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학교의 건강상태는 어떠한 ‘규제’로도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어찌 보면 ‘규제’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공립학교가 개혁과 쇄신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지만, 사실 그 역사는 온갖 실효성 없는 규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얽힌 그물 속에서 허덕일 뿐이었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불러왔으며, 개혁은 이전에 실패한 개혁들을 뒤쫓고 있었다”(루이스 거스너 외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 중에서).
우리 나라 교육개혁 토론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미국 공교육의 자기 반성이다(여기서 공교육은 사립과 대립하는 의미의 공립학교 교육을 뜻한다). 미국은 이런 뼈저린 반성을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교사에게 학교 선택의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공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한국 교육의 현실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립이라는 탈출구마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너도나도 ‘교육이민’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는 해당 연령의 사람이 반드시 다녀야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학생이 31.2%나 되었다. 99년 한국교육개발원이 1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교육만족도 조사에서 ‘자녀가 학교 다니는 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보내지 않겠다’고 응답한 부모가 44%나 되어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교육의 위기, 특히 제도교육의 중심인 학교의 위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막상 내놓는 처방은 각각 방향을 달리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학교붕괴’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의 시각 차에서 비롯한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팀이 내놓은 ‘학교교육 위기의 실태와 원인 분석’을 보면 현재 ‘학교붕괴’는 3가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첫째, ‘학교붕괴’를 공교육의 위기로 규정하고 학교가 갖는 기능적 효용성 상실 측면에 초점을 맞추며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둘째,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 불능상태에 초점을 맞춰 학교붕괴를 세대 차 또는 청소년문화와 학교문화의 충돌로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 셋째, 학교붕괴의 원인을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만든 일련의 교육개혁 정책에서 찾는 논의들도 있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바라본 한국교육의 위기는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비롯한다. 세계은행 2000년도 보고서 중 ‘21세기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에 따른 한국의 인적 자원 개발’ 부분을 보면 “중앙정부가 학교 형태는 물론 학생입학,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임용, 입학금, 수업료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교육서비스에서 공·사립 간 구별이 없다. 교육체제 전반에 대한 통제가 교육을 경직시키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지적은 지난 98년 작성한 OECD 권고안에서도 되풀이 된다. “중앙정부의 임무는 교육과정의 표준과 지침, 전국적 자격인증제도, 재정지원 수준, 교육·훈련 기관의 평가기준을 규정하는 것이다. 국가적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맞춰 집행도 같이하는 국가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설립 주체에 따른 국·공립과 사립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중학교의 25%, 고등학교의 50%가 사립이다). 948개 사립고 가운데 국가의 재정보조를 받지 않는 학교는 6%(58개교) 수준이며 지원을 받은 만큼 학생 선발, 교사임용, 재정,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교육개혁의 방향은 ‘학교 유형의 다양화’와 ‘학교 선택권’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출발은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정부에 2002년 자립형사립고 도입을 권고하면서부터. 자립형사립고는 학생 선발, 교사 자격, 수업료, 교과서 사용,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정부의 지원 없이 재단 전입금과 학생 등록금만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원단체들은 ‘선택 아닌 특혜’ ‘새로운 귀족학교’의 탄생이라며 결사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자립형사립고 논쟁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들고나온 방안이 ‘이상적 학교’다. 3월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서 언급한 ‘이상적 학교’는 6월 발표한 ‘21세기정보화사회 이상적 학교’로 구체화했다. 선진국 수준의 정보화 시설 등 교육여건을 갖추고 교육과정 편성과 학생 선발, 수업일수 등의 자율권을 갖춘 21세기형 학교 모델로 당장 내년부터 전국 국·공립 초·중등학교 20곳에서 시범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이 방안 역시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립형사립고와 함께 정부 주도 교육개혁의 두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부의 교육개혁은 공립학교를 이상적 학교, 영재학교, 공립대안중학교, 일부 특수목적고로 분화하고, 사립학교는 자립형사립고, 자율학교(대안학교·특성화고교), 일부 특수목적고로 분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이런 정부 주도의 학교 다양화 논의는 또 다른 획일화를 가져온다는 우려를 낳았다. 지난 3월 경남도교육청이 특성화고교로 인정 받은 간디학교가 미인가 중학교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재정지원을 끊고 사법당국에 고발한 사건은, 정부 주도의 개혁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래서 정부가 앞장서기보다 민간 차원에서 이미 진행하는 대안학교, 홈스쿨링, 민간위탁경영 등 다양한 학교 운영 모델을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6월12일 교육개혁과 교육자치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교육민회) 주최의 심포지엄 ‘관 주도 교육 벗어나야 교육이 산다’는 민간 주도의 학교 유형 다양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학교 유형의 다양화, 이렇게 할 수 있다’를 발표한 김재웅 교수(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 교육민회 정책위장)는 “설립 주체에 의한 현행 학교 유형을 다양화하기만 해도 숨막힐 듯한 학교체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고 했다. 김교수가 제시한 학교 유형은 학교 설립 주체와 재정 부담, 운영 주체에 따라 8가지 유형으로 나뉜다(상자 기사 참조).
김교수는 경직된 관 주도 학교 체제에 변화의 물결을 일게 하려면 먼저 3, 4, 8유형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제3유형은 일종의 공립학교에 대한 민간위탁 경영방식으로, 별도의 재단이나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자율적 교사집단이 주체가 되어 학교를 만든다. 제8유형은 말 많은 자립형사립고를 인정하면서 사립자유학교, 대안학교, 홈스쿨까지도 동시에 허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는 학교의 다양화에 대해서도 역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교조에서는 “학교 교육의 정상화는 제쳐두고 새로운 학교 만들기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일부 계층에 특혜를 주는 일이며, 사립에 대한 자율성 부여가 부실사학을 양산한다”고 경고했다. 박경양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자립형사립고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 했다. “자립형사립고의 핵심은 학교 선택권 보장이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이 과연 어떤 근거로 학교를 선택할 것인가. 대다수가 해당 학교의 대학입시 성적에 좌우될 것이며 새로운 입시과열이 일어날 것이다.”
학교의 다양성 확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책임 있는 선택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고·외국어고로 대표되는 특수목적고의 실패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교육 주체(학생·학부모·교사)의 자각이 선행해야 한다.
우리 나라 교육개혁 토론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미국 공교육의 자기 반성이다(여기서 공교육은 사립과 대립하는 의미의 공립학교 교육을 뜻한다). 미국은 이런 뼈저린 반성을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교사에게 학교 선택의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공교육 개혁을 추진했다. 한국 교육의 현실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립이라는 탈출구마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너도나도 ‘교육이민’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 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는 해당 연령의 사람이 반드시 다녀야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학생이 31.2%나 되었다. 99년 한국교육개발원이 1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교육만족도 조사에서 ‘자녀가 학교 다니는 것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보내지 않겠다’고 응답한 부모가 44%나 되어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교육의 위기, 특히 제도교육의 중심인 학교의 위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막상 내놓는 처방은 각각 방향을 달리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학교붕괴’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의 시각 차에서 비롯한다.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 박사팀이 내놓은 ‘학교교육 위기의 실태와 원인 분석’을 보면 현재 ‘학교붕괴’는 3가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첫째, ‘학교붕괴’를 공교육의 위기로 규정하고 학교가 갖는 기능적 효용성 상실 측면에 초점을 맞추며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둘째,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 불능상태에 초점을 맞춰 학교붕괴를 세대 차 또는 청소년문화와 학교문화의 충돌로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 셋째, 학교붕괴의 원인을 교사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만든 일련의 교육개혁 정책에서 찾는 논의들도 있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바라본 한국교육의 위기는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비롯한다. 세계은행 2000년도 보고서 중 ‘21세기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에 따른 한국의 인적 자원 개발’ 부분을 보면 “중앙정부가 학교 형태는 물론 학생입학,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임용, 입학금, 수업료까지 규제하고 있으며, 교육서비스에서 공·사립 간 구별이 없다. 교육체제 전반에 대한 통제가 교육을 경직시키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지적은 지난 98년 작성한 OECD 권고안에서도 되풀이 된다. “중앙정부의 임무는 교육과정의 표준과 지침, 전국적 자격인증제도, 재정지원 수준, 교육·훈련 기관의 평가기준을 규정하는 것이다. 국가적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맞춰 집행도 같이하는 국가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설립 주체에 따른 국·공립과 사립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중학교의 25%, 고등학교의 50%가 사립이다). 948개 사립고 가운데 국가의 재정보조를 받지 않는 학교는 6%(58개교) 수준이며 지원을 받은 만큼 학생 선발, 교사임용, 재정,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교육개혁의 방향은 ‘학교 유형의 다양화’와 ‘학교 선택권’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출발은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정부에 2002년 자립형사립고 도입을 권고하면서부터. 자립형사립고는 학생 선발, 교사 자격, 수업료, 교과서 사용,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정부의 지원 없이 재단 전입금과 학생 등록금만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원단체들은 ‘선택 아닌 특혜’ ‘새로운 귀족학교’의 탄생이라며 결사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자립형사립고 논쟁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들고나온 방안이 ‘이상적 학교’다. 3월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서 언급한 ‘이상적 학교’는 6월 발표한 ‘21세기정보화사회 이상적 학교’로 구체화했다. 선진국 수준의 정보화 시설 등 교육여건을 갖추고 교육과정 편성과 학생 선발, 수업일수 등의 자율권을 갖춘 21세기형 학교 모델로 당장 내년부터 전국 국·공립 초·중등학교 20곳에서 시범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이 방안 역시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립형사립고와 함께 정부 주도 교육개혁의 두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부의 교육개혁은 공립학교를 이상적 학교, 영재학교, 공립대안중학교, 일부 특수목적고로 분화하고, 사립학교는 자립형사립고, 자율학교(대안학교·특성화고교), 일부 특수목적고로 분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이런 정부 주도의 학교 다양화 논의는 또 다른 획일화를 가져온다는 우려를 낳았다. 지난 3월 경남도교육청이 특성화고교로 인정 받은 간디학교가 미인가 중학교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재정지원을 끊고 사법당국에 고발한 사건은, 정부 주도의 개혁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래서 정부가 앞장서기보다 민간 차원에서 이미 진행하는 대안학교, 홈스쿨링, 민간위탁경영 등 다양한 학교 운영 모델을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6월12일 교육개혁과 교육자치를 위한 시민회의(이하 교육민회) 주최의 심포지엄 ‘관 주도 교육 벗어나야 교육이 산다’는 민간 주도의 학교 유형 다양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학교 유형의 다양화, 이렇게 할 수 있다’를 발표한 김재웅 교수(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 교육민회 정책위장)는 “설립 주체에 의한 현행 학교 유형을 다양화하기만 해도 숨막힐 듯한 학교체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고 했다. 김교수가 제시한 학교 유형은 학교 설립 주체와 재정 부담, 운영 주체에 따라 8가지 유형으로 나뉜다(상자 기사 참조).
김교수는 경직된 관 주도 학교 체제에 변화의 물결을 일게 하려면 먼저 3, 4, 8유형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제3유형은 일종의 공립학교에 대한 민간위탁 경영방식으로, 별도의 재단이나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자율적 교사집단이 주체가 되어 학교를 만든다. 제8유형은 말 많은 자립형사립고를 인정하면서 사립자유학교, 대안학교, 홈스쿨까지도 동시에 허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는 학교의 다양화에 대해서도 역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교조에서는 “학교 교육의 정상화는 제쳐두고 새로운 학교 만들기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일부 계층에 특혜를 주는 일이며, 사립에 대한 자율성 부여가 부실사학을 양산한다”고 경고했다. 박경양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정책위원장은 자립형사립고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 했다. “자립형사립고의 핵심은 학교 선택권 보장이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이 과연 어떤 근거로 학교를 선택할 것인가. 대다수가 해당 학교의 대학입시 성적에 좌우될 것이며 새로운 입시과열이 일어날 것이다.”
학교의 다양성 확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책임 있는 선택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고·외국어고로 대표되는 특수목적고의 실패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교육 주체(학생·학부모·교사)의 자각이 선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