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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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 이젠 공부 좀 합시다

  • 입력2005-06-10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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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들, 이젠 공부 좀 합시다
    도쿄대학의 시게히코 하스미(蓮實重彦) 총장은 불문학자다. 전공분야가 뭐냐고 묻는 나에게 그는 푸코와 데리다와 들뢰즈라고 대답했다. 만 64세의 나이에 프랑스의 최첨단 문학이론가들인 푸코와 데리다와 들뢰즈라니. 모파상이나 플로베르도 아니고 사르트르나 까뮈도 아닌, 한국에서는 젊은 소장학자들이나 관심을 갖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좋아한다니. 그것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관심분야를 묻자 하스미 총장은 또 문학평론과 영화평론이라고 대답했다. 해마다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구소에 기고까지 한 그는 “영화를 모르면 문화를 알기 어렵고, 문화를 모르면 문학을 알 수 없다”는 멋진 말을 했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 연구중심대학 워크숍’에서도 하스미 총장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중국을 무시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다이어트 콜라에 비유해 비하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에게 제발 공부 좀 더 하라고, 그래서 잘 알고 난 뒤 글을 쓰라고 반론을 폈다. 그는 또 모파상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에 대해 예술의 죽음과 문학의 위기를 느끼고 절망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아도로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던졌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영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옹호하는 하스미 총장의 모습은 정말 부럽고 고무적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으며, 총장의 바쁜 일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려 6시간을 워크숍에 참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도쿄대 총장의 그와 같은 면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중 하나는 인문학자들도 나이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열린 사고를 갖고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고상하고 문화는 저속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고대는 영광스럽고 현대는 경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독선적이고 편협한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와 현재’를 ‘문학과 과거’라는 거울에 비추어 읽어내고 성찰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위기론만 되풀이한다면 “지금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위기”라는 따끔한 질책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문학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배움에 나이가 무슨 상관… 편협한 태도 버려야



    또 한 가지는 제2외국어의 중요성이다. 오늘날 영어는 세계어가 되었고, 영어를 하지 못하면 국제경쟁에서 탈락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영어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프랑스어나 독일어 같은 제2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 때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존경과 이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9월 말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렸던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도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까지도 행사의 공식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외국작가들에게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도쿄대 총장 역시 남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각광받을 것이다.

    세번째는, 이제 우리도 서구학자들에 맞서 떳떳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 대한 저들의 놀랄 만한 무지와, 그 무지에 대한 수치심 부재를 지적하고, 제발 공부 좀 더 하고 글을 쓰라고 서구학자들을 질책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웬일인지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백인으로, 주류로, 또 세계의 중심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부가 검은 사람을 무시하고, 서양고전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서구의 정전을 숭배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시각과 목소리와 정체성을 되찾고, 우리의 독창적인 이론을 주장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또다시 서구화되는 운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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