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전과 바뀐 게 뭐죠. 진료비와 약값이 늘어난 것 빼고….”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씨(32)는 의약분업이 시작된 이후 약사를 단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 집 인근 빌딩의 6층 D의원에 가면 처방전을 들고 약국까지 왔다갔다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이 국민 건강을 위한 좋은 제도라고는 하지만 그에겐 의료보험료만 올려놓은 실패한 정책의 상징으로 비친다.
D의원의 경우 처방전이 나오면 간호사가 그 처방전을 팩스로 1층의 약국에 보낸 뒤 김씨를 의원 내에 대기하게 한다. 조금 기다리면 약국 점원이 올라와 약봉지와 주사제를 김씨에게 건네고, 그는 주사를 맞은 뒤 의원을 나오면 그만이다. 승강기 옆에 붙어 있는 1층 약국은 말이 약국이지 2평 정도의 ‘하꼬방’. 김씨는 나중에서야 이 약국이 이 건물 2, 3층 의원과 6층 D의원의 담합약국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담합하지 않으면 바보?
의약분업이 의약 담합이라는 덫에 걸려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의-약-정(醫藥政)이 지난 12월11일 약사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함으로써 지리하게 계속됐던 의료대란은 종식됐다. 하지만 약국들이 병-의원의 기존 조제실 역할을 하는 담합 행태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의약품 오남용 방지의 기대가 무너져가고 있다. 의-약간의 상호 견제는 담합으로 얼룩졌고, 시민들은 편리함 때문에 분업의 근본 취지를 잊은 듯하다.
“담합은 환자들의 손에 분업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약봉지를 받아 쥐게 했고, 오남용의 폐해가 심각한 주사제도 담합의원들이 처방에 열을 올리면서 오히려 분업 이전보다 처방 건수가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성미 차장은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상태에서 의약분업을 명목으로 세 차례나 인상된 보험수가는 시민들에게 ‘의약분업 회의론’을 촉발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담합하지 않는 의사, 약사가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바야흐로 의-약 담합이 의약분업 최대의 주적(主敵)으로 등장한 것이다.
서울시 노원구 A의원. 원래 C원장이 경영하는 의원의 일부에 의약분업 이후 S약국이 들어섰다. 약국 개설 약사는 C원장과 이름 끝자만 틀린 사촌동생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에 들렀던 김모씨(34)는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S약국으로 가라는 안내를 하는 것은 물론, 의사가 처방전에 연필로 쓴 처방을 약사가 지우고 다른 약을 써넣는 것까지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관할 보건소측은 “C의원이 시설을 축소 변경해 승인을 받았고, 나머지 부지에 다른 사람이 약국을 개설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약국의 안내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의원 시설의 일부를 잘라 3평 내외의 공간에 차려진 일명 ‘하꼬방 약국’은 대부분 의원이나 병원의 직영형태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게 인근 약국들의 귀띔이다. S의원의 환자대기실을 쪼개 만든 서울시 서대문구 S약국과 J의원의 응급실 자리에 들어선 서울시 강남구 A약국, L의원의 진료실 일부를 칸막이하고 약국을 개설한 서울시 강동구 S약국이 모두 의원 직영약국으로 의심받는 담합약국들.
하꼬방 약국 이외에 준종합병원급의 주차장을 용도변경한 담합약국도 많다. 서울시 노원구 H약국은 U병원 주차장 자리에 들어섰으며, 서울시 금천구 H병원 주차장에도 S약국이 들어섰다. S약국을 개설한 약사는 병원장의 처제로,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와 직원들이 직접 환자들을 ‘주차장 약국’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병원 직원이 약국에 상주하는 모습이 확인되는 사례까지 있다.
“문전약국이나 동일건물 약국에 대한 담합의원들의 약국 지정이나 안내는 이미 ‘양반축’에 속합니다. 약국 입간판에 의원과 약국 이름을 나란히 써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담합약국 전국 단속에 나섰던 전공의협의회 소속 최모씨(31)는 지방에서의 의약담합은 서울보다 정도가 더 심각하고, 뻔뻔스럽다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최씨에 따르면 대구시 북구 S약국은 1층에 약국을 개설하면서 세운 입간판에 남편이 운영하는 같은 건물의 2층 N의원 상호도 함께 표시한 것은 물론, N의원의 간호조무사가 1층으로 내려와 S약국의 조제를 도와주고 있더라는 것. 최씨는 인천시 남구 E약국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말한다. 바로 옆 S내과의 간호사들은 아예 E약국에 상주하며 약사를 도와 조제하면서 S내과의 환자들을 안내해 오고 있었다.
“이렇게 안내해도 말을 안 듣는 의식 있는 환자가 있죠. 이런 환자에겐 약속, 암호처방이 나갑니다.” 경기도 포천군의 이모씨는 자신의 황당한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8월 읍내의 한 의원에 갔더니 인근 약국을 지정하며 거기에만 약이 있다고 하더라는 것. 이씨가 “우리 동네에 가서 약을 짓겠다”고 하니 의사는 처방전을 새로 써주고 김씨를 돌려보냈다. 동네의 단골 약국으로 돌아온 이씨는 약사가 하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약이 어디 있어요?” 처방전의 의약품 명칭란에 적힌 내용은 약품명이 아니라 암호였던 것이다. ‘A01304361, A05002021…’ 숫자만 가득한 처방전을 들고 의원에 항의하니 “지정한 약국에는 그 약이 모두 있다”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하꼬방 직영약국을 만들기 위해 약사 구함이라는 신문광고를 내는 의사에서부터, 약국이름을 아예 ‘원내 약국’으로 걸어 놓은 곳, 의원의 본인부담금 1000원을 없애주고 약국을 지정해주는 의원, 처방전 없이 약을 주고 주사제를 투약한 뒤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사가 직접 기입해 주는 경우 등 끝이 없습니다.” 회원 약국들로부터 담합약국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는 대한약사회 박인춘 홍보이사는 많은 동네약국들이 담합약국 때문에 폐업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의원 직영약국은 시간마다 다르지만 고용약사에 대해 2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담합약국은 처방전 한 건당 500~1000원씩, 아니면 수입의 일정부분을 대가로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돈을 주는 방식은 임대료로 위장할 수도 있고 직접 주는 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죠.”
의약분업 이후 같은 건물의 의원과 담합관계를 유지해온 김모 약사(42)는 의사들의 요구가 지나쳐 자진 폐업을 결정한 케이스. 건물 안 두 곳의 의원과 처방전을 독점하는 대가로 처방조제료 수입의 20%를 의원에 주기로 한 김씨는 하루 100건이 넘는 처방전을 받아도, 관리약사 2명과 카운터 직원 2명의 월급을 주고 나면 약국 투자비에 대한 이자비용조차 건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사들의 친인척을 제외한 대부분의 약사들이 처음부터 담합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들이나 제약회사로부터 담합 제의를 받으면 이를 뿌리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최모씨(46)는 현재 의원 여섯 군데와 주식회사 형태의 담합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 층에 6개 의원이 몰려 있는 목 좋은 곳에 7억원을 투자해 약국을 차렸지만 지분을 배당해주지 않으면 처방전을 주지 않겠다는 의사들의 으름장에 지분을 각 의원들에 분산했다. “그래도 예전 수입보다는 낫습니다. 요즘, 의원들이 분업 이전에 사놓은 약들을 소비해주느라 정신이 없어요.” 최씨에게는 발빠르게 시대의 흐름을 탄 자의 여유가 있을 뿐 담합에 대한 죄의식은 없었다.
“상황을 뻔히 아는 보건복지부는 왜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입니까.” 대한약사회 의약분업감시단을 이끌고 있는 안인혁 단장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감시단은 지난 8월24일 출범 이후 지금까지 13차에 걸쳐 102명의 회원 약국을 담합혐의로 보건복지부에 고발했다. 이 외에도 복지부의 요청으로 담합의혹을 받고 있는 117개 약국에 대한 구체적인 담합사례와 법 위반 사항을 적시해 넘겨줬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도록 복지부는 단 한 건의 행정조치도 내리지 않고 있는 것.
“회원 약국을 고발할 때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담합약국이 하나 생기면 인근 동네약국 세 개가 망합니다.” 안단장은 복지부의 담합 처벌 의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 맹호용 사무관은 “지난 11월 중순부터 시도에 담합사례에 대한 지침을 내려보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찰에 약사법 위반으로 세 건을 고발했지만 이마저도 현행 법령이 원칙적 금지조항만 있지 구체적인 유형적 사례가 없어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고 해명했다. 맹사무관은 현재 의약정 합의로 국회에 상정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질적인 단속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기에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담합의 심각성에 다급해진 복지부가 담합사례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의원과 동일건물 내에 전용통로를 사용하는 전국 1500여개 약국에 대해 무조건 6개월 안에 철거하라는 독소조항을 개정안 내에 삽입해 놓은 것.
“당초에는 환자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동일 건물 내 약국을 권장했던 복지부입니다. 이제 와서 담합이라니… 같은 건물에 있다고 모두 담합한다고 보기는 어렵잖습니까. 약사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지난 12일 발족한 전국 조제전문 약사연합회 이준용 회장은 복지부의 대책 없는 발표에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1월부터 지역 의료보험료가 15%, 직장 의료보험료는 21.4% 또 다시 인상된다. 지루한 의료대란을 인내했던 국민들에게 담합으로 실효성을 잃어버린 의약분업을 계속 강요한다면 의료보험료 거부운동의 확산은 눈에 보듯 뻔한 일이다. 만약 국민이 잘못된 의료보험료 인상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면 과연 피고(被告)는 누가 될 것인가.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씨(32)는 의약분업이 시작된 이후 약사를 단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 집 인근 빌딩의 6층 D의원에 가면 처방전을 들고 약국까지 왔다갔다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이 국민 건강을 위한 좋은 제도라고는 하지만 그에겐 의료보험료만 올려놓은 실패한 정책의 상징으로 비친다.
D의원의 경우 처방전이 나오면 간호사가 그 처방전을 팩스로 1층의 약국에 보낸 뒤 김씨를 의원 내에 대기하게 한다. 조금 기다리면 약국 점원이 올라와 약봉지와 주사제를 김씨에게 건네고, 그는 주사를 맞은 뒤 의원을 나오면 그만이다. 승강기 옆에 붙어 있는 1층 약국은 말이 약국이지 2평 정도의 ‘하꼬방’. 김씨는 나중에서야 이 약국이 이 건물 2, 3층 의원과 6층 D의원의 담합약국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담합하지 않으면 바보?
의약분업이 의약 담합이라는 덫에 걸려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의-약-정(醫藥政)이 지난 12월11일 약사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함으로써 지리하게 계속됐던 의료대란은 종식됐다. 하지만 약국들이 병-의원의 기존 조제실 역할을 하는 담합 행태가 갈수록 확산되면서 의약품 오남용 방지의 기대가 무너져가고 있다. 의-약간의 상호 견제는 담합으로 얼룩졌고, 시민들은 편리함 때문에 분업의 근본 취지를 잊은 듯하다.
“담합은 환자들의 손에 분업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약봉지를 받아 쥐게 했고, 오남용의 폐해가 심각한 주사제도 담합의원들이 처방에 열을 올리면서 오히려 분업 이전보다 처방 건수가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성미 차장은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상태에서 의약분업을 명목으로 세 차례나 인상된 보험수가는 시민들에게 ‘의약분업 회의론’을 촉발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담합하지 않는 의사, 약사가 바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바야흐로 의-약 담합이 의약분업 최대의 주적(主敵)으로 등장한 것이다.
서울시 노원구 A의원. 원래 C원장이 경영하는 의원의 일부에 의약분업 이후 S약국이 들어섰다. 약국 개설 약사는 C원장과 이름 끝자만 틀린 사촌동생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에 들렀던 김모씨(34)는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S약국으로 가라는 안내를 하는 것은 물론, 의사가 처방전에 연필로 쓴 처방을 약사가 지우고 다른 약을 써넣는 것까지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관할 보건소측은 “C의원이 시설을 축소 변경해 승인을 받았고, 나머지 부지에 다른 사람이 약국을 개설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약국의 안내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의원 시설의 일부를 잘라 3평 내외의 공간에 차려진 일명 ‘하꼬방 약국’은 대부분 의원이나 병원의 직영형태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게 인근 약국들의 귀띔이다. S의원의 환자대기실을 쪼개 만든 서울시 서대문구 S약국과 J의원의 응급실 자리에 들어선 서울시 강남구 A약국, L의원의 진료실 일부를 칸막이하고 약국을 개설한 서울시 강동구 S약국이 모두 의원 직영약국으로 의심받는 담합약국들.
하꼬방 약국 이외에 준종합병원급의 주차장을 용도변경한 담합약국도 많다. 서울시 노원구 H약국은 U병원 주차장 자리에 들어섰으며, 서울시 금천구 H병원 주차장에도 S약국이 들어섰다. S약국을 개설한 약사는 병원장의 처제로,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와 직원들이 직접 환자들을 ‘주차장 약국’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병원 직원이 약국에 상주하는 모습이 확인되는 사례까지 있다.
“문전약국이나 동일건물 약국에 대한 담합의원들의 약국 지정이나 안내는 이미 ‘양반축’에 속합니다. 약국 입간판에 의원과 약국 이름을 나란히 써 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담합약국 전국 단속에 나섰던 전공의협의회 소속 최모씨(31)는 지방에서의 의약담합은 서울보다 정도가 더 심각하고, 뻔뻔스럽다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최씨에 따르면 대구시 북구 S약국은 1층에 약국을 개설하면서 세운 입간판에 남편이 운영하는 같은 건물의 2층 N의원 상호도 함께 표시한 것은 물론, N의원의 간호조무사가 1층으로 내려와 S약국의 조제를 도와주고 있더라는 것. 최씨는 인천시 남구 E약국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말한다. 바로 옆 S내과의 간호사들은 아예 E약국에 상주하며 약사를 도와 조제하면서 S내과의 환자들을 안내해 오고 있었다.
“이렇게 안내해도 말을 안 듣는 의식 있는 환자가 있죠. 이런 환자에겐 약속, 암호처방이 나갑니다.” 경기도 포천군의 이모씨는 자신의 황당한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8월 읍내의 한 의원에 갔더니 인근 약국을 지정하며 거기에만 약이 있다고 하더라는 것. 이씨가 “우리 동네에 가서 약을 짓겠다”고 하니 의사는 처방전을 새로 써주고 김씨를 돌려보냈다. 동네의 단골 약국으로 돌아온 이씨는 약사가 하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약이 어디 있어요?” 처방전의 의약품 명칭란에 적힌 내용은 약품명이 아니라 암호였던 것이다. ‘A01304361, A05002021…’ 숫자만 가득한 처방전을 들고 의원에 항의하니 “지정한 약국에는 그 약이 모두 있다”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하꼬방 직영약국을 만들기 위해 약사 구함이라는 신문광고를 내는 의사에서부터, 약국이름을 아예 ‘원내 약국’으로 걸어 놓은 곳, 의원의 본인부담금 1000원을 없애주고 약국을 지정해주는 의원, 처방전 없이 약을 주고 주사제를 투약한 뒤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사가 직접 기입해 주는 경우 등 끝이 없습니다.” 회원 약국들로부터 담합약국에 대한 신고를 받고 있는 대한약사회 박인춘 홍보이사는 많은 동네약국들이 담합약국 때문에 폐업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의원 직영약국은 시간마다 다르지만 고용약사에 대해 2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담합약국은 처방전 한 건당 500~1000원씩, 아니면 수입의 일정부분을 대가로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돈을 주는 방식은 임대료로 위장할 수도 있고 직접 주는 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죠.”
의약분업 이후 같은 건물의 의원과 담합관계를 유지해온 김모 약사(42)는 의사들의 요구가 지나쳐 자진 폐업을 결정한 케이스. 건물 안 두 곳의 의원과 처방전을 독점하는 대가로 처방조제료 수입의 20%를 의원에 주기로 한 김씨는 하루 100건이 넘는 처방전을 받아도, 관리약사 2명과 카운터 직원 2명의 월급을 주고 나면 약국 투자비에 대한 이자비용조차 건질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사들의 친인척을 제외한 대부분의 약사들이 처음부터 담합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들이나 제약회사로부터 담합 제의를 받으면 이를 뿌리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최모씨(46)는 현재 의원 여섯 군데와 주식회사 형태의 담합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 층에 6개 의원이 몰려 있는 목 좋은 곳에 7억원을 투자해 약국을 차렸지만 지분을 배당해주지 않으면 처방전을 주지 않겠다는 의사들의 으름장에 지분을 각 의원들에 분산했다. “그래도 예전 수입보다는 낫습니다. 요즘, 의원들이 분업 이전에 사놓은 약들을 소비해주느라 정신이 없어요.” 최씨에게는 발빠르게 시대의 흐름을 탄 자의 여유가 있을 뿐 담합에 대한 죄의식은 없었다.
“상황을 뻔히 아는 보건복지부는 왜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입니까.” 대한약사회 의약분업감시단을 이끌고 있는 안인혁 단장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감시단은 지난 8월24일 출범 이후 지금까지 13차에 걸쳐 102명의 회원 약국을 담합혐의로 보건복지부에 고발했다. 이 외에도 복지부의 요청으로 담합의혹을 받고 있는 117개 약국에 대한 구체적인 담합사례와 법 위반 사항을 적시해 넘겨줬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도록 복지부는 단 한 건의 행정조치도 내리지 않고 있는 것.
“회원 약국을 고발할 때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담합약국이 하나 생기면 인근 동네약국 세 개가 망합니다.” 안단장은 복지부의 담합 처벌 의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 맹호용 사무관은 “지난 11월 중순부터 시도에 담합사례에 대한 지침을 내려보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찰에 약사법 위반으로 세 건을 고발했지만 이마저도 현행 법령이 원칙적 금지조항만 있지 구체적인 유형적 사례가 없어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고 해명했다. 맹사무관은 현재 의약정 합의로 국회에 상정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질적인 단속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기에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담합의 심각성에 다급해진 복지부가 담합사례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의원과 동일건물 내에 전용통로를 사용하는 전국 1500여개 약국에 대해 무조건 6개월 안에 철거하라는 독소조항을 개정안 내에 삽입해 놓은 것.
“당초에는 환자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동일 건물 내 약국을 권장했던 복지부입니다. 이제 와서 담합이라니… 같은 건물에 있다고 모두 담합한다고 보기는 어렵잖습니까. 약사법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지난 12일 발족한 전국 조제전문 약사연합회 이준용 회장은 복지부의 대책 없는 발표에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1월부터 지역 의료보험료가 15%, 직장 의료보험료는 21.4% 또 다시 인상된다. 지루한 의료대란을 인내했던 국민들에게 담합으로 실효성을 잃어버린 의약분업을 계속 강요한다면 의료보험료 거부운동의 확산은 눈에 보듯 뻔한 일이다. 만약 국민이 잘못된 의료보험료 인상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다면 과연 피고(被告)는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