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워크아웃기간 6개월 이자유예 받은 것 빼고는 아무것도 채무재조정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살아 남았어요. 그런데 채무조정에 관한 채권단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퇴출이라니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11월3일 발표된 퇴출기업 리스트에 오른 피어리스의 최병두 이사는 ‘채권단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퇴출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피어리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채권단 회의는 11월6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3일 퇴출기업 명단 발표로 이날 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퇴출 시나리오로 해외 공사 수주 놓쳐”
실제로 피어리스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로 채권은행으로부터 신규 자금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대신 채권단이 요구하는 계열사 정리, 부동산 매각, 사재 출연 등의 조치는 그때그때 이행해왔다. 무엇보다도 최이사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똑같이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던 대기업들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피어리스와 똑같은 한빛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고합그룹의 경우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탕감받는 등 채권은행 입장에서야 ‘돈먹는 하마’ 노릇을 해왔지만 결국 ‘매각’이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금융전문가들은 이미 이자보상배율이 2년 연속 1 이하인 고합은 진작 퇴출됐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게다가 ‘해외매각을 자신한다’는 고합측의 주장과 달리 금융권에서는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미 퇴출 발표 직전 ‘고합이 세게 로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북사업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론되기도 했다. 퇴출기업 피어리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채권은행인 한빛은행 관계자는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고 출자전환 등을 포함해 진작 채무재조정 요구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청산’으로 분류돼 회사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 18개 업체 가운데 6개가 포함된 건설업체는 이미 초상집 분위기. 게다가 국내 주택 건설을 주력으로 하는 건설업체의 경우에야 건설경기 침체로 원인을 돌린다고 해도 해외 플랜트 사업을 주로 하던 건설업체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란이나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신화건설이 법정관리 폐지 방침을 통보받은 것은 퇴출 발표 하루 전인 11월2일. 신화건설은 이미 쿠웨이트 국영 석유공사가 발주한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유전지역 가변 펌프 교체 공사와 LNG 가압 설비 공사 등을 수주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공사는 이미 진행중이어서 회사 주변에서는 법정관리진행을 낙관하는 상황이었다. 또 회사측에서는 올 하반기엔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발주자인 쿠웨이트 석유공사는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해 정부기관과 몇몇 대기업을 방문한 뒤 10월 중순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해왔다. 1억6000만달러 규모의 계약 파기 통보는 회계법인의 재실사를 거쳐 불과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청산가치〈존속가치’이던 신화건설의 재무상태를 ‘청산가치〉존속가치’로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신화건설측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 이미 10월 초쯤부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퇴출기업 예상리스트에 신화건설은 단골로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행되어온 퇴출 시나리오에 따라 해외 공사발주처가 급작스레 발을 빼면서 퇴출 작업이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신화건설의 한 임원은 “언론에 신화건설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채권은행쪽에 진위 여부를 문의했지만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회사를 무엇 때문에 두 번 죽이겠느냐는 답변을 들었다”며 일련의 시나리오에 의해 법원이 퇴출 직전 법정관리 폐지 방침을 내린 것으로 해석했다. 신화건설 노동조합 배정식 쟁의지도부장은 “청구나 우방처럼 아파트 건설에만 의존하는 건설업체와 달리 고부가가치산업인 플랜트 산업을 재무제표만을 갖고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퇴출기업 명단에서 ‘청산’으로 분류됐던 대동주택 관계자는 “부도 3개월 뒤인 지난 4월 법원이 화의를 인가한데다 6개월마다 내는 화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가 부실기업이라는 사실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상거래 채권과 금융비용 350억원을 이미 9월 말까지 모두 갚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동주택은 일성건설과 함께 법원으로부터 회생 가능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금감원에 의해 퇴출대상 기업으로 발표되는 바람에 금감원과 법원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종업계에서 인수 합병작업이 성공하지 않는 한 회사 청산이 불가피한 이들 기업과 달리 이번 퇴출기업 발표에서 살아난 고합, 갑을 등 대기업들은 채권단의 지원 아래 계속 매각작업 등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들 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지난해까지의 워크아웃 이행실적을 평가해 내놓은 등급판정을 보면 모두 C등급(이행계획서 제출 및 경고서한 송달)을 기록해 워크아웃 이행실적도 극히 부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퇴출 발표를 두고 은행에 부담이 가지 않는 만만한 기업만 선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퇴출 판정을 받은 피어리스 관계자는 “400억원 규모의 담보를 이미 제공해 놓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우리같은 기업을 털어내면 채권 회수하는데도 쉽고 안성맞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채권은행들이 무엇보다도 자기네 은행에 부담을 적게 줄 만한 기업을 골라 청산 대상으로 발표했다는 의혹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합, 갑을, 대우중공업 등 가장 많은 워크아웃기업을 관리하고 있는 한빛은행이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 편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빛은행은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심사 결과 지주회사 파트너로 꼽힌 광주, 제주은행 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기까지 하고 있다. 결국 부실은행에 부실기업 판정을 맡긴 결과는 다시 한번 ‘대마불사’라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일부 퇴출기업 노조 간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우리는 지역연고도 없고 정치권에 줄 댈 사람도 없어 퇴출됐다’는 자조적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퇴출기업의 한 임원도 “갑을, 고합 등 일부 워크아웃 대기업들이 부채 탕감, 이자율 감면 등 워크아웃에 따른 혜택을 입으면서 기업 회생을 위해 한 것이 뭐냐.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밖에 더 했느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퇴출기업 발표에서 부실판정의 도마 에 올려졌던 기업은 모두 287개. 이 중 정리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52개지만 문자 그대로 청산을 의미하는 기업은 18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중에서도 몇 개 기업은 금감원의 의도와 달리 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할 판이다. 이렇게 따지면 결국 이번 퇴출기업 발표는 ‘요란한 빈수레’였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11월3일 발표된 퇴출기업 리스트에 오른 피어리스의 최병두 이사는 ‘채권단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퇴출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피어리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채권단 회의는 11월6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3일 퇴출기업 명단 발표로 이날 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퇴출 시나리오로 해외 공사 수주 놓쳐”
실제로 피어리스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로 채권은행으로부터 신규 자금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대신 채권단이 요구하는 계열사 정리, 부동산 매각, 사재 출연 등의 조치는 그때그때 이행해왔다. 무엇보다도 최이사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똑같이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던 대기업들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피어리스와 똑같은 한빛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고합그룹의 경우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탕감받는 등 채권은행 입장에서야 ‘돈먹는 하마’ 노릇을 해왔지만 결국 ‘매각’이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살아남았다. 금융전문가들은 이미 이자보상배율이 2년 연속 1 이하인 고합은 진작 퇴출됐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게다가 ‘해외매각을 자신한다’는 고합측의 주장과 달리 금융권에서는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미 퇴출 발표 직전 ‘고합이 세게 로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북사업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론되기도 했다. 퇴출기업 피어리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채권은행인 한빛은행 관계자는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고 출자전환 등을 포함해 진작 채무재조정 요구를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청산’으로 분류돼 회사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 18개 업체 가운데 6개가 포함된 건설업체는 이미 초상집 분위기. 게다가 국내 주택 건설을 주력으로 하는 건설업체의 경우에야 건설경기 침체로 원인을 돌린다고 해도 해외 플랜트 사업을 주로 하던 건설업체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란이나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신화건설이 법정관리 폐지 방침을 통보받은 것은 퇴출 발표 하루 전인 11월2일. 신화건설은 이미 쿠웨이트 국영 석유공사가 발주한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유전지역 가변 펌프 교체 공사와 LNG 가압 설비 공사 등을 수주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공사는 이미 진행중이어서 회사 주변에서는 법정관리진행을 낙관하는 상황이었다. 또 회사측에서는 올 하반기엔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발주자인 쿠웨이트 석유공사는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해 정부기관과 몇몇 대기업을 방문한 뒤 10월 중순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해왔다. 1억6000만달러 규모의 계약 파기 통보는 회계법인의 재실사를 거쳐 불과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청산가치〈존속가치’이던 신화건설의 재무상태를 ‘청산가치〉존속가치’로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신화건설측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 이미 10월 초쯤부터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퇴출기업 예상리스트에 신화건설은 단골로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행되어온 퇴출 시나리오에 따라 해외 공사발주처가 급작스레 발을 빼면서 퇴출 작업이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신화건설의 한 임원은 “언론에 신화건설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채권은행쪽에 진위 여부를 문의했지만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회사를 무엇 때문에 두 번 죽이겠느냐는 답변을 들었다”며 일련의 시나리오에 의해 법원이 퇴출 직전 법정관리 폐지 방침을 내린 것으로 해석했다. 신화건설 노동조합 배정식 쟁의지도부장은 “청구나 우방처럼 아파트 건설에만 의존하는 건설업체와 달리 고부가가치산업인 플랜트 산업을 재무제표만을 갖고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퇴출기업 명단에서 ‘청산’으로 분류됐던 대동주택 관계자는 “부도 3개월 뒤인 지난 4월 법원이 화의를 인가한데다 6개월마다 내는 화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가 부실기업이라는 사실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상거래 채권과 금융비용 350억원을 이미 9월 말까지 모두 갚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동주택은 일성건설과 함께 법원으로부터 회생 가능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금감원에 의해 퇴출대상 기업으로 발표되는 바람에 금감원과 법원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종업계에서 인수 합병작업이 성공하지 않는 한 회사 청산이 불가피한 이들 기업과 달리 이번 퇴출기업 발표에서 살아난 고합, 갑을 등 대기업들은 채권단의 지원 아래 계속 매각작업 등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들 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지난해까지의 워크아웃 이행실적을 평가해 내놓은 등급판정을 보면 모두 C등급(이행계획서 제출 및 경고서한 송달)을 기록해 워크아웃 이행실적도 극히 부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퇴출 발표를 두고 은행에 부담이 가지 않는 만만한 기업만 선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퇴출 판정을 받은 피어리스 관계자는 “400억원 규모의 담보를 이미 제공해 놓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우리같은 기업을 털어내면 채권 회수하는데도 쉽고 안성맞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채권은행들이 무엇보다도 자기네 은행에 부담을 적게 줄 만한 기업을 골라 청산 대상으로 발표했다는 의혹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합, 갑을, 대우중공업 등 가장 많은 워크아웃기업을 관리하고 있는 한빛은행이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 편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빛은행은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심사 결과 지주회사 파트너로 꼽힌 광주, 제주은행 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기까지 하고 있다. 결국 부실은행에 부실기업 판정을 맡긴 결과는 다시 한번 ‘대마불사’라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일부 퇴출기업 노조 간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우리는 지역연고도 없고 정치권에 줄 댈 사람도 없어 퇴출됐다’는 자조적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퇴출기업의 한 임원도 “갑을, 고합 등 일부 워크아웃 대기업들이 부채 탕감, 이자율 감면 등 워크아웃에 따른 혜택을 입으면서 기업 회생을 위해 한 것이 뭐냐.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밖에 더 했느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퇴출기업 발표에서 부실판정의 도마 에 올려졌던 기업은 모두 287개. 이 중 정리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52개지만 문자 그대로 청산을 의미하는 기업은 18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중에서도 몇 개 기업은 금감원의 의도와 달리 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할 판이다. 이렇게 따지면 결국 이번 퇴출기업 발표는 ‘요란한 빈수레’였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