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파 “편파적 주장” 반박
지난 1월29일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재단에서 열린 ‘누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나?’라는 세미나에서는 또 한 명의 유력한 셰익스피어 후보자가 나타났다. 제17대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 비어(1550~1604)가 그 주인공이다.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세미나의 내용은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① 옥스퍼드 백작의 초상화. 그가 25세 때 그려진 것이다.<br>② 세익스피어의 초상화.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가 죽은 후인 1623년에 그려졌다. 세익스피어 생전에 그려진 오리지널 작품을 모사했거나 화가의 상상력이 덧대진 그림으로 보인다.<br>③ 한때 세익스피어의 초상화 원본으로 알려졌던 그림. 그러나 모델의 옷 모양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초상의 진짜 모델은 옥스퍼드 백작이라는 것이 옥스퍼드 파의 주장이다.
1660년대에 쓰인 셰익스피어에 대한 초기 기록을 보면 셰익스피어는 매년 1000파운드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이 금액은 옥스퍼드 백작이 왕실로부터 받은 금액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극장에 투자하는 투자자였고, 옥스퍼드 백작이 그의 이름을 빌려 희곡을 발표했다는 것이 옥스퍼드파의 주장이다.
사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진위 논쟁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5년 제임스 윌못이라는 목사는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쓰인 원고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의문을 품었다. 1920년대에 토머스 소니는 이 문제를 찬찬히 훑어보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딱 들어맞는 사람이 옥스퍼드 백작임을 간파했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가톨릭을 선호하는 귀족적 성향, 여성에 대한 기묘한 애증,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음악과 스포츠를 좋아하는 점 등 셰익스피어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성향은 모두 옥스퍼드 백작의 취향과 동일하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등장인물을 자주 정신분석에 동원했던 지그문트 프로이드 역시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그 작품과 공통점이 거의 없는 반면, 옥스퍼드 백작은 모든 점에서 일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기존 셰익스피어파의 입장도 만만치 않다. ‘셰익스피어, 그는 누구인가?’를 쓴 리처드 워런은 스미스소니언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옥스퍼드파의 주장은 모두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옥스퍼드 백작이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썼다면, 초판본에 옥스퍼드 백작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일 패스터 박사 역시 “신분이 미천하고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희곡의 저자일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치게 편파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