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난(蘭) 그림은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나를 문인화가로 불러준다면 기쁘겠지요.” 12월11일부터 열리고 있는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전을 보러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 들어서자 뜻밖에 한구석에 앉아 있는 김지하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상황이 좀 쑥스러운 듯했다.
전시장에는 김지하의 ‘난’ 그림 7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20년 동안 그린 ‘난’ 그림 수천점 중 고른 작품들이다. 대부분 작은 크기의 그림들은 날렵하고도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긴 난초잎이 바람에 날리는 표연란(飄然蘭)과 엉성하게 빈 듯한 소산란(疎散蘭)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거나 ‘기우뚱한 균형’ 등 그림에 써넣은 글귀들도 돋보였다.
김지하가 난을 그린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반, 6년간의 옥중생활을 접고 원주로 귀향했을 때부터 그는 난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김지하의 난초 그림을 가리켜 ‘화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흉중(胸中)의 난을 표현한 것이다’고 평하기도 했다.
“시(詩)는 어렵지만 난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난에 천착한 이유를 설명한 김지하는 “앞으로는 과거에 그리다 만 달마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달마를 그리려면 빠른 손놀림이 필요한데 난을 그리면서 손이 풀렸다고 한다. 그에게 난은 친구일 뿐만 아니라 앞날에 대한 희망인 듯도 싶었다(12월26일까지, 문의: 02-739-4937).
전시장에는 김지하의 ‘난’ 그림 7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20년 동안 그린 ‘난’ 그림 수천점 중 고른 작품들이다. 대부분 작은 크기의 그림들은 날렵하고도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긴 난초잎이 바람에 날리는 표연란(飄然蘭)과 엉성하게 빈 듯한 소산란(疎散蘭)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거나 ‘기우뚱한 균형’ 등 그림에 써넣은 글귀들도 돋보였다.
김지하가 난을 그린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반, 6년간의 옥중생활을 접고 원주로 귀향했을 때부터 그는 난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김지하의 난초 그림을 가리켜 ‘화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흉중(胸中)의 난을 표현한 것이다’고 평하기도 했다.
“시(詩)는 어렵지만 난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난에 천착한 이유를 설명한 김지하는 “앞으로는 과거에 그리다 만 달마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달마를 그리려면 빠른 손놀림이 필요한데 난을 그리면서 손이 풀렸다고 한다. 그에게 난은 친구일 뿐만 아니라 앞날에 대한 희망인 듯도 싶었다(12월26일까지, 문의: 02-739-4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