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호랑이’. 김대중 정부 초기에 정부 조직 개편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산업자원부를 빗대 정부 부처 내에서 회자되던 얘기다. 산자부는 당시 중소기업 부문이 중소기업청으로 떨어져나갔고 통상 업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통상부문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 넘겨줘야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산자부 내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상 산자부 장관 임기는 6개월”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개혁의 핵심 과제로 대두되면서 산업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난 데다 개각 때마다 장관이 바뀌는 등 산자부 위상이 크게 추락했기 때문. 산자부 직원들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산자부 폐지론에도 시달리고 있다.
산자부 위상이 이렇다보니 “김대중 정부에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김광두 산업발전심의위원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은 “현재 금융기관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에 얽매여 위험도가 높은 기업금융은 하지 않고 안전한 소비자금융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기업들이 난리인데, 산자부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또 작년 7월 김영호 장관 시절 제1차 산업발전심의회(이하 산발심)가 열렸을 뿐 그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이라면서 “산자부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산업발전법에 근거해 구성된 산발심은 산업정책 전반에 걸친 자문기구. 당시 산자부는 신기술-신산업 발전과 산업 전반의 지식 정보화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차기 회의를 조만간 개최한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8월7일 개각에서 김영호 장관이 물러나면서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중앙대 정경학부 안충영 교수도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이 중심이었고, 구조조정 이후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고 진단했다. 안교수는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광의의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정책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산자부가 산업정책과 관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산자부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김용근 산업정책과장은 “그동안의 국가적 과제가 외환위기 극복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산업경쟁력 강화 쪽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올해부터는 기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생물산업 등 신산업 육성 쪽에 무게중심을 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산자부 관계자들은 재경부나 금감원 등 타부처의 견제 때문에 제대로 정책을 입안하기도 힘든 상태라고 말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작년 워크아웃 제도의 존폐문제가 거론될 때 산자부 실무진이 산업정책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금감위에 워크아웃 기업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금감위 쪽에서 ‘산자부가 무슨 근거로 그런 자료를 달라고 하느냐’면서 거절했다”며 “부처간 정책 협조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물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산업정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태영 장관 시절의 ‘빅딜’, 정덕구 장관이 제기해 김영호 장관 시절 마무리한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 등은 산자부가 내세울 만한 정책이다. 구조조정과 산업경쟁력 강화정책 동시 추진을 강조하면서 의욕적으로 산업정책을 내놓았던 김영호 장관 시절에는 △산업구조 고도화 △첨단기술 무역 확대 △e-비즈니스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빅딜의 경우 추진 초기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퇴출해야 할 부실기업들을 한데 모아놓아봐야 오히려 부실만 키울 뿐 경쟁력은 강화할 수 없다는 게 빅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지금 때늦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98년 12월 정부가 들고 나온 ‘삼성자동차 - 대우전자 빅딜’은 협상 단계에서 삼성이 거부, 정부가 자존심만 구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지식기반 경제 구축 및 신산업 육성 등 언론의 각광을 받을 만한 정책의 경우, 산자부는 다른 부처와 주도권 다툼을 벌여야 했다. 한 관계자는 “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와 관련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각자 예산을 확보, 산자부 입지가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작년에 산업정책국 내에 전자상거래진흥과와 전자상거래총괄과 등 두 과를 신설한 것 정도가 산자부의 수확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이처럼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이냐 하는 점이다. 산업연구원 전수봉 연구위원은 “산업정책 차원에서는 물론 경제정책 전반에서 기술혁신을 고양하고 지식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과 비전이 세워져 있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 부처들의 개별 계획을 모아놓은 차원의 ‘종합계획’이 제시돼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새로운 핵심 경쟁자산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는 데는 미흡하다는 것.
최근에는 산자부 내에서조차 산자부의 무력감은 자업자득이라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과 산업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산자부가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산자부가 지난해, 역시 한때 ‘퇴출론’에 시달리다 기능과 역할을 재편함으로써 살아남은 미국 상무성을 벤치마킹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산자부 관계자들은 산자부 스스로 입지를 좁힌 사례로 ‘빅딜’을 꼽는다. 빅딜에서는 산자부 스스로 움츠러들어 정책적인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반성이다. 전경련이 추진하는 빅딜에 대해 산자부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실무진의 건의에 대해 장관이 “괜히 골치 아픈 문제에 끼여들었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무슨 덤터기를 쓰려고 그러느냐”며 만류한 것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작년에 실패로 끝난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산자부는 애당초 대우차 해외 매각과 관련,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산자부를 소외시키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정작 포드자동차가 대우차 인수 포기를 선언하자 기자들에게 “산자부는 대우차 해외 매각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적극 해명, “산자부 체면이 국가경제보다 우선하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물론 시장경제가 강조되고 세계무역기구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산업정책이 필요하느냐는 지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과거처럼 특정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차원의 산업정책은 불가능하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산업정책은 경쟁 촉진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줌으로써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과거처럼 특정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더 이상 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역시 연구 개발 투자 확대, 새로운 인력개발 정책, 인프라 구축 등 새로운 차원의 산업정책을 거론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책 수단은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실장은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중화학공업 위주에서 벤처-첨단산업 위주 경제로 방향은 잘 틀었으나 정책 수단은 과거처럼 물량을 쏟아붓는 식이어서 벤처 거품이 형성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벤처-첨단산업 육성이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할 정책임에도 관료들이 단기 실적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 정권이나 장관 교체에 상관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산자부 내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상 산자부 장관 임기는 6개월”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개혁의 핵심 과제로 대두되면서 산업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난 데다 개각 때마다 장관이 바뀌는 등 산자부 위상이 크게 추락했기 때문. 산자부 직원들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산자부 폐지론에도 시달리고 있다.
산자부 위상이 이렇다보니 “김대중 정부에는 산업정책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김광두 산업발전심의위원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은 “현재 금융기관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에 얽매여 위험도가 높은 기업금융은 하지 않고 안전한 소비자금융만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기업들이 난리인데, 산자부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또 작년 7월 김영호 장관 시절 제1차 산업발전심의회(이하 산발심)가 열렸을 뿐 그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이라면서 “산자부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산업발전법에 근거해 구성된 산발심은 산업정책 전반에 걸친 자문기구. 당시 산자부는 신기술-신산업 발전과 산업 전반의 지식 정보화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차기 회의를 조만간 개최한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8월7일 개각에서 김영호 장관이 물러나면서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중앙대 정경학부 안충영 교수도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이 중심이었고, 구조조정 이후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고 진단했다. 안교수는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광의의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정책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산자부가 산업정책과 관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산자부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김용근 산업정책과장은 “그동안의 국가적 과제가 외환위기 극복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산업경쟁력 강화 쪽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올해부터는 기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생물산업 등 신산업 육성 쪽에 무게중심을 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산자부 관계자들은 재경부나 금감원 등 타부처의 견제 때문에 제대로 정책을 입안하기도 힘든 상태라고 말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작년 워크아웃 제도의 존폐문제가 거론될 때 산자부 실무진이 산업정책 차원에서 검토하기 위해 금감위에 워크아웃 기업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금감위 쪽에서 ‘산자부가 무슨 근거로 그런 자료를 달라고 하느냐’면서 거절했다”며 “부처간 정책 협조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물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산업정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태영 장관 시절의 ‘빅딜’, 정덕구 장관이 제기해 김영호 장관 시절 마무리한 부품-소재산업 육성정책 등은 산자부가 내세울 만한 정책이다. 구조조정과 산업경쟁력 강화정책 동시 추진을 강조하면서 의욕적으로 산업정책을 내놓았던 김영호 장관 시절에는 △산업구조 고도화 △첨단기술 무역 확대 △e-비즈니스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빅딜의 경우 추진 초기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퇴출해야 할 부실기업들을 한데 모아놓아봐야 오히려 부실만 키울 뿐 경쟁력은 강화할 수 없다는 게 빅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지금 때늦게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98년 12월 정부가 들고 나온 ‘삼성자동차 - 대우전자 빅딜’은 협상 단계에서 삼성이 거부, 정부가 자존심만 구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지식기반 경제 구축 및 신산업 육성 등 언론의 각광을 받을 만한 정책의 경우, 산자부는 다른 부처와 주도권 다툼을 벌여야 했다. 한 관계자는 “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와 관련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각자 예산을 확보, 산자부 입지가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작년에 산업정책국 내에 전자상거래진흥과와 전자상거래총괄과 등 두 과를 신설한 것 정도가 산자부의 수확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이처럼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이냐 하는 점이다. 산업연구원 전수봉 연구위원은 “산업정책 차원에서는 물론 경제정책 전반에서 기술혁신을 고양하고 지식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과 비전이 세워져 있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 부처들의 개별 계획을 모아놓은 차원의 ‘종합계획’이 제시돼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새로운 핵심 경쟁자산을 획기적으로 증진시키는 데는 미흡하다는 것.
최근에는 산자부 내에서조차 산자부의 무력감은 자업자득이라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과 산업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산자부가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산자부가 지난해, 역시 한때 ‘퇴출론’에 시달리다 기능과 역할을 재편함으로써 살아남은 미국 상무성을 벤치마킹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산자부 관계자들은 산자부 스스로 입지를 좁힌 사례로 ‘빅딜’을 꼽는다. 빅딜에서는 산자부 스스로 움츠러들어 정책적인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반성이다. 전경련이 추진하는 빅딜에 대해 산자부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실무진의 건의에 대해 장관이 “괜히 골치 아픈 문제에 끼여들었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무슨 덤터기를 쓰려고 그러느냐”며 만류한 것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작년에 실패로 끝난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산자부는 애당초 대우차 해외 매각과 관련,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산자부를 소외시키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정작 포드자동차가 대우차 인수 포기를 선언하자 기자들에게 “산자부는 대우차 해외 매각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적극 해명, “산자부 체면이 국가경제보다 우선하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물론 시장경제가 강조되고 세계무역기구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산업정책이 필요하느냐는 지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과거처럼 특정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차원의 산업정책은 불가능하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산업정책은 경쟁 촉진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줌으로써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과거처럼 특정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산업정책은 더 이상 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 역시 연구 개발 투자 확대, 새로운 인력개발 정책, 인프라 구축 등 새로운 차원의 산업정책을 거론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책 수단은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실장은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중화학공업 위주에서 벤처-첨단산업 위주 경제로 방향은 잘 틀었으나 정책 수단은 과거처럼 물량을 쏟아붓는 식이어서 벤처 거품이 형성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벤처-첨단산업 육성이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할 정책임에도 관료들이 단기 실적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 정권이나 장관 교체에 상관없이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