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 가요계는 미8군 쇼를 통해 전파된 서구 대중음악의 영향과 ‘동백아가씨’로 대표되는 트로트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 패티김, 윤복희, 현미, 최희준, 최양숙 등이 미8군 출신 가수들이고, 트로트계에서는 이미자에 이어 70년대 남진-나훈아라는 라이벌 스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틈을 비집고 가요계 밖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한 것이 포크송 운동이다. 이들의 주무대는 ‘세시봉’ ‘쉘부르’와 같은 음악감상실이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등이 이곳에서 자작곡 발표회를 가졌고, 이후 YWCA에서 ‘청개구리’라는 노래 모임을 만들어 김도향,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등이 활동했다(박윤우 ‘해방 후 대중가요의 사회사’에서).
박윤우씨는 포크싱어들의 움직임에 동력을 부여한 것이 1971년 김민기의 레코드 출반이었다고 기록한다. 이전에도 서유석, 트윈폴리오 등의 음반이 있었으나 그들 곡 대부분이 외국의 포크송을 번안한 것인 데 비해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아침이슬’ 등 김민기의 창작곡은 우리 포크송이 외국음악의 단순모방 단계를 넘어서게 했고, 이후 포크송은 청바지`-`생맥주와 함께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5월15~1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가 열린다. 이 행사를 기획-주최하는 ‘한국포크싱어연합회’(회장 이필원)는 공연 일주일 전부터 예약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여기저기서 ‘티켓’을 달라는 요청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이필원 회장을 비롯한 연합회 직원들은 즐겁기만 한 표정이다. 3년 전부터 조짐을 보인 포크붐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신시사이저, 댄스와 랩에 밀려 포크송은 어느 새 젊은이들과 멀어졌죠. 트로트는 ‘가요무대’를 통해 꾸준히 불리고 신세대 트로트 가수의 등장으로 명맥을 이어온 반면, 포크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방송조차 포크를 철저히 외면했죠. 그러나 포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포크송이 인간 본성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비상업적인 음악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노래말과 뛰어난 가창력을 토대로 한 포크송의 저력이 30년 만에 다시 인정받은 겁니다”(이필원).
다시 일고 있는 포크붐의 진원지는 미사리를 중심으로 한 도시 근교의 라이브 카페들이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무대가 없던 포크싱어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다시금 귀에 익은 통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이브 카페의 통기타 소리가 한물간 가수들이 들려주는 추억의 노래로 인식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99년 봄, 60년대 말 ‘눈동자’란 노래로 인기를 모은 가수 이승재씨가 ‘한국포크싱어협회’를 만들면서 ‘신포크운동’이 전개된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친목모임 성격을 띠었으나 점차 새 포크앨범 발표와 포크페스티벌 개최 등으로 잠재된 포크팬들의 열기에 불을 당겼다. 그러나 협회 내분으로 한국포크싱어협회와 한국포크싱어연합회로 갈라서면서 모처럼 일어난 포크붐에 찬물을 끼얹는 위기도 있었다. 다행히 잇단 포크무대의 성공으로 이런 우려는 깨끗이 사라졌다. 지난해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의 ‘포크빅4 콘서트’나 전 해바라기 멤버 유익종의 라이브 콘서트, ‘이종환의 추억의 디스크자키 쉘부르’ 등 포크무대는 40~50대 중-장년층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에 힘을 얻은 포크싱어들은 추억을 파먹는 수준이 아니라 과감하게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포크 1세대인 조동진`-`이정선`-`정태춘 등이 중심이 되어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 ‘송 오브 코리아’를 설립한 것이나, 임지훈이 미사리에서 번 돈으로 새 앨범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다시 음악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즐거운 조짐이다. 또 조동진이 이끄는 ‘하나음악’이 오소영이라는 포크싱어를 발굴해 첫 앨범을 내는 등 한국포크는 건재한 1세대들의 활동과 신인의 유입으로 점점 활기를 띠어간다.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는 김도향, 한대수, 트윈폴리오, 라나에로스포, 둘다섯, 뚜아에모아, 사월과오월 등 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7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포크 1세대들을 위한 자리다. 이 공연을 기획한 한국포크싱어연합회 이필원 회장은 “전국적으로 3000명에 가까운 포크싱어들이 활동하지만 음반 한 번 못 내고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면서 “한 번 행사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오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한강시민공원에서 일주일간 교통방송과 공동으로 ‘여름밤의 포크 페스티벌’을 연다.
지난 73년 ‘긴 머리 소녀’를 히트시킨 둘다섯 멤버 이두진씨(한국포크싱어연합회 부회장)는 “대부분 싱어송 라이터로 활약한 포크싱어들은 대가 없이 서로 곡을 주고받는 미덕이 전통이었다”면서 1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후배가수를 키우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한다. 당장 올해부터 대학가 통기타 동아리를 대상으로 ‘포크대학가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연합회측은 이번 공연 후 뉴욕, LA,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에 이어 평양공연도 추진중이다. 특히 남`-`북한을 하나로 이어주는 노래로 ‘아침이슬’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포크의 부활’이 단순히 복고 취미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인습을 타파하고 진보적 이상을 실천하는 청년문화의 부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틈을 비집고 가요계 밖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한 것이 포크송 운동이다. 이들의 주무대는 ‘세시봉’ ‘쉘부르’와 같은 음악감상실이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등이 이곳에서 자작곡 발표회를 가졌고, 이후 YWCA에서 ‘청개구리’라는 노래 모임을 만들어 김도향,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등이 활동했다(박윤우 ‘해방 후 대중가요의 사회사’에서).
박윤우씨는 포크싱어들의 움직임에 동력을 부여한 것이 1971년 김민기의 레코드 출반이었다고 기록한다. 이전에도 서유석, 트윈폴리오 등의 음반이 있었으나 그들 곡 대부분이 외국의 포크송을 번안한 것인 데 비해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아침이슬’ 등 김민기의 창작곡은 우리 포크송이 외국음악의 단순모방 단계를 넘어서게 했고, 이후 포크송은 청바지`-`생맥주와 함께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5월15~16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가 열린다. 이 행사를 기획-주최하는 ‘한국포크싱어연합회’(회장 이필원)는 공연 일주일 전부터 예약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여기저기서 ‘티켓’을 달라는 요청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이필원 회장을 비롯한 연합회 직원들은 즐겁기만 한 표정이다. 3년 전부터 조짐을 보인 포크붐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신시사이저, 댄스와 랩에 밀려 포크송은 어느 새 젊은이들과 멀어졌죠. 트로트는 ‘가요무대’를 통해 꾸준히 불리고 신세대 트로트 가수의 등장으로 명맥을 이어온 반면, 포크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방송조차 포크를 철저히 외면했죠. 그러나 포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포크송이 인간 본성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비상업적인 음악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노래말과 뛰어난 가창력을 토대로 한 포크송의 저력이 30년 만에 다시 인정받은 겁니다”(이필원).
다시 일고 있는 포크붐의 진원지는 미사리를 중심으로 한 도시 근교의 라이브 카페들이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무대가 없던 포크싱어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다시금 귀에 익은 통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이브 카페의 통기타 소리가 한물간 가수들이 들려주는 추억의 노래로 인식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99년 봄, 60년대 말 ‘눈동자’란 노래로 인기를 모은 가수 이승재씨가 ‘한국포크싱어협회’를 만들면서 ‘신포크운동’이 전개된다. 초기에는 가수들의 친목모임 성격을 띠었으나 점차 새 포크앨범 발표와 포크페스티벌 개최 등으로 잠재된 포크팬들의 열기에 불을 당겼다. 그러나 협회 내분으로 한국포크싱어협회와 한국포크싱어연합회로 갈라서면서 모처럼 일어난 포크붐에 찬물을 끼얹는 위기도 있었다. 다행히 잇단 포크무대의 성공으로 이런 우려는 깨끗이 사라졌다. 지난해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의 ‘포크빅4 콘서트’나 전 해바라기 멤버 유익종의 라이브 콘서트, ‘이종환의 추억의 디스크자키 쉘부르’ 등 포크무대는 40~50대 중-장년층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에 힘을 얻은 포크싱어들은 추억을 파먹는 수준이 아니라 과감하게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포크 1세대인 조동진`-`이정선`-`정태춘 등이 중심이 되어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 ‘송 오브 코리아’를 설립한 것이나, 임지훈이 미사리에서 번 돈으로 새 앨범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다시 음악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즐거운 조짐이다. 또 조동진이 이끄는 ‘하나음악’이 오소영이라는 포크싱어를 발굴해 첫 앨범을 내는 등 한국포크는 건재한 1세대들의 활동과 신인의 유입으로 점점 활기를 띠어간다.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는 김도향, 한대수, 트윈폴리오, 라나에로스포, 둘다섯, 뚜아에모아, 사월과오월 등 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7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포크 1세대들을 위한 자리다. 이 공연을 기획한 한국포크싱어연합회 이필원 회장은 “전국적으로 3000명에 가까운 포크싱어들이 활동하지만 음반 한 번 못 내고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면서 “한 번 행사로 끝내지 않고 반드시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오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한강시민공원에서 일주일간 교통방송과 공동으로 ‘여름밤의 포크 페스티벌’을 연다.
지난 73년 ‘긴 머리 소녀’를 히트시킨 둘다섯 멤버 이두진씨(한국포크싱어연합회 부회장)는 “대부분 싱어송 라이터로 활약한 포크싱어들은 대가 없이 서로 곡을 주고받는 미덕이 전통이었다”면서 1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후배가수를 키우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한다. 당장 올해부터 대학가 통기타 동아리를 대상으로 ‘포크대학가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연합회측은 이번 공연 후 뉴욕, LA,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에 이어 평양공연도 추진중이다. 특히 남`-`북한을 하나로 이어주는 노래로 ‘아침이슬’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포크의 부활’이 단순히 복고 취미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인습을 타파하고 진보적 이상을 실천하는 청년문화의 부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