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대우차 부도, 현대건설 위기, 퇴출기업 발표 등 잇따른 악재로 경제계가 온통 뒤숭숭하던 지난 9일 전경련 2층 회의실. 매달 열리는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재계 총수는 단 4명뿐이었다. 회장단 회의의 참석 대상은 전경련 회장과 상근 부회장을 포함해 모두 20명. 이러다 보니 회장단 회의가 아니라 간담회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날 회장단 회의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중요한 의결 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풍경 2:같은 장소에서 지난 13일 열린 전경련 산하 e비즈니스위원회 창립 총회.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 등 기존 재계 총수들은 물론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권성문 KTB네트워크 사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등 벤처업계의 스타들을 포함해 20명 가까운 CEO들이 몰려들었다. 주한미국 상공회의소, 유럽 상공회의소 등 외국 경제단체 관계자들도 얼굴을 내밀었고 이들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e비즈니스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너도나도 운영위원으로 들어오려는 회원사 관계자들을 솎아내느라고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김승연·이웅렬 회장 눈에 띄는 움직임
며칠 사이를 두고 벌어진 대조적인 두 풍경을 해석하기에는 단순히 ‘오프라인의 몰락과 온라인의 약진’이나 ‘창업세대의 퇴조와 2세 경영인의 등장’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처럼 서로 다른 풍경의 행간에서 그동안 정부와의 싸움에만 몰두하느라 기력을 소진한 데다 임원이나 말단 직원 할 것 없이 하나둘씩 떠나버린 전경련의 최근 위상 변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e비즈니스위원회에는 전경련 비회원사의 최고경영자들도 다수 참석하고 있다는 것. 그동안 ‘재계 총수들의 오너 클럽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비판에 ‘일본의 경단련과 달리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오너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대응해오던 전경련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e비즈니스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도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한국을 아시아 e비즈니스의 허브기지로 부각하는, 이른바 ‘국가 IR사업’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둘 다 공익성의 냄새가 풍기는 사업인데 전경련 관계자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기업인들 중에서 스폰서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전경련의 이러한 변화 움직임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코오롱그룹의 45세 총수인 이웅렬 회장이다. 이회장은 지난 1년간 눈에 띄는 독자 행보를 보여왔다. 문민정부 시절 현철씨와의 관계 등으로 청문회까지 불려나가는 등 곤욕을 치른 이후 오랫동안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던 이회장이 꺼내든 화두 역시 e비즈니스. 최근 그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규합해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앞장서왔다. 2세 경영인들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주변 시선도 정면으로 돌파해왔다. 술을 좋아하는 데다 종종 폭음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회장은 최근 들어 술도 꽤 자제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시간을 쪼개 일하다 보니 술 마실 시간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회장은 요즘 그룹 내에서 스스로 CEO(최고경영자)라기보다는 ‘미스터 CVC(chief vision creator)’라고 칭하며 다닌다고 한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제조업이든 바이오산업이든 그룹의 장래와 비전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전경련 국제협력위원장을 맡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 김회장은 지난 2월 김우중 회장의 후임자를 선정할 당시 정부의 ‘오너회장 불가론’이 튀어나오면서 현대 정몽구 회장 취임이 어려워지자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IMF 사태 이후 한화가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으로 떠오른 데다 49세의 젊은 나이라는 점도 전경련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는 유효한 카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화측은 원로들이 아직 포진해 있는 마당에 김회장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 김승연 회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제협력위원회에는 경제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학계 전문가들까지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어 대외활동의 초석을 다지기에는 적지 않은 이점을 갖고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경우도 당분간 그룹의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뿐 구체적 대외활동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전경련의 위원장을 맡은 것이 본격적 대외활동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하는 분위기.
그러나 개별 총수들의 움직임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경련의 일부 위원회나 하부 조직뿐만이 아니라 오너들의 의식 자체가 온라인 비즈니스를 포함한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벤처와 코스닥이 무너진 이후 전경련 회원사 총수들 사이에서는 더욱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원로 총수들이야말로 아직까지 ‘한달에 한번씩 만나서 두세 시간씩 밥먹고 헤어지는’ 아날로그식 문화에 익숙해 있다는 말이다.
방송대 김기원 교수(경제학)는 “이벤트성 행사에 앞서 전경련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총수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을 구분해 중소기업 협력 등 ‘기업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지식경제센터 이승철 상무도 “정부와 다투고 논쟁하는 ‘대정부’ 싸움이 전경련 업무의 전부이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정작 전경련의 ‘고객’이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경 2:같은 장소에서 지난 13일 열린 전경련 산하 e비즈니스위원회 창립 총회.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 등 기존 재계 총수들은 물론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권성문 KTB네트워크 사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등 벤처업계의 스타들을 포함해 20명 가까운 CEO들이 몰려들었다. 주한미국 상공회의소, 유럽 상공회의소 등 외국 경제단체 관계자들도 얼굴을 내밀었고 이들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e비즈니스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너도나도 운영위원으로 들어오려는 회원사 관계자들을 솎아내느라고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김승연·이웅렬 회장 눈에 띄는 움직임
며칠 사이를 두고 벌어진 대조적인 두 풍경을 해석하기에는 단순히 ‘오프라인의 몰락과 온라인의 약진’이나 ‘창업세대의 퇴조와 2세 경영인의 등장’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처럼 서로 다른 풍경의 행간에서 그동안 정부와의 싸움에만 몰두하느라 기력을 소진한 데다 임원이나 말단 직원 할 것 없이 하나둘씩 떠나버린 전경련의 최근 위상 변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e비즈니스위원회에는 전경련 비회원사의 최고경영자들도 다수 참석하고 있다는 것. 그동안 ‘재계 총수들의 오너 클럽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비판에 ‘일본의 경단련과 달리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오너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대응해오던 전경련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e비즈니스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도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한국을 아시아 e비즈니스의 허브기지로 부각하는, 이른바 ‘국가 IR사업’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둘 다 공익성의 냄새가 풍기는 사업인데 전경련 관계자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기업인들 중에서 스폰서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전경련의 이러한 변화 움직임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코오롱그룹의 45세 총수인 이웅렬 회장이다. 이회장은 지난 1년간 눈에 띄는 독자 행보를 보여왔다. 문민정부 시절 현철씨와의 관계 등으로 청문회까지 불려나가는 등 곤욕을 치른 이후 오랫동안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던 이회장이 꺼내든 화두 역시 e비즈니스. 최근 그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규합해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앞장서왔다. 2세 경영인들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주변 시선도 정면으로 돌파해왔다. 술을 좋아하는 데다 종종 폭음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회장은 최근 들어 술도 꽤 자제하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시간을 쪼개 일하다 보니 술 마실 시간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회장은 요즘 그룹 내에서 스스로 CEO(최고경영자)라기보다는 ‘미스터 CVC(chief vision creator)’라고 칭하며 다닌다고 한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를 두고 “제조업이든 바이오산업이든 그룹의 장래와 비전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전경련 국제협력위원장을 맡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 김회장은 지난 2월 김우중 회장의 후임자를 선정할 당시 정부의 ‘오너회장 불가론’이 튀어나오면서 현대 정몽구 회장 취임이 어려워지자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IMF 사태 이후 한화가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으로 떠오른 데다 49세의 젊은 나이라는 점도 전경련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는 유효한 카드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화측은 원로들이 아직 포진해 있는 마당에 김회장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 김승연 회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제협력위원회에는 경제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학계 전문가들까지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어 대외활동의 초석을 다지기에는 적지 않은 이점을 갖고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경우도 당분간 그룹의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뿐 구체적 대외활동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전경련의 위원장을 맡은 것이 본격적 대외활동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하는 분위기.
그러나 개별 총수들의 움직임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경련의 일부 위원회나 하부 조직뿐만이 아니라 오너들의 의식 자체가 온라인 비즈니스를 포함한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벤처와 코스닥이 무너진 이후 전경련 회원사 총수들 사이에서는 더욱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원로 총수들이야말로 아직까지 ‘한달에 한번씩 만나서 두세 시간씩 밥먹고 헤어지는’ 아날로그식 문화에 익숙해 있다는 말이다.
방송대 김기원 교수(경제학)는 “이벤트성 행사에 앞서 전경련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총수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을 구분해 중소기업 협력 등 ‘기업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지식경제센터 이승철 상무도 “정부와 다투고 논쟁하는 ‘대정부’ 싸움이 전경련 업무의 전부이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정작 전경련의 ‘고객’이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