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테러가 뉴욕을 휩쓸고 간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흘렀다. 뉴욕은 겉보기에 평온을 되찾은 듯하다. 그러나 테러가 미친 심리적 타격은 여전히 뉴요커들의 발목을 끈끈하게 휘감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테러가 뉴욕의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까지 바꾸어놓았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즉 남자는 테러 현장을 누비는 근육질의 소방관 이미지가, 여자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어머니 스타일이 뉴욕의 새로운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9·11 테러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상적인 뉴요커의 모습은 ‘닷컴맨’이었다. 세련된 캐주얼을 입고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정보기술(IT)업종 종사자나 월 스트리트의 재무 전문가들이 가장 근사한 뉴요커로 손꼽혔다. 또 90년대의 멋진 남성상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이 도시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유약한 이미지를 풍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 뉴요커의 이상형 자리에는 영화배우나 닷컴맨이 사라지고 온몸에 재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과 눈물로 범벅된 소방관들이 들어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던 페기 누난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소방관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은 50kg이 넘는 쇳덩이를 들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라고 소리 지르던 사람들.’
“소방관들의 몸을 돌보지 않는 희생정신이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동안 잊혀 왔던 미국 남성의 이미지, 크고 용기 있는 남성을 다시금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 전문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장 데이비드 그랜저는 “2차 대전 직후 유행했던 남성다운 남성의 인기가 되돌아왔다”고 최근의 경향을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선호도는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선언한 직후 절정을 이루며 대학생들의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뉴스위크’의 분석에 따르면 졸업 후 월 스트리트 진출을 꿈꾼 대학생들은 주식시장 대신 FBI나 CIA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또 대학 내에서 찬밥 신세였던 학군단(ROTC) 지원자도 크게 늘고 있다는 것.
테러가 남성상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 최근 뉴욕의 패션 브랜드들은 겨울 의상 카탈로그를 새로 제작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섹시하고 적극적인 뉴욕 여성들의 이미지도 테러사태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뉴욕에서 패션 리더로 손꼽힌 사람은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순수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갖춘 스피어스의 이미지는 뉴욕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등지에 파견된 여성 종군 기자들이 새로운 패션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TV 화면에 비치는 이들의 차림새는 평범해 보이는 카디건 스웨터와 셔츠, 그리고 면바지에 작은 귀고리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런 차림새는 전쟁터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오히려 ‘쿨’(cool)한 인상을 풍긴다. 스피어스의 몸에 착 달라붙는 배꼽티가 전쟁터 분위기에 가당키나 한가.
그렇다면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을 나타내는 ‘밀리터리 룩’이 유행하지 않을까? 뉴욕의 패션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고층빌딩과 비행기가 테러의 표적이 되고 생화학 테러라는 무형의 공포가 거리를 휩쓰는 뉴욕에서 가장 각광받는 패션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패션’이다. 여성복 디자이너 조시 패트너는 “여성들은 섹시하기보다 빈틈없는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며 섹시한 의상이 퇴조하고 그 자리를 보수적인 정장 차림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의 직장여성들이 즐겨 찾는 맨해튼의 패션체인 ‘스쿠프’에서는 테러 이후 검은색 정장과 원피스가 부쩍 많이 팔리고 있다.
어두운 색 정장과 함께 편안해 보이는 옷차림도 인기를 얻는 추세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홈웨어 같은 분위기의 편안한 옷과 굽 낮은 구두가 유행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맨해튼의 빌딩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사무실에 운동화 한 켤레씩 준비해 두는 것이 유행이다. 9·11 테러와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백화점 점원이 손님에게 하이힐을 권하면 “그렇게 불안해 뵈는 구두는 싫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섹시하고 적극적인 이미지의 패션이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바뀌면서 엉뚱한 인물이 뉴욕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바로 항상 수수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퍼스트레이디 로라 부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촌스런 텍사스 아줌마’라는 눈총을 받던 부시 여사의 차림새는 위기 상황에서 단연 돋보인다는 평. 부시 여사가 즐겨 입는 넉넉한 옷차림은 내년 봄 패션경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적인 남녀상까지 바꾸어놓은 9·11 테러사태의 영향에 대해 뉴욕에 거주하는 한 작가는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만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비로소 보통 사람들에게 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평범함을 갈구하는 뉴요커들은 비록 친지를 잃지 않았더라도 테러를 통해 무형의 상처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입은 심리적 상처는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가 말끔히 치워진 후에도 오래도록 남을 듯싶다.
9·11 테러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상적인 뉴요커의 모습은 ‘닷컴맨’이었다. 세련된 캐주얼을 입고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정보기술(IT)업종 종사자나 월 스트리트의 재무 전문가들이 가장 근사한 뉴요커로 손꼽혔다. 또 90년대의 멋진 남성상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같이 도시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유약한 이미지를 풍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 뉴요커의 이상형 자리에는 영화배우나 닷컴맨이 사라지고 온몸에 재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과 눈물로 범벅된 소방관들이 들어섰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던 페기 누난은 ‘월 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소방관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은 50kg이 넘는 쇳덩이를 들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라고 소리 지르던 사람들.’
“소방관들의 몸을 돌보지 않는 희생정신이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동안 잊혀 왔던 미국 남성의 이미지, 크고 용기 있는 남성을 다시금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 전문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장 데이비드 그랜저는 “2차 대전 직후 유행했던 남성다운 남성의 인기가 되돌아왔다”고 최근의 경향을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선호도는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선언한 직후 절정을 이루며 대학생들의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뉴스위크’의 분석에 따르면 졸업 후 월 스트리트 진출을 꿈꾼 대학생들은 주식시장 대신 FBI나 CIA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또 대학 내에서 찬밥 신세였던 학군단(ROTC) 지원자도 크게 늘고 있다는 것.
테러가 남성상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 최근 뉴욕의 패션 브랜드들은 겨울 의상 카탈로그를 새로 제작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섹시하고 적극적인 뉴욕 여성들의 이미지도 테러사태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뉴욕에서 패션 리더로 손꼽힌 사람은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순수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갖춘 스피어스의 이미지는 뉴욕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등지에 파견된 여성 종군 기자들이 새로운 패션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TV 화면에 비치는 이들의 차림새는 평범해 보이는 카디건 스웨터와 셔츠, 그리고 면바지에 작은 귀고리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런 차림새는 전쟁터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오히려 ‘쿨’(cool)한 인상을 풍긴다. 스피어스의 몸에 착 달라붙는 배꼽티가 전쟁터 분위기에 가당키나 한가.
그렇다면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을 나타내는 ‘밀리터리 룩’이 유행하지 않을까? 뉴욕의 패션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고층빌딩과 비행기가 테러의 표적이 되고 생화학 테러라는 무형의 공포가 거리를 휩쓰는 뉴욕에서 가장 각광받는 패션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패션’이다. 여성복 디자이너 조시 패트너는 “여성들은 섹시하기보다 빈틈없는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며 섹시한 의상이 퇴조하고 그 자리를 보수적인 정장 차림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의 직장여성들이 즐겨 찾는 맨해튼의 패션체인 ‘스쿠프’에서는 테러 이후 검은색 정장과 원피스가 부쩍 많이 팔리고 있다.
어두운 색 정장과 함께 편안해 보이는 옷차림도 인기를 얻는 추세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홈웨어 같은 분위기의 편안한 옷과 굽 낮은 구두가 유행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맨해튼의 빌딩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사무실에 운동화 한 켤레씩 준비해 두는 것이 유행이다. 9·11 테러와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백화점 점원이 손님에게 하이힐을 권하면 “그렇게 불안해 뵈는 구두는 싫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섹시하고 적극적인 이미지의 패션이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바뀌면서 엉뚱한 인물이 뉴욕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바로 항상 수수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퍼스트레이디 로라 부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촌스런 텍사스 아줌마’라는 눈총을 받던 부시 여사의 차림새는 위기 상황에서 단연 돋보인다는 평. 부시 여사가 즐겨 입는 넉넉한 옷차림은 내년 봄 패션경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적인 남녀상까지 바꾸어놓은 9·11 테러사태의 영향에 대해 뉴욕에 거주하는 한 작가는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만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비로소 보통 사람들에게 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평범함을 갈구하는 뉴요커들은 비록 친지를 잃지 않았더라도 테러를 통해 무형의 상처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입은 심리적 상처는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가 말끔히 치워진 후에도 오래도록 남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