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의 개별 사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논평하거나 지시하지 않겠다.”
지난 6월14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김중권 대표에게서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단적으로 말해 당내 소장파 인사들이 주장해 온 ‘당 우위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김대통령은 또 “지난번 청와대 최고위원 회의(4일)에서 당 대표를 중심으로 최고위원들이 당을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맡겼다”고도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당 발전위원회(위원장 박상규 사무총장)는 같은 날 “당과 정부, 청와대의 3자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차원에서” 주례보고를 김대통령과 김중권 대표의 독대 형식으로 진행할 것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김대통령 발언과 당 발전위의 건의 내용은 당연히 민주당에 파장을 몰고 왔다. 당과 청와대 사이에 긴장관계가 다시 형성된 것은 물론이다. ‘독대론’은 표면적으로 당 우위론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내면의 기류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김중권 대표 및 당 지도부와 한광옥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구파와의 파워게임 양상이 읽히는 것.
청와대 한 관계자는 독대론과 관련해 “당 우위가 아니라 김대표 우위론”이라며 예각을 세웠다. 당과 청와대 인사들은 김대통령 말대로 당 우위 원칙이 지켜질 경우 이는 “여권 내부가 힘의 조정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말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권력운용 시스템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 가운데 김대표와 한실장의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당과 청와대 사이에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한 견제와 대립은 김대표와 한실장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설명해 주는 조건들로 손색이 없다. 김대표측이 한실장측에 갖고 있는 피해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김대표측은 한실장이 당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한다.
김대표 측근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권 장악 시나리오로 무장한 동교동측은 이미 한실장 당대표 추대 계획을 완성해 놓았다고 말한다. 정풍 파동 이전에도 ‘한실장 당 대표 추대론’은 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김대표측은 한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인사들이 잘 나가던 민주당과 ‘JK(김대표 이니셜)호’를 난파 위기로 내몬 것으로 보고 있다. 한실장을 당 대표로 올리기 위해 김대표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 김대표측은 지난 3월26일 개각을 기점으로 동교동계가 이런 공세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정풍파동 이후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당 우위론이 불거진 것도 동교동의 공세를 견디다 못한 김대표의 반격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김대표 주변에도 그런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당 우위론은 소장파의 정풍운동 과정에 불거진 사안이지만 이를 대세론으로 연결해 밀어붙인 인물은 김대표다. 김대표는 이를 베이징에서 구상했고 그래서 측근들은 이를 ‘베이징 구상’으로 부른다. 지난달 25일 재선 의원들이 국정 쇄신론을 펼칠 당시 베이징에 머물던 김대표는 즉각 당 우위의 당정 시스템 개편과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역할 강화 방안 등을 담은 베이징 구상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부·청와대 간 협의체를 만들어 주요 정책·인사 등을 사전 스크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당의 결정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그 구상의 핵심 내용이다.
이 구상의 일단은 지난 6월1일 흘러 나왔다. “지난 3월 개각 때 인사 내용이나 시기를 청와대에서 사전에 통보 받지 못해 대표로서 참으로 무참했다. 그때부터 당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워크숍 때 추미애 지방자치위원장이 제기한 것도 똑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당-정과 청와대 사이에서 당의 우위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대표직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잘 나가던 당이 비선조직과 청와대 보좌진이 주도권을 쥔 지난 3월부터 빗나가기 시작했음을 강조한 것은 다분히 청와대 보좌진의 문책을 겨냥한 것이다. 이후 김대표측은 당 우위론을 더욱 확산시켰고 반대로 한실장과 동교동 구파들의 입장은 축소되었다.
물론 한실장을 비롯한 동교동 구파도 김대표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없을 리 없다. 당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각종 개혁 입법이 표류하는 등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황의 원인이 김대표에게 있다는 것이 이들 중 일부의 주장이다. 따라서 동교동 구파 인사들이 당 발전위가 거론한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독대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대통령, 청와대 비서진, 당이라는 여권의 의사소통 3각구도를 대통령과 당이라는 이원체제로 바꾸려는 김대표측의 구상을 당권 및 차기대권과 연계해 의혹을 제기한다. 이들은 “정책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대통령을 보좌할 것”이라는 김대표의 발언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는다. 국정 사전조율의 범위를 최대한 넓힌 김대표 발언은 청와대 보좌진의 고유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오해를 부른 것. 청와대 보좌진들은 또 다른 구설을 우려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욕심이 어디까지 뻗치는지 두고 보자”는 속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김대통령은 김대표와 한실장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뒤로 하고 일단 당 우위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선택은 당과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 대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는 소장파가 요구한 당정쇄신이라는 명분으로 촉발된 정쟁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는 관측도 있다. 현실 정치 문제에서 발을 뺌으로써 야당의 공격도 피하고 경제회생, 남북관계 등 굵직한 현안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김대통령이 당 우위를 인정하고 당의 실권 일부를 인정한 것은 역으로 그동안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운영해 온 국정운영 구도에 중요한 하자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김대통령이 인정한 당 우위론은 또 다른 후속조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 및 당 운영 스타일로 볼 때 당 우위론은 국면전환이 아니라 보다 체계화한 후반기 통치구도와 관련이 있으며 이 차원에서 후속 인적 개편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대통령은 여권 내부의 인적 개편에 대해 아직 결심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 관계자는“당과 청와대 관계가 변하면 그에 따른 인적·제도적 개편과 변화는 필수적”이라면서 “김대통령이 파격적인 인사 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시기를 오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7월 초로 잡고 있다.
이 경우 김대표는 다시 한번 강한 여당을 주창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대표 측근들은 정풍 파동이 김대표에게 안겨준 반사 이득을 뒤로 하고 한단계 높아진 ‘행보’를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건재하고 실질적으로 청와대의 보좌기능을 장악하고 있는 동교동 구파의 견제가 여전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김대표 중심의 당 지도부와 한실장 중심의 청와대 보좌진 사이에 간단치 않은 신경전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어차피 내년 전당대회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불가피한 수순인 듯하다.
지난 6월14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김중권 대표에게서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단적으로 말해 당내 소장파 인사들이 주장해 온 ‘당 우위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김대통령은 또 “지난번 청와대 최고위원 회의(4일)에서 당 대표를 중심으로 최고위원들이 당을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맡겼다”고도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당 발전위원회(위원장 박상규 사무총장)는 같은 날 “당과 정부, 청와대의 3자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차원에서” 주례보고를 김대통령과 김중권 대표의 독대 형식으로 진행할 것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김대통령 발언과 당 발전위의 건의 내용은 당연히 민주당에 파장을 몰고 왔다. 당과 청와대 사이에 긴장관계가 다시 형성된 것은 물론이다. ‘독대론’은 표면적으로 당 우위론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지만, 내면의 기류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김중권 대표 및 당 지도부와 한광옥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구파와의 파워게임 양상이 읽히는 것.
청와대 한 관계자는 독대론과 관련해 “당 우위가 아니라 김대표 우위론”이라며 예각을 세웠다. 당과 청와대 인사들은 김대통령 말대로 당 우위 원칙이 지켜질 경우 이는 “여권 내부가 힘의 조정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말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권력운용 시스템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 가운데 김대표와 한실장의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당과 청와대 사이에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한 견제와 대립은 김대표와 한실장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설명해 주는 조건들로 손색이 없다. 김대표측이 한실장측에 갖고 있는 피해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김대표측은 한실장이 당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한다.
김대표 측근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권 장악 시나리오로 무장한 동교동측은 이미 한실장 당대표 추대 계획을 완성해 놓았다고 말한다. 정풍 파동 이전에도 ‘한실장 당 대표 추대론’은 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김대표측은 한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인사들이 잘 나가던 민주당과 ‘JK(김대표 이니셜)호’를 난파 위기로 내몬 것으로 보고 있다. 한실장을 당 대표로 올리기 위해 김대표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 김대표측은 지난 3월26일 개각을 기점으로 동교동계가 이런 공세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정풍파동 이후 국정쇄신의 일환으로 당 우위론이 불거진 것도 동교동의 공세를 견디다 못한 김대표의 반격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김대표 주변에도 그런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당 우위론은 소장파의 정풍운동 과정에 불거진 사안이지만 이를 대세론으로 연결해 밀어붙인 인물은 김대표다. 김대표는 이를 베이징에서 구상했고 그래서 측근들은 이를 ‘베이징 구상’으로 부른다. 지난달 25일 재선 의원들이 국정 쇄신론을 펼칠 당시 베이징에 머물던 김대표는 즉각 당 우위의 당정 시스템 개편과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역할 강화 방안 등을 담은 베이징 구상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부·청와대 간 협의체를 만들어 주요 정책·인사 등을 사전 스크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당의 결정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그 구상의 핵심 내용이다.
이 구상의 일단은 지난 6월1일 흘러 나왔다. “지난 3월 개각 때 인사 내용이나 시기를 청와대에서 사전에 통보 받지 못해 대표로서 참으로 무참했다. 그때부터 당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워크숍 때 추미애 지방자치위원장이 제기한 것도 똑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당-정과 청와대 사이에서 당의 우위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대표직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잘 나가던 당이 비선조직과 청와대 보좌진이 주도권을 쥔 지난 3월부터 빗나가기 시작했음을 강조한 것은 다분히 청와대 보좌진의 문책을 겨냥한 것이다. 이후 김대표측은 당 우위론을 더욱 확산시켰고 반대로 한실장과 동교동 구파들의 입장은 축소되었다.
물론 한실장을 비롯한 동교동 구파도 김대표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없을 리 없다. 당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각종 개혁 입법이 표류하는 등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황의 원인이 김대표에게 있다는 것이 이들 중 일부의 주장이다. 따라서 동교동 구파 인사들이 당 발전위가 거론한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독대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대통령, 청와대 비서진, 당이라는 여권의 의사소통 3각구도를 대통령과 당이라는 이원체제로 바꾸려는 김대표측의 구상을 당권 및 차기대권과 연계해 의혹을 제기한다. 이들은 “정책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대통령을 보좌할 것”이라는 김대표의 발언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는다. 국정 사전조율의 범위를 최대한 넓힌 김대표 발언은 청와대 보좌진의 고유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오해를 부른 것. 청와대 보좌진들은 또 다른 구설을 우려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욕심이 어디까지 뻗치는지 두고 보자”는 속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김대통령은 김대표와 한실장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을 뒤로 하고 일단 당 우위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선택은 당과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 대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는 소장파가 요구한 당정쇄신이라는 명분으로 촉발된 정쟁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는 관측도 있다. 현실 정치 문제에서 발을 뺌으로써 야당의 공격도 피하고 경제회생, 남북관계 등 굵직한 현안에 힘을 쏟을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김대통령이 당 우위를 인정하고 당의 실권 일부를 인정한 것은 역으로 그동안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운영해 온 국정운영 구도에 중요한 하자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김대통령이 인정한 당 우위론은 또 다른 후속조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국정 및 당 운영 스타일로 볼 때 당 우위론은 국면전환이 아니라 보다 체계화한 후반기 통치구도와 관련이 있으며 이 차원에서 후속 인적 개편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대통령은 여권 내부의 인적 개편에 대해 아직 결심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 관계자는“당과 청와대 관계가 변하면 그에 따른 인적·제도적 개편과 변화는 필수적”이라면서 “김대통령이 파격적인 인사 개편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시기를 오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7월 초로 잡고 있다.
이 경우 김대표는 다시 한번 강한 여당을 주창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대표 측근들은 정풍 파동이 김대표에게 안겨준 반사 이득을 뒤로 하고 한단계 높아진 ‘행보’를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건재하고 실질적으로 청와대의 보좌기능을 장악하고 있는 동교동 구파의 견제가 여전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김대표 중심의 당 지도부와 한실장 중심의 청와대 보좌진 사이에 간단치 않은 신경전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싸움은 어차피 내년 전당대회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불가피한 수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