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나가나, 안 나가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외국 행보’를 두고 하는 얘기다. 지난 봄 한나라당에서는 3, 4월쯤 이총재가 미국·일본을 방문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이 계획은 슬그머니 ‘없는 일’이 되었다. 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른 5월에는 7, 8월쯤의 4강 순방계획이 잡혔다. 그러나 7월28일 현재 이와 관련한 이총재의 스케줄은 전혀 잡혀 있지 않다.
8~9월에도 이총재의 외국 방문 가능성은 불가능해 보인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언론세무조사 등 정치쟁점에 재·보궐선거, 국정감사, 예산안 심의 등이 잇달아 정국은 숨가쁘게 돌아갈 것임이 틀림없다. 야당 사령탑으로서 자리를 비우기는 힘들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총재는 이렇다 할 외국행보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선을 맞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총재는 7월28일 ‘디지털 이코노미’라는 책을 챙겨 6일 일정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97년 정계입문 뒤 두 차례만 출국
정치권에선 ‘지금까지 이총재가 외국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외국에 저명한 지인이 많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 외국 방문에 열심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서 ‘이총재는 국내용 정치인’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던진다. 이총재가 외국에 자주 못 나갔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실전 외교력’은 몇 점쯤 될까.
이총재가 한 번도 외국 방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총재는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된 이후 99년 9월 9박10일 간 일정으로 미국과 독일을 방문했다. 신한국당 시절인 지난 97년 5월의 중국 방문을 합치면 97년 정계 입문 뒤 그는 두 차례 외국을 방문한 셈이다. 이러한 외유 횟수는 일반 평의원보다 적은 것이다.
흔히 이총재의 라이벌로 거론되는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만 해도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원 과정(98년 10월~99년 4월),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방문(99년 4월 20일 간), 미국 방문(2000년 5월), 일본 모리 전 수상-고이즈미 수상 면담(2000년 10월),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 참석(2001년 1월), 중국 후진타오 부주석 면담(2001년 2월), 인도 IT 산업 시찰(2001년 3월), 러시아 방문(2001년 5월) 등 크고 작은 외유가 적지 않았다.
이총재의 외유가 거의 없다시피 한 첫째 이유로 야당 총재라는 외교의전상의 약간은 ‘애매모호한’ 직위 때문에 일정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꼽는사람이 많다. 한나라당 고세진 국제국장은 “중진급 의원의 외국 방문은 보름 만에 추진할 때도 있지만, 총재의 경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총리라면 상대국 총리 이상급을 만나면 되고, 장관이면 장관을 만나면 되는데 이총재는 제1야당 총재여서 격에 맞는 파트너 찾기가 좀 어렵지 않겠느냐”고 본다. “이총재의 바깥 나들이가 다분히 형식논리에 매달리다 보니 자꾸 실기(失期)한다”는 비판론도 있다.
이총재 측근 인사들은 “국내 정치일정이 가장 큰 원인이다”고 설명한다. 97년 말 대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정치활동을 중단한 이총재는 98년 4월 한나라당 명예총재로 불안하게 복귀했다. 그 후 98년 9월 총재 당선, 공천 파동과 총선 승리, 2000년 6월 총재 재선을 거쳐 2001년 중반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난관을 거쳤다. 대선에서 낙선한 경력 5년의 정치인으로서, 제 1야당의 당권을 장악하기까지 외유 한 번 못할 정도로 험난한 관문들을 통과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총재 외유 행보의 빈곤을 최근 극렬한 여야 대립구도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올해 초 이총재는 몇 군데 외국 방문 계획을 잡았지만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 안기부 자금사건, 언론세무조사 등 대형 사건들이 터지면서 물리적 시간에 쫓겨 ‘포지티브’ 전략에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총재는 국내에 머물면서 외교력을 기르는 대안을 마련해 왔다는 것이 총재실의 설명. ‘대사순례외교’가 대표적 사례다. 이총재는 6, 7월 들어 서울 주재 미국·러시아·일본·독일·호주·이탈리아 대사와 잇달아 만났다. 부부동반이나 오찬·만찬 형식이 많아 서울 외교가를 중심으로 한 인맥쌓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면담한 것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선 “이총재가 국제감각을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비꼬았지만, 한나라당은 “이총재의 외교력을 보여준 사례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국제국에 따르면 올해 중반 이후 서울을 찾은 외국 VIP들이 이총재와 면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총재가 지난 2월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메인 스트림론’을 거론하고 3월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총재가 외국 매스컴을 이용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총재는 미·일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공고히 한 바탕 위에서 중·러·EU 등 외교적 다변화를 꾀하고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이른바 ‘한승주(전 외무장관)식’ 외교철학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울 외교가에선 이총재가 집권할 경우 지난 1980년대 초반 더없이 금슬 좋았던 레이건-나카소네-전두환 ‘우파 동맹’에 버금가는 부시-고이즈미-이회창 연합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총재 측근은 “이총재 주변에 포진한 외교 ‘인재풀’이 현재로선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대선주자들을 압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정된 외교력은 외국방문 횟수가 아니라 정세 판단력에서 나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외국 방문 없이 외국 주요 인사들과의 인맥쌓기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총재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 클린턴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결국 불발로 그쳤고, 그 다음부터 한나라당 외교통들은 이총재의 외국 방문 계획 단계에서부터 ‘대통령급’과의 면담 일정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총재의 외유 빈곤은 한나라당의 ‘외교력 부재’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수년 간은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여서 차기 정권이 어떠한 외교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인터넷 정치사이트 아이워치코리아(www.iwatchkorea.com)의 김세현 대표이사는 “북한 및 주변 4강과의 관계문제는 내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야당 총재의 외국방문 횟수까지 따져본다는 것이다.
8~9월에도 이총재의 외국 방문 가능성은 불가능해 보인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언론세무조사 등 정치쟁점에 재·보궐선거, 국정감사, 예산안 심의 등이 잇달아 정국은 숨가쁘게 돌아갈 것임이 틀림없다. 야당 사령탑으로서 자리를 비우기는 힘들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총재는 이렇다 할 외국행보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선을 맞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총재는 7월28일 ‘디지털 이코노미’라는 책을 챙겨 6일 일정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97년 정계입문 뒤 두 차례만 출국
정치권에선 ‘지금까지 이총재가 외국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외국에 저명한 지인이 많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 외국 방문에 열심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서 ‘이총재는 국내용 정치인’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던진다. 이총재가 외국에 자주 못 나갔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의 ‘실전 외교력’은 몇 점쯤 될까.
이총재가 한 번도 외국 방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총재는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된 이후 99년 9월 9박10일 간 일정으로 미국과 독일을 방문했다. 신한국당 시절인 지난 97년 5월의 중국 방문을 합치면 97년 정계 입문 뒤 그는 두 차례 외국을 방문한 셈이다. 이러한 외유 횟수는 일반 평의원보다 적은 것이다.
흔히 이총재의 라이벌로 거론되는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만 해도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원 과정(98년 10월~99년 4월),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방문(99년 4월 20일 간), 미국 방문(2000년 5월), 일본 모리 전 수상-고이즈미 수상 면담(2000년 10월),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 참석(2001년 1월), 중국 후진타오 부주석 면담(2001년 2월), 인도 IT 산업 시찰(2001년 3월), 러시아 방문(2001년 5월) 등 크고 작은 외유가 적지 않았다.
이총재의 외유가 거의 없다시피 한 첫째 이유로 야당 총재라는 외교의전상의 약간은 ‘애매모호한’ 직위 때문에 일정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꼽는사람이 많다. 한나라당 고세진 국제국장은 “중진급 의원의 외국 방문은 보름 만에 추진할 때도 있지만, 총재의 경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총리라면 상대국 총리 이상급을 만나면 되고, 장관이면 장관을 만나면 되는데 이총재는 제1야당 총재여서 격에 맞는 파트너 찾기가 좀 어렵지 않겠느냐”고 본다. “이총재의 바깥 나들이가 다분히 형식논리에 매달리다 보니 자꾸 실기(失期)한다”는 비판론도 있다.
이총재 측근 인사들은 “국내 정치일정이 가장 큰 원인이다”고 설명한다. 97년 말 대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정치활동을 중단한 이총재는 98년 4월 한나라당 명예총재로 불안하게 복귀했다. 그 후 98년 9월 총재 당선, 공천 파동과 총선 승리, 2000년 6월 총재 재선을 거쳐 2001년 중반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난관을 거쳤다. 대선에서 낙선한 경력 5년의 정치인으로서, 제 1야당의 당권을 장악하기까지 외유 한 번 못할 정도로 험난한 관문들을 통과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총재 외유 행보의 빈곤을 최근 극렬한 여야 대립구도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올해 초 이총재는 몇 군데 외국 방문 계획을 잡았지만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 안기부 자금사건, 언론세무조사 등 대형 사건들이 터지면서 물리적 시간에 쫓겨 ‘포지티브’ 전략에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총재는 국내에 머물면서 외교력을 기르는 대안을 마련해 왔다는 것이 총재실의 설명. ‘대사순례외교’가 대표적 사례다. 이총재는 6, 7월 들어 서울 주재 미국·러시아·일본·독일·호주·이탈리아 대사와 잇달아 만났다. 부부동반이나 오찬·만찬 형식이 많아 서울 외교가를 중심으로 한 인맥쌓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면담한 것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선 “이총재가 국제감각을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비꼬았지만, 한나라당은 “이총재의 외교력을 보여준 사례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국제국에 따르면 올해 중반 이후 서울을 찾은 외국 VIP들이 이총재와 면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총재가 지난 2월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메인 스트림론’을 거론하고 3월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총재가 외국 매스컴을 이용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총재는 미·일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공고히 한 바탕 위에서 중·러·EU 등 외교적 다변화를 꾀하고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이른바 ‘한승주(전 외무장관)식’ 외교철학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울 외교가에선 이총재가 집권할 경우 지난 1980년대 초반 더없이 금슬 좋았던 레이건-나카소네-전두환 ‘우파 동맹’에 버금가는 부시-고이즈미-이회창 연합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총재 측근은 “이총재 주변에 포진한 외교 ‘인재풀’이 현재로선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른 대선주자들을 압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정된 외교력은 외국방문 횟수가 아니라 정세 판단력에서 나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외국 방문 없이 외국 주요 인사들과의 인맥쌓기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총재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 클린턴을 만나기를 희망했지만 결국 불발로 그쳤고, 그 다음부터 한나라당 외교통들은 이총재의 외국 방문 계획 단계에서부터 ‘대통령급’과의 면담 일정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총재의 외유 빈곤은 한나라당의 ‘외교력 부재’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수년 간은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여서 차기 정권이 어떠한 외교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인터넷 정치사이트 아이워치코리아(www.iwatchkorea.com)의 김세현 대표이사는 “북한 및 주변 4강과의 관계문제는 내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야당 총재의 외국방문 횟수까지 따져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