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실패한 구조조정의 책임을 져라.” 12월7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광장에는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한국철도차량㈜의 노조원 300여명이 허울뿐인 대기업 빅딜의 실상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99년 7월1일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이 철도차량 부분만을 떼어내 각각 40대 40대 20의 지분으로 합병한 한국철도차량(대표 정훈보·이하 한철)은 빅딜을 통해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을 시도한 첫 작품. 당시 정부는 과잉경쟁에 의한 저가수주와 중복투자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3사의 합병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하지만 12월1일 한철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장 폐쇄를 단행함으로써 정부가 자랑하는 대기업 ‘빅딜 1호’의 명성은 빛이 바랬다.
회사측은 지난 10월10월부터 석 달 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의 기형적 구조가 직장 폐쇄를 불러온 주범이라고 항변한다. 합병 이후에도 기존 3사 노조에 각각 속하면서 한편으로는 한철의 노조원이기도 한, 이른바 ‘1사3노’ 체제가 야기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 현재 한철의 노조는 현대정공 노조, 대우중공업 노조 의왕지부, 한진중공업 노조 부산 다대포지부로 갈라져 있다. 한철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1사3노’이고, 각 노조 입장에서 보면 한철과 기존 회사에 모두 소속된 ‘2사1노’가 되는 셈이다.
회사측은 각 사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노조의 입장 때문에 통합 노조의 구성과 단일 임금협상안, 통합 단체협상안 마련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회사 출범 후 1년이 넘도록 노조와의 단체협약 하나 체결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노조측은 통합 단체협약이 포괄적으로 승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일 노조를 설립할 경우 개별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담은 기존 3사 각각의 단체협약이 모두 소멸하기 때문에 1노3사 체제의 유지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한철 3개 노조가 ‘특이한’ 형태지만 노동관련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노동조합과 유경희 사무관은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조직 대상을 같이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규정이기 때문에 기존 회사의 조합원 범위를 한철로 확장한 3개 노조의 경우는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노조측도 올 봄까지의 투쟁 방향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철 3개 노조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 이영길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해와 올 4월까지 한철 3개 노조 비상대책위는 각 사별로 협상을 따로 진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각 사들이 현 정권만 끝나면 합병이 해체될 것이라며 노조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현대정공의 경우 공공연히 현 정권 임기 내에 자신들이 한철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고 노조측에 떠들고 다녔다”고 전했다.
3개 노조는 지난 5월 기존 현대정공 노조 집행부가 사퇴하는 것을 계기로 각 비대위를 해체하고 공투위를 출범했다. 이전 비대위가 기존사의 이해관계 등 자본측의 입장만 대변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공투위와 회사측은 단일 임금협상안과 통합 단체협상안에 대한 교섭에 나섰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노조는 기존 3사의 단협 항목 전체에 대한 포괄적 승계를 요구했고, 회사측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는 현대정공측 14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노조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금 부분은 회사측이 내놓은 단일안 중 통상수당과 시간외 수당의 조정 문제를 두고 팽팽히 맞선 상태. 결국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투위는 지난 7월14일 이후 조정신청과 부분파업, 전면파업 등을 차례로 단행했고, 한철은 끝내 직장 폐쇄를 결정하기에 이른 것.
사실 한철의 이런 ‘파국’은 합병 당시부터 잉태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 3사와 채권단의 이해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출범한 한철은 부실 부분만을 골라 합병한 탓에 초반부터 극심한 자금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총자산 8891억원 중 기존 3사로부터 넘어온 부채만 6891억원이었다. 나머지 자본금 2000억원도 한철이 인수하기 부담스러웠던 부실자산만 1200억원대에 이르렀다. 상주 청리공단을 비롯한 이들 부실자산은 기존 3사와 채권단의 다툼 속에서 1년이 지난 올 9월에야 현금 출자되거나 손해부담에 대한 회계처리가 완료됐다.
더욱이 통합 후 3사가 약속했던 운용자금 500억원의 추가 증자는 현재까지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총부채 중 차입금 상환 조건에 대한 채권단과의 합의가 지연되면서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의 여파로 파생된 철도차량 물량의 급감은 하루 1억5000여만원의 손실을 보이며 한철의 심각한 유동성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지난 6월 말 겪은 부도 위기가 바로 그것.
노조는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과연 한철의 빅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공투위는 기존 3사의 행태로 보아 이 빅딜은 무늬만 합병이지, 한지붕 밑에 ‘동상이몽’의 세가족이 헤어질 날만 기다리며 모여 사는 꼴이라고 빗댄다. 각 사가 아직 철도차량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 채 언젠가 다시 흩어져 사업을 재개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게 노조가 파악한 ‘동상이몽’의 핵심이다.
공투위는 그 근거로 한철이 올해 수주한 800억원의 기관차 물량을 전량 현대모비스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합병 당시 현대정공의 시설과 부지, 객차 생산인력, 영업권은 모두 한철로 넘어왔으나 기관차 생산인력 150명만은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 공투위의 한 관계자는 “기관차는 객차와 달리 60% 정도 순이익이 남는 고부가가치 사업인데, 이미 모든 시설을 넘겨받은 한철이 경영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수주한 기관차를 현대모비스 인력(150명)만으로 만든다는 것은 철도차량 사업의 부활을 꿈꾸는 현대를 이면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학규 철도차량 경영기획실장은 “현대 모비스의 기관차 생산과 관련해 발생되는 비용, 매출, 이익 등은 모두 한철에서 회계처리되고 있다”며 “현대모비스는 다른 외주 협력업체처럼 단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임가공업체일 따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철의 한 내부 관계자는 “합병 당시 현대정공 기관차 생산인력 150명의 고용 승계와 잔존 문제를 두고 3사가 다투던 중 기관차 생산물량은 현대모비스에 주기로 내부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회사측은 우리를 1사3노의 기형노조라고 욕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그 사람들이 흑심을 품은 기형 합병의 하수인 같습니다. 합병된 신설 회사의 전무(본부장) 세명에 대해 기존 3사가 아직 각각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공투위 고용실장 이광명씨의 이런 주장을 접하면 빅딜을 한 3개 회사들이 서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거나, 다른 회사 지분을 흡수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만하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 김영학 운송기계산업과장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철도차량 사태의 해결책은 회사의 주인을 찾아주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정작 경쟁력을 배양한다는 명목으로 빅딜을 단행했지만, 회사의 경쟁력을 위한 사후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주인 없는 회사’ 한국철도차량의 ‘궤도이탈’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따갑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익은 없는 구조조정은 결국 국민들의 희생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99년 7월1일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이 철도차량 부분만을 떼어내 각각 40대 40대 20의 지분으로 합병한 한국철도차량(대표 정훈보·이하 한철)은 빅딜을 통해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을 시도한 첫 작품. 당시 정부는 과잉경쟁에 의한 저가수주와 중복투자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3사의 합병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하지만 12월1일 한철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장 폐쇄를 단행함으로써 정부가 자랑하는 대기업 ‘빅딜 1호’의 명성은 빛이 바랬다.
회사측은 지난 10월10월부터 석 달 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의 기형적 구조가 직장 폐쇄를 불러온 주범이라고 항변한다. 합병 이후에도 기존 3사 노조에 각각 속하면서 한편으로는 한철의 노조원이기도 한, 이른바 ‘1사3노’ 체제가 야기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 현재 한철의 노조는 현대정공 노조, 대우중공업 노조 의왕지부, 한진중공업 노조 부산 다대포지부로 갈라져 있다. 한철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1사3노’이고, 각 노조 입장에서 보면 한철과 기존 회사에 모두 소속된 ‘2사1노’가 되는 셈이다.
회사측은 각 사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노조의 입장 때문에 통합 노조의 구성과 단일 임금협상안, 통합 단체협상안 마련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회사 출범 후 1년이 넘도록 노조와의 단체협약 하나 체결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노조측은 통합 단체협약이 포괄적으로 승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일 노조를 설립할 경우 개별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담은 기존 3사 각각의 단체협약이 모두 소멸하기 때문에 1노3사 체제의 유지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한철 3개 노조가 ‘특이한’ 형태지만 노동관련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노동조합과 유경희 사무관은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조직 대상을 같이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규정이기 때문에 기존 회사의 조합원 범위를 한철로 확장한 3개 노조의 경우는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노조측도 올 봄까지의 투쟁 방향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철 3개 노조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 이영길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해와 올 4월까지 한철 3개 노조 비상대책위는 각 사별로 협상을 따로 진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각 사들이 현 정권만 끝나면 합병이 해체될 것이라며 노조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현대정공의 경우 공공연히 현 정권 임기 내에 자신들이 한철 전체를 흡수할 수 있다고 노조측에 떠들고 다녔다”고 전했다.
3개 노조는 지난 5월 기존 현대정공 노조 집행부가 사퇴하는 것을 계기로 각 비대위를 해체하고 공투위를 출범했다. 이전 비대위가 기존사의 이해관계 등 자본측의 입장만 대변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공투위와 회사측은 단일 임금협상안과 통합 단체협상안에 대한 교섭에 나섰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노조는 기존 3사의 단협 항목 전체에 대한 포괄적 승계를 요구했고, 회사측은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는 현대정공측 14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노조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금 부분은 회사측이 내놓은 단일안 중 통상수당과 시간외 수당의 조정 문제를 두고 팽팽히 맞선 상태. 결국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투위는 지난 7월14일 이후 조정신청과 부분파업, 전면파업 등을 차례로 단행했고, 한철은 끝내 직장 폐쇄를 결정하기에 이른 것.
사실 한철의 이런 ‘파국’은 합병 당시부터 잉태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 3사와 채권단의 이해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출범한 한철은 부실 부분만을 골라 합병한 탓에 초반부터 극심한 자금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총자산 8891억원 중 기존 3사로부터 넘어온 부채만 6891억원이었다. 나머지 자본금 2000억원도 한철이 인수하기 부담스러웠던 부실자산만 1200억원대에 이르렀다. 상주 청리공단을 비롯한 이들 부실자산은 기존 3사와 채권단의 다툼 속에서 1년이 지난 올 9월에야 현금 출자되거나 손해부담에 대한 회계처리가 완료됐다.
더욱이 통합 후 3사가 약속했던 운용자금 500억원의 추가 증자는 현재까지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총부채 중 차입금 상환 조건에 대한 채권단과의 합의가 지연되면서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의 여파로 파생된 철도차량 물량의 급감은 하루 1억5000여만원의 손실을 보이며 한철의 심각한 유동성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지난 6월 말 겪은 부도 위기가 바로 그것.
노조는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과연 한철의 빅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공투위는 기존 3사의 행태로 보아 이 빅딜은 무늬만 합병이지, 한지붕 밑에 ‘동상이몽’의 세가족이 헤어질 날만 기다리며 모여 사는 꼴이라고 빗댄다. 각 사가 아직 철도차량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 채 언젠가 다시 흩어져 사업을 재개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게 노조가 파악한 ‘동상이몽’의 핵심이다.
공투위는 그 근거로 한철이 올해 수주한 800억원의 기관차 물량을 전량 현대모비스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합병 당시 현대정공의 시설과 부지, 객차 생산인력, 영업권은 모두 한철로 넘어왔으나 기관차 생산인력 150명만은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 공투위의 한 관계자는 “기관차는 객차와 달리 60% 정도 순이익이 남는 고부가가치 사업인데, 이미 모든 시설을 넘겨받은 한철이 경영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수주한 기관차를 현대모비스 인력(150명)만으로 만든다는 것은 철도차량 사업의 부활을 꿈꾸는 현대를 이면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학규 철도차량 경영기획실장은 “현대 모비스의 기관차 생산과 관련해 발생되는 비용, 매출, 이익 등은 모두 한철에서 회계처리되고 있다”며 “현대모비스는 다른 외주 협력업체처럼 단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임가공업체일 따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철의 한 내부 관계자는 “합병 당시 현대정공 기관차 생산인력 150명의 고용 승계와 잔존 문제를 두고 3사가 다투던 중 기관차 생산물량은 현대모비스에 주기로 내부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회사측은 우리를 1사3노의 기형노조라고 욕하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그 사람들이 흑심을 품은 기형 합병의 하수인 같습니다. 합병된 신설 회사의 전무(본부장) 세명에 대해 기존 3사가 아직 각각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공투위 고용실장 이광명씨의 이런 주장을 접하면 빅딜을 한 3개 회사들이 서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거나, 다른 회사 지분을 흡수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만하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 김영학 운송기계산업과장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철도차량 사태의 해결책은 회사의 주인을 찾아주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정작 경쟁력을 배양한다는 명목으로 빅딜을 단행했지만, 회사의 경쟁력을 위한 사후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주인 없는 회사’ 한국철도차량의 ‘궤도이탈’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따갑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익은 없는 구조조정은 결국 국민들의 희생만 강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