 무엇인가 이마로 떨어졌다. 가래였다. 이어 담배꽁초가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날아들었다. 머리 위로 차량 지나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동대문 상가아파트 밑을 지나면서 조선시대 동대문 외곽에 있었다는 오간수문(五間水門)을 찾으려 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무장공비의 침투를 막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70년대에 만들어진 철문이 덩그러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덧 청계천의 폭은 50m로 줄어들어 있었다. 바로 그때 청계천 밑바닥에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다. 자세히 보니 죽은 악어 새끼였다. 도대체 악어가 어떻게 청계천 밑바닥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악어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이 악어가 죽자 팬 구멍으로 버린 것 같다”는 사업소 직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냄새가 역했다.
세운상가 밑 부분을 지날 때부터는 아예 하수관로에 위뚜껑이 없었다. “비가 오면 어떻게 되죠?” “하수와 우수가 함께 섞여 중랑천으로 내려갑니다.” 환경운동연합 간사와 사업소 직원 간의 대화에서 중랑천이 ‘똥물’이 된 사연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수심 2m의 하수와 슬러지 사이의 폭 30cm 길을 곡예하듯 걸으며 중구 수표동 근처에 이르렀을 때 아치형 교각이 발견됐다. 사업소 직원은 이를 조선시대 수표교 교각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세종이 홍수만 나면 범람하는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수표교는 복개공사 당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직원이 잘못 안 것이다. 다만 조선시대 청계천에 있었던 25개 교각 중 어느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드디어 복개천의 끝인 광교. 여기서부터는 천 전체가 하수관로로 돼 있어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했다. 2시간30분의 고역스러운 여정에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광교 양쪽 벽면에 꿋꿋하게 서 있는 석축과 거기에 새겨진 구름, 당초무늬를 보는 순간 다시 힘이 솟는 듯했다. 조선 태종이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태조 계비 강씨의 무덤돌로 만들었다는 ‘대광통교’가 바로 거기 있었다. 쓰레기와 오수 사이에서 46년을 버텨온 광교, 그러나 청계천은 이미 옛날의 청계천이 아니었다.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에서 발원해 흐른 청계천의 자연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초대형 쓰레기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청계천을 도대체 어떻게 복원하자는 이야기일까. 수량과 수질은 어떻게 확보하며, 도로 철거비용과 주변지역 재개발 비용 등 막대한 재원은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또 그에 따른 교통대책은 무엇인가. 청계천 복원에 대한 각종 궁금증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일단 하수관로와 천 바닥을 일제히 재정비하고, 중랑 하수처리장에서 1차 정화된 물을 2차 처리해 광교까지 관로를 통해 펌핑하면 수량과 수질 확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대구 신천은 하수처리장에서 10만톤의 물을 14km나 떨어진 천 상류까지 매일 끌어올려 완전히 죽은 천을 4년 만에 살려냈다. 이에 비해 중랑천과 청계천 상류(광교)의 거리는 8km 정도에 불과하며 수량도 4만톤이면 충분하다. 6만톤이면 배(한강 유람선)가 다닐 수 있다. 신천은 천 상류와 하류의 고도차가 14m에 달하지만 청계천은 고도차도 거의 없다.”(노수홍 연세대 환경공학과 교수·물처리 전공)
“청계천 복원 비용은 청계천로와 고가도로 철거비 3500억원, 운하와 교량건설 비용, 하수처리 공사비, 조경 비용을 합해 모두 94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서울시에서 자체 예산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하지만 경전철 신설 비용 3848억원과 18만3000여평에 이르는 주변지역 재개발사업 비용 8조2700억원, 보상비 2조7516억원은 민간업체의 참여와 재개발권리 부여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될 비용이다. 즉 이는 비용이 아니라 새롭게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로 봐야 옳다. 이는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정창무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시계획 전공)
“시장이 되면 서울시 신청사 건축기금 2000억원을 청계천 복원에 조달할 것이다. 청사를 짓는 것이 급한 게 아니다. 나머지는 주변 개발지역에서 환수된 개발 이익금을 활용하면 된다. 청계천 주변지역 재개발은 약 30조원의 경제적 유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재원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이명박 전 의원)
“현재 서울에는 길을 새로 내고 넓힐 만한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럴 때 ‘도로량이 줄면 차량의 통행량도 준다’는 패러독스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원될 청계천은 자연친화적 공간이고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또 청계천변에 왕복 6차선 도로를 신설하면 서울 도심 전체도로의 차량통행 속도가 평균(시속 24.4km)보다 시속 1.6km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해당 통로인 청계천로는 시속 6km나 떨어진다. 하지만 새로 건설될 도로는 청계천로 주변의 상가와 사무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만 담당할 뿐이다. 제방과 다리에는 보행 전용공간이 많이 신설돼 청계천 주변은 ‘워킹 스트리트’가 될 것이다.”(원제무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하지만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올 하반기부터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 청계고가도로에 대해 전면 보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서울시의 현재 입장은 “하루 12만대의 차량이 이용하는 청계고가를 대체하는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복원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라는 것. 진정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계천 복원일까, 청계고가 보수일까. 최선의 결론이 내려질 수 있도록 시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계천(淸溪川)에 ‘청계’는 없다. 붕괴 위험 판정이 내려진 고가도로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주변 건물들, 그리고 폭 50m의 복개도로…. 사방이 온통 시멘트 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600년 고도(古都) 서울의 상징이었던 옛 청계천을 잊지 못한다.
‘천변 모래 벌판에 휘날리던 하얀 빨래와 멱감는 아이들, 빨래 방망이를 휘둘러대던 아주머니, 반두질을 하는 아저씨들….’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청계천 주변 서민의 일상을 소설화한 박태원(1909~86년, 월북)의 ‘천변풍경’에 비친 청계천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50대 이상의 서울 토박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 다 괜한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소설 ‘천변풍경’ 속 한 인물은 청계천 복개에 관한 소문을 듣고 턱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정확히 18년 후, 그 넓고 맑던 청계천은 복개공사(1955~78년)로 자취를 감췄고, 그 위에는 어김없이 아스팔트가 깔렸다. 그도 모자라 공중에는 고가도로까지 생겼고 고가도로 아래는 슬럼화가 진행됐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지금의 청계천을 ‘서울의 쓰레기통’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일찌감치 “청계천 복원은 우리가 20세기적인 물질문명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생명의 21세기로 나아감을 보여줄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환경단체, 학자와 일부 지식인들의 줄기찬 주장에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청계천 복원론이 최근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치인들의 공약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사람은 민주당 이상수 총무와 한나라당 이명박 전 의원. 이들은 청계천로의 아스팔트뿐만 아니라 고가도로까지 철거해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하고 그곳에 유람선까지 띄우겠다고 장담한다. 또 천변에 도로와 경전철, 녹색 공원을 만드는 것은 물론, 세운상가와 평화시장을 비롯한 주변 노후 건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청계천 일대를 혁신하겠다는 재개발 계획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이미 ‘똥물’이 돼버린 청계천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느냐는 주변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그들은 청계천을 살리기 위한 세미나(2월28일)와 심포지엄(3월6일)을 열었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 이들의 주장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99년 서울 양재천 복원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래 환경과 도시계획 관련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청계천 복원을 주장해 왔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가 30여명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청계천살리기연구회(청계천포럼). 시장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들의 집요한 요구는 청계천 복원을 각 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으로 만들어 놓았다.
상황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30~ 40년 동안 서울의 하수도 구실을 해온 청계천의 물줄기를 온전히 살려낼 수 있느냐는 문제. 즉 청계천이 아직도 지하에서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잊힌 청계천의 물줄기를 찾아 지난 2월28일 오전 복개도로 밑의 지하 청계천을 찾아 나섰다.
청계천은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이 만나는 서울 자하문 앞 백운동에서 발원해 광화문과 광교를 거쳐 청계천로를 따라가다 마장동 신답 네거리 마장철교 부분에서 중랑천과 합쳐진다(총 13.75km). 광화문에서 광교 구간은 이미 지난 55년 복개가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마장동까지는 61~78년 3단계에 걸쳐 복개가 이루어졌다. 현재 복원 주장이 나오는 부분은 바로 광교에서 마장동까지의 5.4km 구간.
일단 마장동에서 광교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마장철교 밑의 청계천 지하로 들어섰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메탄가스 냄새를 몇 번의 헛구역질로 간신히 다스리고 몇 발짝 움직이자 육중한 아스팔트 구조물과 고가다리를 받치는 기둥들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짙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쏴’ 소리에 ‘드디어 청계천의 물줄기를 보는구나’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것은 천 양쪽 가장자리에 설치된 대형 하수관로에 흐르는 오수 소리다.
“청계천 주변의 모든 생활하수는 이 하수관에 모여 중랑천 하수처리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청계천의 자연수는 모두 지하로 스며들고 없어요.” 청계천 지하 시설물의 보수관리를 맡고 있는 성동도로관리사업소의 직원은 보기가 민망하다는 듯 연신 혀를 찼다. 폭 80m의 청계천에는 복개공사 때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토사물, 음식물, 비닐 등 온갖 쓰레기가 가득하다. 모두 복개도로 위로 뚫린 구멍 사이로 사람들이 버린 것들. “구멍을 막아버리지 왜 뚫어 놓았느냐”고 따져 묻자 “저것 막으면 바로 기절해요”라고 힐난한다. 하수에서 나오는 가스가 분출되는 숨구멍이었던 것.
1km쯤 갔을까. 드디어 약간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청계천의 지류인 정릉천과 만나는 용두동 지점. 그나마 물을 본 것도 잠시뿐, 10m 가량 땅을 적시던 물줄기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길을 재촉했다. 과연 청계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소주 반 병쯤 마신 것 같지 않습니까.” 함께 들어간 환경운동연합 간사들이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외쳤다. “겨울이라 이 정도입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와요.” 사업소 직원의 말에 누구도 대꾸를 못한다. 신설동의 성북천(안암천) 합류 지점을 지나 황학동 중고품시장 밑에 다다르자 ‘하수 천하’가 벌어졌다. 하수관로는 구멍이 뻥뻥 뚫렸고, 온갖 오물이 넘쳐 천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냄새는 더욱 코를 찔렀다. 그 순간 위에서 무엇인가 이마로 떨어졌다. 가래였다. 이어 담배꽁초가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날아들었다. 머리 위로 차량 지나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동대문 상가아파트 밑을 지나면서 조선시대 동대문 외곽에 있었다는 오간수문(五間水門)을 찾으려 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무장공비의 침투를 막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70년대에 만들어진 철문이 덩그러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덧 청계천의 폭은 50m로 줄어들어 있었다. 바로 그때 청계천 밑바닥에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다. 자세히 보니 죽은 악어 새끼였다. 도대체 악어가 어떻게 청계천 밑바닥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악어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이 악어가 죽자 팬 구멍으로 버린 것 같다”는 사업소 직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냄새가 역했다.
세운상가 밑 부분을 지날 때부터는 아예 하수관로에 위뚜껑이 없었다. “비가 오면 어떻게 되죠?” “하수와 우수가 함께 섞여 중랑천으로 내려갑니다.” 환경운동연합 간사와 사업소 직원 간의 대화에서 중랑천이 ‘똥물’이 된 사연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수심 2m의 하수와 슬러지 사이의 폭 30cm 길을 곡예하듯 걸으며 중구 수표동 근처에 이르렀을 때 아치형 교각이 발견됐다. 사업소 직원은 이를 조선시대 수표교 교각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세종이 홍수만 나면 범람하는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수표교는 복개공사 당시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직원이 잘못 안 것이다. 다만 조선시대 청계천에 있었던 25개 교각 중 어느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드디어 복개천의 끝인 광교. 여기서부터는 천 전체가 하수관로로 돼 있어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했다. 2시간30분의 고역스러운 여정에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광교 양쪽 벽면에 꿋꿋하게 서 있는 석축과 거기에 새겨진 구름, 당초무늬를 보는 순간 다시 힘이 솟는 듯했다. 조선 태종이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태조 계비 강씨의 무덤돌로 만들었다는 ‘대광통교’가 바로 거기 있었다. 쓰레기와 오수 사이에서 46년을 버텨온 광교, 그러나 청계천은 이미 옛날의 청계천이 아니었다.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에서 발원해 흐른 청계천의 자연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초대형 쓰레기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청계천을 도대체 어떻게 복원하자는 이야기일까. 수량과 수질은 어떻게 확보하며, 도로 철거비용과 주변지역 재개발 비용 등 막대한 재원은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또 그에 따른 교통대책은 무엇인가. 청계천 복원에 대한 각종 궁금증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일단 하수관로와 천 바닥을 일제히 재정비하고, 중랑 하수처리장에서 1차 정화된 물을 2차 처리해 광교까지 관로를 통해 펌핑하면 수량과 수질 확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대구 신천은 하수처리장에서 10만톤의 물을 14km나 떨어진 천 상류까지 매일 끌어올려 완전히 죽은 천을 4년 만에 살려냈다. 이에 비해 중랑천과 청계천 상류(광교)의 거리는 8km 정도에 불과하며 수량도 4만톤이면 충분하다. 6만톤이면 배(한강 유람선)가 다닐 수 있다. 신천은 천 상류와 하류의 고도차가 14m에 달하지만 청계천은 고도차도 거의 없다.”(노수홍 연세대 환경공학과 교수·물처리 전공)
“청계천 복원 비용은 청계천로와 고가도로 철거비 3500억원, 운하와 교량건설 비용, 하수처리 공사비, 조경 비용을 합해 모두 94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서울시에서 자체 예산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하지만 경전철 신설 비용 3848억원과 18만3000여평에 이르는 주변지역 재개발사업 비용 8조2700억원, 보상비 2조7516억원은 민간업체의 참여와 재개발권리 부여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될 비용이다. 즉 이는 비용이 아니라 새롭게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로 봐야 옳다. 이는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시작이 될 것이다.”(정창무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시계획 전공)
“시장이 되면 서울시 신청사 건축기금 2000억원을 청계천 복원에 조달할 것이다. 청사를 짓는 것이 급한 게 아니다. 나머지는 주변 개발지역에서 환수된 개발 이익금을 활용하면 된다. 청계천 주변지역 재개발은 약 30조원의 경제적 유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재원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이명박 전 의원)
“현재 서울에는 길을 새로 내고 넓힐 만한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럴 때 ‘도로량이 줄면 차량의 통행량도 준다’는 패러독스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원될 청계천은 자연친화적 공간이고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또 청계천변에 왕복 6차선 도로를 신설하면 서울 도심 전체도로의 차량통행 속도가 평균(시속 24.4km)보다 시속 1.6km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해당 통로인 청계천로는 시속 6km나 떨어진다. 하지만 새로 건설될 도로는 청계천로 주변의 상가와 사무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만 담당할 뿐이다. 제방과 다리에는 보행 전용공간이 많이 신설돼 청계천 주변은 ‘워킹 스트리트’가 될 것이다.”(원제무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하지만 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올 하반기부터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 청계고가도로에 대해 전면 보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서울시의 현재 입장은 “하루 12만대의 차량이 이용하는 청계고가를 대체하는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복원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라는 것. 진정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계천 복원일까, 청계고가 보수일까. 최선의 결론이 내려질 수 있도록 시민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