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시 살림을 합친다고는 하지만 이 불안한 동거가 언제 파탄으로 끝날지 솔직히 알기 어렵습니다.”(1월8일 청와대 DJP 만찬회동에 대한 자민련 관계자 논평)
4·13 총선을 앞두고 ‘DJP 공조’의 틀을 야멸차게 깨뜨리며 떠났다가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실상 칩거상태에 있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JP)가 공조 복원을 선언하며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때마침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정치행보를 재촉하고 있어 정가에서는 ‘신 3김 시대의 도래’를 점치는 견해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함께 7박8일간의 겨울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JP는 8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부부동반 만찬 회동을 갖는 것으로 DJ와 함께 다시 한 배를 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해 2월24일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여당 포기를 선언한 지 약 11개월 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JP는 지난 5일 배기선 의원 등 민주당에서 이적한 3명의 의원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공동정권이 실패하면 우리도 비난을 받는다”며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참패 칩거서 정치 일선에 복귀
총선 당시의 입장에서 완전히 U-턴을 한 JP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당내에서조차 쉽게 예상되지 않았던 큰 변화다. JP 의중의 풍향계라고 불릴 만큼 그의 심중을 충실히 따르는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은 지난 연말 각 언론과의 잇따른 회견에서 “조만간 DJP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못박았다. 야당 공조의 복원 여부에 대해서도 김대행은 “그건 두 사람이 만난 뒤 상의할 문제며 지금까지는 어떤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JP의 생각이 180도 선회한 것은 역시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 때문인 듯하다. 민주당의 한 핵심인사는 “김대통령이 비난 여론을 무릅쓰면서 자민련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해) 지역구 의원 3명을 자민련에 양자로 보낸 것을 보면서 JP가 크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JP는 민주당 의원들의 입당 계획을 사전에 알고 나름대로 ‘준비’했다. 그는 5일 기자들에게 “내가 조반역리(造反逆理)라는 신년 휘호를 낸 이유는 우리 당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라며 강창희 부총재의 반발까지도 내다보고 이를 사전에 경계하려 했음을 분명히 했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도 JP는 민주당 의원들의 입당 선언 소식에 미리 준비한 듯한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자민련 사람들에게 “JP가 진심으로 DJ를 도와주려는 것이냐”고 물으면 “글쎄요, 아닐 걸요”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DJ와 JP 사이에는 서로 합쳐지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든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한 JP의 반응이다.
그는 지난 5일에는 이총재를 겨냥해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방자하게 행동하는 사람.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마치 남의 나라 일 다루듯 하는 사람”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번 만날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거칠게 “안 만날 거요”라고 말을 끊었던 JP다. 하지만 7일 자신의 75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 화분을 들고 찾아와 넙죽 큰절까지 올린 한나라당 주진우 의원(이총재 비서실장)에게는 “이총재가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덕담을 던졌다. 또 DJP 공조에 대해서도 “내가 6·25를 겪고 5·16 혁명도 한 사람”이라며 “공조는 하되 주의, 주장은 안 바꾼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DJ에 대한 JP의 평가는 극히 부정적이었다. 그 생각들은 지난 총선을 전후한 ‘DJP 갈등기’에 집중적으로 표출됐다. 몇 가지만 추려봐도 “지역감정을 일으킨 장본인은 박정희가 아니라 DJ다” “집권한 지 2년 만에 벌써 교만해졌다” “머릿속에 통일은 없고 오직 노벨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북한에 끌려 다녔다” 등등, 한마디로 ‘못 믿을 사람’이라는 취지였다. JP가 “주의, 주장은 안 바꾼다”고 한 말도 DJ에 대한 자신의 평가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물론 정치적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정치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DJP 공조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다만 JP의 ‘본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것이 DJP공조의 수준과 형태를 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구체적으로는 내년 6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대통령선거 때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인지를 판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단 민주당과 자민련은 집권 초기 수준의 공조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자민련 의원을 입각시켜 연합내각을 구성하고 고위당정회의 및 고위정책협의체를 운용하며 국회에서도 원내전략을 공유하는 등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단 스크럼을 함께 짜고 반 이회창 전선을 구축하긴 했지만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DJP 공조라는 불안한 동거체제는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제1차 DJP 공조’의 붕괴 과정에서처럼 뿌리와 체질이 전혀 다른 두 당의 모순적 결합 자체에서부터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또 내년 말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시작될 올 하반기 이후 정국 변화가 DJP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의 구심력을 압도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이번 ‘신 DJP 공조’의 미래는 정계개편이라는 새로운 그림 속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DJP 공조’의 틀을 야멸차게 깨뜨리며 떠났다가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실상 칩거상태에 있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JP)가 공조 복원을 선언하며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때마침 김영삼 전 대통령마저 정치행보를 재촉하고 있어 정가에서는 ‘신 3김 시대의 도래’를 점치는 견해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함께 7박8일간의 겨울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JP는 8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부부동반 만찬 회동을 갖는 것으로 DJ와 함께 다시 한 배를 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해 2월24일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여당 포기를 선언한 지 약 11개월 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JP는 지난 5일 배기선 의원 등 민주당에서 이적한 3명의 의원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공동정권이 실패하면 우리도 비난을 받는다”며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참패 칩거서 정치 일선에 복귀
총선 당시의 입장에서 완전히 U-턴을 한 JP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당내에서조차 쉽게 예상되지 않았던 큰 변화다. JP 의중의 풍향계라고 불릴 만큼 그의 심중을 충실히 따르는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은 지난 연말 각 언론과의 잇따른 회견에서 “조만간 DJP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못박았다. 야당 공조의 복원 여부에 대해서도 김대행은 “그건 두 사람이 만난 뒤 상의할 문제며 지금까지는 어떤 논의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JP의 생각이 180도 선회한 것은 역시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 때문인 듯하다. 민주당의 한 핵심인사는 “김대통령이 비난 여론을 무릅쓰면서 자민련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해) 지역구 의원 3명을 자민련에 양자로 보낸 것을 보면서 JP가 크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JP는 민주당 의원들의 입당 계획을 사전에 알고 나름대로 ‘준비’했다. 그는 5일 기자들에게 “내가 조반역리(造反逆理)라는 신년 휘호를 낸 이유는 우리 당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라며 강창희 부총재의 반발까지도 내다보고 이를 사전에 경계하려 했음을 분명히 했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도 JP는 민주당 의원들의 입당 선언 소식에 미리 준비한 듯한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자민련 사람들에게 “JP가 진심으로 DJ를 도와주려는 것이냐”고 물으면 “글쎄요, 아닐 걸요”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DJ와 JP 사이에는 서로 합쳐지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든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한 JP의 반응이다.
그는 지난 5일에는 이총재를 겨냥해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방자하게 행동하는 사람.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마치 남의 나라 일 다루듯 하는 사람”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번 만날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거칠게 “안 만날 거요”라고 말을 끊었던 JP다. 하지만 7일 자신의 75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 화분을 들고 찾아와 넙죽 큰절까지 올린 한나라당 주진우 의원(이총재 비서실장)에게는 “이총재가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덕담을 던졌다. 또 DJP 공조에 대해서도 “내가 6·25를 겪고 5·16 혁명도 한 사람”이라며 “공조는 하되 주의, 주장은 안 바꾼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DJ에 대한 JP의 평가는 극히 부정적이었다. 그 생각들은 지난 총선을 전후한 ‘DJP 갈등기’에 집중적으로 표출됐다. 몇 가지만 추려봐도 “지역감정을 일으킨 장본인은 박정희가 아니라 DJ다” “집권한 지 2년 만에 벌써 교만해졌다” “머릿속에 통일은 없고 오직 노벨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북한에 끌려 다녔다” 등등, 한마디로 ‘못 믿을 사람’이라는 취지였다. JP가 “주의, 주장은 안 바꾼다”고 한 말도 DJ에 대한 자신의 평가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물론 정치적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정치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DJP 공조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다만 JP의 ‘본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것이 DJP공조의 수준과 형태를 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구체적으로는 내년 6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대통령선거 때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인지를 판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단 민주당과 자민련은 집권 초기 수준의 공조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자민련 의원을 입각시켜 연합내각을 구성하고 고위당정회의 및 고위정책협의체를 운용하며 국회에서도 원내전략을 공유하는 등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단 스크럼을 함께 짜고 반 이회창 전선을 구축하긴 했지만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DJP 공조라는 불안한 동거체제는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제1차 DJP 공조’의 붕괴 과정에서처럼 뿌리와 체질이 전혀 다른 두 당의 모순적 결합 자체에서부터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또 내년 말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시작될 올 하반기 이후 정국 변화가 DJP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의 구심력을 압도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이번 ‘신 DJP 공조’의 미래는 정계개편이라는 새로운 그림 속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