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특정업체 지원설이 나돌고 사업평가단의 시험평가 결과보고서가 흘러나오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2일 언론은 국방부가 2월15일 ‘각 기종의 평가항목별 최하 점수를 0점이 아닌 60점으로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FX 사업 평가작업 기관에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이러한 국방부 지시는 F-15K를 제시한 미국의 보잉사를 유리하게 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도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큰 파문을 일으켰다.
도대체 FX 사업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 것인가. 지난 5년간 끌어왔음에도 이 사업은 왜 제대로 이륙조차 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FX 사업은 IMF 사태 이전부터 추진되었다. 애당초 공군이 예상한 사업비는 40억 달러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1080원대였으므로 40억 달러는 4조3000억원 정도. 그러나 IMF 위기를 겪고 난 지금의 환율은 1330원대다. 이 환율로 계산하면 40억 달러가 IMF 이전보다 1조200억원이 증가한 5조3200억원이 된다. 이처럼 환율 인상으로 가격 부담이 커졌으므로 FX 기종 선정에는 가격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난 2월4일 국방부에서는 FX 기종 결정을 위한 최종 가격협상(입찰)이 벌어졌다. 국방부가 사전에 “이 협상은 ‘마지막’ 협상”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러시아의 수호이-35를 제외한 유력 3개 기종은 모두 40억 달러 이상을 제시했다.
3개사는 정확한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 주변에서는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한 것은 프랑스의 라팔로 41억7000만 달러이며, 미국의 F-15K는 45억5000만 달러, 유러파이터 타이푼은 가장 높은 46억 달러 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수호이-35는 30억 달러 미만을 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격 산정 방식은 서방 국가와 다르다. 지난 2월 말 퇴임 직전 이억수 공군 총장은 수호이-35는 작전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여기서 수호이-35는 논외로 한다).
국방부와 공군은 유력 3개사가 40억 달러 이상을 써낸 데 대해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국방부와 공군은 라팔과 타이푼이 이제 막 개발된 기종이라 비쌀 것으로 예상했고, F-15K는 오래 전에 개발돼 미국·일본·이스라엘·사우디 등에 공급된 ‘본전을 뽑은’ 전투기라 쌀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F-15K는 라팔보다 3억7000만 달러(한화 약 4921억원)나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3억7000만 달러는 애초 국방부가 설정한 목표액(40억 달러)의 9.25%에 이르는 ‘거액’이다.
3개 기종 모두 목표액을 넘어서자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어느 기종도 목표액에 들어오지 못했다”며 FX 사업 연기 의사를 내비쳤다. 그런데 바로 직후 김동신 국방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FX 사업은 다른 데서 예산을 끌어와서라도 반드시 실행한다. FX 기종을 결정할 때는 성능보다 한미군사동맹 상황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당연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장관 발언은 F-15K를 선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김장관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안보를 책임진 국방장관으로서는 한미군사동맹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국군과 주한 미군은 한미연합사라는 단일 사령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전시 경우). 덕분에 한국군은 미군 수준의 군사첩보를 얻고 있다. 주한미군 덕분에 구축된 전쟁 억제력도 상당하다. 이러한 무형의 혜택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수십억 달러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미동맹이 한국 방어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다소사조차 ‘라팔은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는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잉사가 한미동맹을 이용해 F-15K를 팔려고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인가, 아니면 엄정한 심사 결과에 따를 것인가. 지금 국방부는 양자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려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세계 공군의 교과서’는 미국 공군이다. 미국 공군은 제공기와 전폭기(다목적기)를 3.5대 6.5의 비율로 구성한다. 미국 공군은 오랜 실전 경험을 통해 이런 비율로 전투기를 편성할 때, 최소 비용으로 최대 전투력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 미국 공군은 제공기로 F-15를, 전폭기로 F-16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공군은 제공기와 전폭기를 동시에 교체하는 미국판 FX 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록히드마틴과 보잉 등 내로라 하는 회사들이 도전했다. 그 결과 제공기 분야에서는 F-22, 전폭기 분야에서는 JSF가 선정됐다. 두 기종 모두 록히드마틴의 것. 보잉은 미국판 FX 사업에서 완패한 것이다.
한국 공군도 미국 공군을 본받아 제공기와 전폭기를 3.5대 6.5의 비율로 구성하려고 한다. 평상시 한국 공군이 보유해야 하는 적정 전투기는 550대 정도다. 따라서 이 비율대로 한다면 제공기는 200여대, 전폭기는 350여대가 돼야 한다. 현재 한국 공군은 제공기다운 제공기가 없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FX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제공기는 값이 비싸 한국 공군은 200여대를 도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입 목표를 120대로 낮추었는데, 120대도 한꺼번에 도입할 형편이 못 돼 1차로 40대를 먼저 도입하는 지금의 FX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따라서 FX 사업이 끝난 후인 2010년쯤 한국 공군은 다시 80여대의 제공기를 도입하는 2차 FX 사업을 벌여야 한다. 1차 FX 사업과 2차 FX 사업에서 같은 기종을 선택해야만 한국 공군은 운영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이 1차 FX 사업에서 F-15K를 선정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과연 보잉이 2010년쯤에도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판 FX 사업이 결정된 만큼 미국 공군은 기존 F-15는 수명이 다하는 2030년까지 운용하고, 추가로 이 전투기를 구매하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고객인 미 공군으로부터 주문이 사라졌는데, ‘조그만 고객’인 한국을 위해 보잉이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인가.
이러한 우려에 대해 보잉의 릴리스 이사는 “현재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F-15 추가 구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F-15K를 구입해 준다면 두 나라가 F-15를 추가 구입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국이 F-15를 선정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추가 구매한다면, 2010년대에도 보잉은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F-15를 추가 구입하지 않아도 2010년까지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이런 우려 때문에 국방 전문가들은 ‘FX 사업 연장론’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들이 FX 사업 연장론을 펼치는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2∼3년 정도 FX 사업을 연기시키면 그 사이 보잉은 시장논리에 따라 스스로 F-15 생산라인 존폐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이다. 보잉이 결정을 내린 후 FX 사업을 추진한다면, 한국은 한미동맹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1·2차 FX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환율이 높은 지금 목표액보다 높은 가격으로 FX 사업을 추진한다면 국방비 부담이 너무 커진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회복되고 환율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추진하는 것이 좀더 현명하다.
셋째, 유러파이터 타이푼은 아직 공대지(空對地) 기능이 개발되지 않았다. 타이푼의 공대지 기능이 개발된 후 FX 사업을 펼치면, 라팔과 타이푼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한국은 상당한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
넷째, 프랑스의 다소사는 프랑스 해·공군에게서만 라팔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라 새로운 주문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1·2차로 나눠 추진하는 120대의 FX 물량은 다소에겐 상당한 ‘파이’가 아닐 수 없다. FX 사업을 연기하면 다소측은 생존 차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그리스와 노르웨이·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먼저 FX 사업을 추진한 나라들이 모두 FX 사업을 연기했다. 좋은 전투기를 좀더 값싸게 구입하는 방법의 하나는 여러 나라가 선택한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이 FX 사업을 재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세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듯 군사 전문가들은 FX 사업 연기를 주장하지만, 공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 강행을 외치고 있다. 공군은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FX 사업을 추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장거리 방공미사일은 오발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수명 연한이 지난 ‘고물’이다. 따라서 차기 방공미사일(SAMX) 사업은 FX 사업보다 훨씬 다급히 추진해야 할 형편인데도 공군은 SAMX 사업을 미룬 채 F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군이 FX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공군은 장성의 95%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구성된 아주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공군 수뇌부는 FX 사업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한다.
FX 사업을 추진해 온 공군은 대형공격헬기(AHX) 사업을 들고 나온 육군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어야 했다. 국방부와 합참의 구성원은 대부분 육군이다. 따라서 육군 사업은 해·공군 사업보다 수월히 채택되는 경향이 있다. 공군은 이러한 성향을 가진 국방부와 합참을 상대로 집요한 설득전을 벌여, AHX 사업보다 FX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 AHX 사업이 아직은 화급하지 않다는 것도 FX 사업이 우선권을 획득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자군의 SAMX와 육군의 AHX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우선권을 획득한 것이 FX 사업이다. 공군은 이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군 앞에 환율 상승에 따른 사업비 증가, 유력 3개사의 목표가 이상 가격 제시라는 ‘암초’가 나타났다. 공군이 FX 사업을 연기한다면 어렵게 마련한 FX 예산은 타군 사업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 번 죽은 사업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때문에 공군은 ‘못 먹어도 고’를 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잉은 다급한 내부 사정 때문에 FX 사업 조기 집행을 희망하게 되었다. 공군과 보잉이 FX 사업 강행에 찬성하는 모양새를 만들자, 일각에서는 “공군 수뇌부가 보잉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을 내놓게 되었다. 가격이 비싸고 기술 이전에도 인색한데, 공군은 한미동맹을 이유로 보잉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산 것이다. 이처럼 의구심이 팽배한 가운데 김장관의 발언이 나왔고, 기종 선정 평가작업시 최하 점수를 60점으로 하라고 지시한 공문까지 발견된 것.
과거 KFP 사업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FX 사업도 ‘파행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FX 사업을 건전하게 추진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주요 방위력 증강 사업의 우선 순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며 FX 사업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국방부와 공군은 FX용으로 확보한 예산을 SAMX로 옮긴다. SAMX 사업비는 FX 사업비의 절반 정도이므로 환율 인상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 △남는 예산은 KF-16 추가 생산에 투입한다. 현재 공군이 160대의 F-16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140대 정도의 F-16을 추가 도입해야 한다. KF-16은 국내에 조립공장이 건설돼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폭기 분야를 먼저 채운 후 FX 사업으로 제공기를 채우자는 것이다. △미국에 F-15 생산라인 문제가 정리되고 환율이 안정된 다음, 공정한 원칙하에 FX 사업을 재추진한다. 이때의 FX 사업 물량은 60∼100대로 늘려 잡아야 한다. △기종이 선정된 국가로부터는 첨단기술을 이전받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시제기를 개발해 놓은 T-50 고등훈련기를 전투기로 개량하는 사업을 펼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15년쯤 한국은 지금의 F-5보다 성능이 좋은 국산 전투기를 독자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택을 유관 기관이 받아들인다면, 한국은 내분 없이 이른 시간 내에 공군력을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선택을 한다면 1990년대 KFP 사업 때와 같은 혼란에 휘말릴 것이다”고 지적한다. 한국 공군은 과연 FX 사업을 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계획대로라면 오는 4월중으로 FX 기종이 결정된다. 공군에게는 결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3월2일 언론은 국방부가 2월15일 ‘각 기종의 평가항목별 최하 점수를 0점이 아닌 60점으로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FX 사업 평가작업 기관에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이러한 국방부 지시는 F-15K를 제시한 미국의 보잉사를 유리하게 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도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큰 파문을 일으켰다.
도대체 FX 사업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 것인가. 지난 5년간 끌어왔음에도 이 사업은 왜 제대로 이륙조차 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FX 사업은 IMF 사태 이전부터 추진되었다. 애당초 공군이 예상한 사업비는 40억 달러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1080원대였으므로 40억 달러는 4조3000억원 정도. 그러나 IMF 위기를 겪고 난 지금의 환율은 1330원대다. 이 환율로 계산하면 40억 달러가 IMF 이전보다 1조200억원이 증가한 5조3200억원이 된다. 이처럼 환율 인상으로 가격 부담이 커졌으므로 FX 기종 선정에는 가격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난 2월4일 국방부에서는 FX 기종 결정을 위한 최종 가격협상(입찰)이 벌어졌다. 국방부가 사전에 “이 협상은 ‘마지막’ 협상”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러시아의 수호이-35를 제외한 유력 3개 기종은 모두 40억 달러 이상을 제시했다.
3개사는 정확한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 주변에서는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한 것은 프랑스의 라팔로 41억7000만 달러이며, 미국의 F-15K는 45억5000만 달러, 유러파이터 타이푼은 가장 높은 46억 달러 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수호이-35는 30억 달러 미만을 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격 산정 방식은 서방 국가와 다르다. 지난 2월 말 퇴임 직전 이억수 공군 총장은 수호이-35는 작전 호환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여기서 수호이-35는 논외로 한다).
국방부와 공군은 유력 3개사가 40억 달러 이상을 써낸 데 대해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국방부와 공군은 라팔과 타이푼이 이제 막 개발된 기종이라 비쌀 것으로 예상했고, F-15K는 오래 전에 개발돼 미국·일본·이스라엘·사우디 등에 공급된 ‘본전을 뽑은’ 전투기라 쌀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F-15K는 라팔보다 3억7000만 달러(한화 약 4921억원)나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 3억7000만 달러는 애초 국방부가 설정한 목표액(40억 달러)의 9.25%에 이르는 ‘거액’이다.
3개 기종 모두 목표액을 넘어서자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은 “어느 기종도 목표액에 들어오지 못했다”며 FX 사업 연기 의사를 내비쳤다. 그런데 바로 직후 김동신 국방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FX 사업은 다른 데서 예산을 끌어와서라도 반드시 실행한다. FX 기종을 결정할 때는 성능보다 한미군사동맹 상황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당연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장관 발언은 F-15K를 선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김장관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안보를 책임진 국방장관으로서는 한미군사동맹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국군과 주한 미군은 한미연합사라는 단일 사령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전시 경우). 덕분에 한국군은 미군 수준의 군사첩보를 얻고 있다. 주한미군 덕분에 구축된 전쟁 억제력도 상당하다. 이러한 무형의 혜택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수십억 달러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미동맹이 한국 방어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다소사조차 ‘라팔은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는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잉사가 한미동맹을 이용해 F-15K를 팔려고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인가, 아니면 엄정한 심사 결과에 따를 것인가. 지금 국방부는 양자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려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세계 공군의 교과서’는 미국 공군이다. 미국 공군은 제공기와 전폭기(다목적기)를 3.5대 6.5의 비율로 구성한다. 미국 공군은 오랜 실전 경험을 통해 이런 비율로 전투기를 편성할 때, 최소 비용으로 최대 전투력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 미국 공군은 제공기로 F-15를, 전폭기로 F-16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공군은 제공기와 전폭기를 동시에 교체하는 미국판 FX 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록히드마틴과 보잉 등 내로라 하는 회사들이 도전했다. 그 결과 제공기 분야에서는 F-22, 전폭기 분야에서는 JSF가 선정됐다. 두 기종 모두 록히드마틴의 것. 보잉은 미국판 FX 사업에서 완패한 것이다.
한국 공군도 미국 공군을 본받아 제공기와 전폭기를 3.5대 6.5의 비율로 구성하려고 한다. 평상시 한국 공군이 보유해야 하는 적정 전투기는 550대 정도다. 따라서 이 비율대로 한다면 제공기는 200여대, 전폭기는 350여대가 돼야 한다. 현재 한국 공군은 제공기다운 제공기가 없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기 위해 FX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제공기는 값이 비싸 한국 공군은 200여대를 도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입 목표를 120대로 낮추었는데, 120대도 한꺼번에 도입할 형편이 못 돼 1차로 40대를 먼저 도입하는 지금의 FX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따라서 FX 사업이 끝난 후인 2010년쯤 한국 공군은 다시 80여대의 제공기를 도입하는 2차 FX 사업을 벌여야 한다. 1차 FX 사업과 2차 FX 사업에서 같은 기종을 선택해야만 한국 공군은 운영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이 1차 FX 사업에서 F-15K를 선정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과연 보잉이 2010년쯤에도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판 FX 사업이 결정된 만큼 미국 공군은 기존 F-15는 수명이 다하는 2030년까지 운용하고, 추가로 이 전투기를 구매하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고객인 미 공군으로부터 주문이 사라졌는데, ‘조그만 고객’인 한국을 위해 보잉이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인가.
이러한 우려에 대해 보잉의 릴리스 이사는 “현재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F-15 추가 구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F-15K를 구입해 준다면 두 나라가 F-15를 추가 구입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국이 F-15를 선정하고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추가 구매한다면, 2010년대에도 보잉은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F-15를 추가 구입하지 않아도 2010년까지 F-15 생산라인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이런 우려 때문에 국방 전문가들은 ‘FX 사업 연장론’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들이 FX 사업 연장론을 펼치는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2∼3년 정도 FX 사업을 연기시키면 그 사이 보잉은 시장논리에 따라 스스로 F-15 생산라인 존폐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이다. 보잉이 결정을 내린 후 FX 사업을 추진한다면, 한국은 한미동맹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1·2차 FX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환율이 높은 지금 목표액보다 높은 가격으로 FX 사업을 추진한다면 국방비 부담이 너무 커진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회복되고 환율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추진하는 것이 좀더 현명하다.
셋째, 유러파이터 타이푼은 아직 공대지(空對地) 기능이 개발되지 않았다. 타이푼의 공대지 기능이 개발된 후 FX 사업을 펼치면, 라팔과 타이푼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한국은 상당한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
넷째, 프랑스의 다소사는 프랑스 해·공군에게서만 라팔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라 새로운 주문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1·2차로 나눠 추진하는 120대의 FX 물량은 다소에겐 상당한 ‘파이’가 아닐 수 없다. FX 사업을 연기하면 다소측은 생존 차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그리스와 노르웨이·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먼저 FX 사업을 추진한 나라들이 모두 FX 사업을 연기했다. 좋은 전투기를 좀더 값싸게 구입하는 방법의 하나는 여러 나라가 선택한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이 FX 사업을 재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세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듯 군사 전문가들은 FX 사업 연기를 주장하지만, 공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 강행을 외치고 있다. 공군은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FX 사업을 추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장거리 방공미사일은 오발 사고를 일으킬 정도로 수명 연한이 지난 ‘고물’이다. 따라서 차기 방공미사일(SAMX) 사업은 FX 사업보다 훨씬 다급히 추진해야 할 형편인데도 공군은 SAMX 사업을 미룬 채 F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군이 FX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공군은 장성의 95%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구성된 아주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공군 수뇌부는 FX 사업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한다.
FX 사업을 추진해 온 공군은 대형공격헬기(AHX) 사업을 들고 나온 육군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어야 했다. 국방부와 합참의 구성원은 대부분 육군이다. 따라서 육군 사업은 해·공군 사업보다 수월히 채택되는 경향이 있다. 공군은 이러한 성향을 가진 국방부와 합참을 상대로 집요한 설득전을 벌여, AHX 사업보다 FX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 AHX 사업이 아직은 화급하지 않다는 것도 FX 사업이 우선권을 획득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자군의 SAMX와 육군의 AHX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우선권을 획득한 것이 FX 사업이다. 공군은 이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군 앞에 환율 상승에 따른 사업비 증가, 유력 3개사의 목표가 이상 가격 제시라는 ‘암초’가 나타났다. 공군이 FX 사업을 연기한다면 어렵게 마련한 FX 예산은 타군 사업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 번 죽은 사업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때문에 공군은 ‘못 먹어도 고’를 외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잉은 다급한 내부 사정 때문에 FX 사업 조기 집행을 희망하게 되었다. 공군과 보잉이 FX 사업 강행에 찬성하는 모양새를 만들자, 일각에서는 “공군 수뇌부가 보잉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을 내놓게 되었다. 가격이 비싸고 기술 이전에도 인색한데, 공군은 한미동맹을 이유로 보잉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산 것이다. 이처럼 의구심이 팽배한 가운데 김장관의 발언이 나왔고, 기종 선정 평가작업시 최하 점수를 60점으로 하라고 지시한 공문까지 발견된 것.
과거 KFP 사업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FX 사업도 ‘파행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FX 사업을 건전하게 추진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주요 방위력 증강 사업의 우선 순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며 FX 사업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국방부와 공군은 FX용으로 확보한 예산을 SAMX로 옮긴다. SAMX 사업비는 FX 사업비의 절반 정도이므로 환율 인상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 △남는 예산은 KF-16 추가 생산에 투입한다. 현재 공군이 160대의 F-16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140대 정도의 F-16을 추가 도입해야 한다. KF-16은 국내에 조립공장이 건설돼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폭기 분야를 먼저 채운 후 FX 사업으로 제공기를 채우자는 것이다. △미국에 F-15 생산라인 문제가 정리되고 환율이 안정된 다음, 공정한 원칙하에 FX 사업을 재추진한다. 이때의 FX 사업 물량은 60∼100대로 늘려 잡아야 한다. △기종이 선정된 국가로부터는 첨단기술을 이전받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시제기를 개발해 놓은 T-50 고등훈련기를 전투기로 개량하는 사업을 펼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15년쯤 한국은 지금의 F-5보다 성능이 좋은 국산 전투기를 독자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택을 유관 기관이 받아들인다면, 한국은 내분 없이 이른 시간 내에 공군력을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선택을 한다면 1990년대 KFP 사업 때와 같은 혼란에 휘말릴 것이다”고 지적한다. 한국 공군은 과연 FX 사업을 연기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계획대로라면 오는 4월중으로 FX 기종이 결정된다. 공군에게는 결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